기후변화와 이 세상의 정의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는 다가올 미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우리가 목격한 세계 곳곳의 이상 고온,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례적 한파, 강력한 태풍과 허리케인 등이 초래한 막대한 피해는 기후변화가 바로 지금 우리 자신과 후손들의 안녕과 관련된 이야기임을 잘 보여준다. 기성세대가 여전히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유네스코와 세계의 젊은이들은 인류가 정치적 이해가 아닌 양심과 윤리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섭씨 2도와 1.5도 사이
지난 2015년 12월 12일 유엔 기후변화회의 마지막날 채택된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은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각국이 구체적 행동을 약속한 기념비적인 협정으로, 2016년 11월부터 국제법으로서 효력이 발효됐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기후 관련 협정에 대한 전 세계의 찬사와 기대가 실망과 우려로 바뀌는 데는 그로부터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2017년 6월 협정 탈퇴를 선언했고, 중국 등 몇몇 국가의 협정 이행 의지도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에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기후변화 대응 공약을 구속력 있게 강화하는 방안 마련에도 실패하면서,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파리 협정의 목표 달성 전망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진 상태다.
더 큰 문제는 파리 협정에서 각국이 합의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 섭씨 2도 이하’라는 목표치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작년 10월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가 내놓은 특별보고서 『지구 온난화 섭씨 1.5도』(Global Warming 1.5℃, 일명 ‘1.5도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충격을 피하기 위해 기온 상승폭 제한 목표치를 섭씨 2도가 아니라 1.5도 혹은 그 이하로 잡아야 한다”고 밝히며, 이를 위해 토양과 에너지, 산업, 건물, 운송, 도시의 전 분야에서 “급진적이며 광범위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섭씨 1.5도’ 목표치를 달성할 경우 2100년까지 해수면 상승폭을 ‘섭씨 2도’ 목표치를 달성할 경우에 비해 10cm 낮출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이는 곧 “1천만 명의 인류가 해수면 상승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뜻”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파리 협정에서 우선 합의한 ‘섭씨 2도’ 목표치조차 본격적인 시행 전부터 파행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목표치를 더 낮추어야 한다는 이번 보고서가 과연 각국의 의미 있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시선이 적지 않다. 해당 보고서에 이어 지난 9월 IPCC가 내놓은 후속 특별보고서인 『기후변화 속 해양과 빙권』(Ocean and Cryosphere in a Changing Climate)을 소개한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섭씨 2도든 1.5도든, 둘 다 인류가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혹은 불가능한 목표치라는 점에서 이 보고서는 우리의 우울한 미래를 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빈자에게 가혹한 기후변화
‘1.5도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인류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까지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는 ‘배출량 0’을 달성해야만 한다. 이미 보고서가 나온 시점에서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약 1도 가까이 올랐고, 이같은 추세라면 2040년 경에 1.5도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섭씨 2도’ 목표치를 두고도 경제와 사회 시스템에 줄 충격을 우려하며 몸을 사렸던 파리 협정 합의 과정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 새로운 목표치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충격의 정도가 국가별로,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이하 국가들 사이에서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뜻을 모으는 과정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파리 협정의 목표치 합의 과정에서 ‘섭씨 2도’를 주장한 선진국과 ‘섭씨 1.5도’를 요구한 개발도상국, 특히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 피해를 받는 도서 국가들 간의 입장차에서 볼 수 있듯,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선진국과 당장 시급한 (해안 도서지역 국가 중심의)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공통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정치적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World Commission on the Ethics of Scientific Knowledge and Technology, COMEST) 위원을 두 차례 역임한 조한 해팅그(Johan Hattingh) 남아공 스텔렌보쉬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 3월 『유네스코 꾸리에』 기고문에서 “기후변화는 세상의 취약한 부분과 파편화된 부분을 더욱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가난한 국가와 국민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거의, 혹은 하나도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기후변화가 가져올 위협에는 훨씬 더 취약하다”고 지적하며 전 지구적 규모의 재앙마저도 부자 국가와 가난한 국가에 불평등한 피해를 주고 있는 현실도 비판했다. 또한 해팅그 교수는 “선진국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이란 고작 집에서 에어컨 온도를 살짝 높이는 것 뿐이지만, 가난한 국가의 수많은 여성들은 기후변화 때문에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거리를 매일매일 더 걸어야만 한다”는 198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데즈먼드 투투(Desmond Tutu) 주교의 말을 인용하며, 지금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치적 이해에 따른 계산이 아니라 “윤리적 프레임워크와 윤리에 기반한 국제 연대”라고 주장했다. 이성과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접점을 찾으려 시간을 흘려보내기보다는 공감과 정의감을 바탕으로 한 연대로 지금 어려움에 빠진 지구촌을 구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것이 더 급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해팅그 교수는 ▲ 연대(solidarity)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고 ▲ 기후변화 대처방안에서 늘 예외의 논거로 활용되었던 개발과 일자리 우선의 논리를 철폐하고 ▲ 연대에 관한 대화의 지평을 정치사회적인 분야에서 윤리적 원칙으로 옮기는 것을 기후변화 대응책의 합의를 위한 세 가지 원칙으로 제안했다.
유네스코 역시 선진국은 상대적으로 기후변화의 충격으로부터 안전하고, 오늘날의 기후변화 초래에 책임이 거의 없는 빈국들은 오히려 직접적인 위협과 타격을 받는 역설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윤리적 접근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고민과 회원국들의 결의는 지난 2017년 11월 제39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기후변화 윤리 원칙 선언」에도 잘 담겨 있다. 선언문 제4조에서 유네스코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의(justice)는 모든 사람에 대한 동등한 대우와 모든 사람의 유의미한 개입을 요구”한다고 명시하고, 극빈층 및 취약 계층에 대한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협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청년들이 더 기다릴 수 없는 이유
「기후변화 윤리 원칙 선언」에서 강조한 대로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의가 ‘모든 사람의 유의미한 개입’을 요구한다면, 답보 상태인 채 온난화의 시계를 멈추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내야 할 주체는 청년들이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이 말했듯 “청년들은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자 기후변화의 영향과 무거운 짐을 온전히 떠안게 될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부터 세계 곳곳에서는 기후변화 대책 마련과 행동에 미온적인 기성 세대와 정치권에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그 출발점이자 중심에 스웨덴의 청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있다.
스웨덴의 평범한 십대 소녀였던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변화에 심각성을 느낀 뒤 지난해부터 금요일마다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행동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는 SNS 등에서 화제가 되어 삽시간에 전 세계에서 백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기후 파업’(Climate Strike)의 시초가 되었고, 툰베리는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청년들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툰베리는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아무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아 곧 없어져버질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공부가 무슨 소용인가. 가장 중요한 진실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듯 취급받는 상황에서 진실을 배우는 것은 또 무슨 소용인가”라는 내용의 연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9월 23일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의 단상에도 오른 툰베리는 각국 정상들을 향해 “만약 정말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악마와 다름없을 것”이라 일갈하고, “앞으로 10년 안에 온실가스를 반으로 줄이자는 의견은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도 아래로 제한할 수 있는 가능성을 50%만 높일 뿐이며 (중략) 기후위기가 초래한 결과를 떠안고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나머지 50%의 위험을 감수하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툰베리의 이날 연설을 전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는 약 400만 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각지에서 기후변화 위기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뉴욕타임스』는 이에 대해 “현대사에서 부자 나라부터 가난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청년 운동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펼쳐진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청년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기성 정치권이 조금이나마 움직일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청년들의 시위를 전후해 “2030년까지 최소 1천억 유로(약 131조 원)를 투자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전기차 보급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204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0’을 달성해 파리협정을 10년 앞당겨 달성하겠다는 ‘기후 서약’(Climate Pledge)에 첫번째로 서명을 하기도 했다.
기후가 아닌 마음을 바꾸기 위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더 많은 툰베리’들이 지구와 자신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어 ‘현실적 장벽’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다. 2003년부터 2-3년마다 발간하고 있는 『세계 청소년 보고서』(World Youth Report) 중 ‘청년과 기후변화’를 다룬 2010년 보고서에서 유엔은 “청년들이 스스로 공부하여 이 위협에 맞서 싸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더 많은 청년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의 행동을 바꿀 계기를 만들어 주기를 촉구했다. 유네스코 역시 “기후가 아니라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Changing minds, not the climate)는 구호와 함께 교육과 홍보, 과학, 윤리,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등 다방면에서 펼치는 활동을 통해 국제사회가 보다 좀 더 어려운 목표를 향해 새로운 각오를 다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점점 더 많은 과학적 관측들이 암울한 미래를 예측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전 세계 리더들의 정치적 의지가 약해지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우리는 기후변화와의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 지구적인 대응에 나서는 일 외에 이 지구적인 위협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1.5도 보고서’에서도 언급됐듯 지금 인류가 가진 최선의 과학적 지식에 따른 분석 결과는 기후변화가 이순간에도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금은 머뭇거릴 시간이 아니라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 지구적 행동이 절실한 지금, ‘세계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청년들은 더 큰 목소리로 변화의 동력을 만들고 정치권은 선거와 지지율이 아닌 정의와 양심으로 이 주제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꿈같은 일은 어쩌면 바로 내일에라도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