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추인 후 두 번째 임기 시작
10월 4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파리 유네스코 본부 회의장에 58개 집행이사국 대표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안건은 다음 달 열리는 총회에 추천할 사무총장 후보 1인 지명. 후보는 현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 외에 주 프랑스 지부티 대사인 라샤드 파라, 레바논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 중인 조셉 마일라 교수 등 세 명이었다. 약 한 시간에 걸쳐 이사국 대표들의 투표가 진행된 다음 결과가 바로 나왔다. 보코바 사무총장이 39표, 파라 대사가 13표, 마일라 교수가 6표를 얻었다. 보코바 사무총장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선거는 현직 사무총장은 재선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통설을 한 번 더 확인시켜줬다. 다음 달 열리는 총회의 추인과 함께 보코바 사무총장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이에 앞서 수요일 오전에 세 후보에 대한 이사국 대표들의 인터뷰에서 보코바 사무총장은 자신의 업적을 묻자 문화재 불법 해외유출 문제가 심각한 남동유럽 국가 출신으로서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던 문화재 불법 반출입 금지 협약을 강화한 성과를 꼽아서 눈길을 끌었다.
보코바 사무총장 내년 2월 초 한국 방문
지난 4년 동안 보코바 사무총장은 한국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지난 해 열린 여수 세계엑스포 성공을 위해 반기문 사무총장과 함께 현장을 누볐고, 2015년 세계교육대회를 한국에서 열겠다는 우리 정부의 제안을 적극 지지했다. 그리고 내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60돌을 맞아 2월 초에 여는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재선에 성공한 보코바 사무총장의 앞길은 매우 험난하다. 당장 미국과 이스라엘이 분담금 납부를 중단해서 생긴 수입예산 감소(22%)에 대응하기 위해 적지 않은 직원을 내보내야 한다. 보코바 사무총장은 차기 회계연도 직원 정원을 기준으로 약 280명을 줄이겠다고 이달 초 열린 192차 집행이사회에 이미 보고한 바 있다. 들리는 얘기로는 최근 희망퇴직 신청을 접수한 결과 이 목표치를 거의 다 채웠다고 한다. 강제 퇴직과 같은 극단적 조치까지 꺼내지 않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교육과 과학기술 발전, 문화 유산과 문화다양성 보호, 디지털 격차 해소를 향한 개도국의 지원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유네스코는 그동안 회원국의 정규 분담금 외에 여러 추가 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수행해 왔지만 핵심 역량인 고급 두뇌들을 2백명 이상 내보내고도 이런 비정규예산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유네스코는 회원국 정부에게 인력 파견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공무원이나 전문가를 유네스코에 파견해 왔으나 앞으로 이런 파견 직원 수가 더 늘어날 것이다. 한국도 교육부, 문화부, 해양수산부 등에서 공무원을 파리 본부와 방콕사무소에 파견하고 있지만, 공무원뿐만 아니라 관련 전문기관이나 연구원의 전문가를 파견해서 이후 상황이 개선되어 직원 채용이 재개될 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재정 위기로 인해 유네스코의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조직 운영이 어느 정도 개선되리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있다. 그렇지만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사무총장의 개혁안이 번번이 회원국들의 입장 대립 속에서 좌초되었던 점을 떠올리면 그러한 개혁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위기에 빠진 유네스코를 구하기 위한 건설적인 대안 모색이 필요한 때이다.
임현묵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국제협력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