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7구에 위치한 유네스코 본부는 그 자체가 일종의 미술관이며 박물관이다. 피카소와 미로의 회화, 자코메티와 칼더의 조각이 있는 현대 미술의 소장고일 뿐만 아니라 각 회원국들이 수시로 기증한 고고 문화재가 곳곳에 전시되어 방문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유네스코 본부 건물을 공동 디자인한 제르퓌스, 브뢰어, 네르비 등의 건축가들은 설계 당시부터 이미 유네스코에 기증이 예정된 벽화, 모자이크, 설치작품 등 특정 예술품을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 벽면의 크기나 공간의 동선을 고려했다고 한다.
1960년과 1985년 본부 건물을 증축하면서 유네스코는 자코메티 등의 작품을 직접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유네스코가 보유한 약 700여 개의 예술품은 대부분 기증 받은 것이다. 1953년 유네스코 제2차 임시 총회에서는 사무총장이 본부 건물의 실내외 장식을 위한 예술품 기증을 회원국에 요청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기증 제안을 심의하고 조언할 수 있는 예술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초기부터 유네스코 본부에 ‘박물관’ 개념을 적용하자 해를 거듭할수록 유네스코의 소장 예술품은 증가했고, 교육과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국제기구답게 현재 유엔 기구 중 가장 많은 예술적 유산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유네스코에 국가 수반이 방문하거나 콘서트, 전시, 기념일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는 계기에 미술품이 기증되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유네스코 본부라는 공간의 브랜드를 의식하여 공공외교 차원에서 예술품의 기증이 기획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증된 모든 작품이 유네스코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하지는 못한다. 기증 작품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산(Heritage) 컬렉션으로 분류되면 본부에 전시도 되고 유네스코 웹사이트나 카탈로그에 예술품 목록으로 공식 등재된다. 이외는 일반(Regular) 컬렉션으로서 별도 수장고에 보관되고 외부에서도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현재 유산 컬렉션 5점, 일반 컬렉션 3점이 유네스코에 소장되어 있다. 유산 컬렉션은 김기창, 박광진, 민경갑, 강익중 화백의 그림 4점과 고려청자 1점이다. 박광진 화백의 ‘갈대’(1935)는 유네스코 사무총장 사무실 앞에 걸려있고, 고려청자는 집행이사회 의장실을 지키고 있어 평소에는 쉽게 감상하기 어렵다. 5월 18일에 유네스코는 ‘유럽박물관의 밤’ 참여 행사로 예술 소장품 야간 전시를 열었다. 르피가로(Le Figaro)는 “유네스코, 숨겨진 보물을 꺼내다”라는 제목으로 행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행사를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해서 한국의 유산 컬렉션 특별전시를 열어, 평소에는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한국 예술품들이 한 곳에서 조우했다. 야간개방 6시간 만에 3천 명이 관람을 하는 등 관심이 대단했다.
혹자는 요즘과 같은 유네스코 재정위기에 유네스코가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 몇 점만 처분하면 1년 예산은 충분히 확보될 것이라 조언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 규정에 따라 소장 예술품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유네스코 자산 산정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아무리 유네스코가 재정적으로 어려워도 관람료를 받거나, 예술품을 경매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강상규 주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 주재관
강상규 주재관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직원으로 2012년부터 프랑스 파리 주 유네스코 한국 대표부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