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만화가 에르제(1907–1983)의 필생의 역작인 <땡땡의 모험 Les Aventures de Tintin>. 호기심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기자 땡땡이 전세계를 넘나들며 벌이는 이 모험담은 1929년에 첫 선을 보인 이후 성공적인 출판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50여개국 이상에서 3억권 이상의 판매되었고, 각종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로 만들어지고, 관련 박물관과 전용 기념품가게까지 생겼다. 하지만 역시 『땡땡의 모험』의 가장 큰 매력은 만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에르제는 24권의 방대한 양의 만화를 통해 역사, 문화, 추리, 공상과학, 판타지의 장르를 혼합하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세계를 복잡하면서도 깔끔하게 구축해 놓았다.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가족만화의 고전’
‘가족 만화의 고전’이라고 흔히 소개되지만, 『땡땡의 모험』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가족이 없이 혼자사는 사람들이다. 고아 출신에 강아지 밀루와 함께 사는 주인공 땡땡을 비롯해서, 주요 등장인물인 아독 선장, 해바라기 박사 모두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하나같이 크고 작은 약점 투성이다. 땡땡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고 어른스러워선지 또래 친구들이 별로 없다. 아독 선장은 술고래에 다혈질로 온갖 사건 사고의 시발점이다, 반귀머거리인 해바라기 박사의 동문서답에는 독자들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을 정도다. 형사 뒤퐁과 뒤뽕은 이직을 제안하고 싶을 만큼 무능하다. 주요 인물 중 유일한 여성인 카스타 피오레는 세계적 명성의 성악가지만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주변의 눈총을 산다.
이런 인물들이 함께 하는 모험이 순탄할리 없다. 대부분은 주변 어른들이 야기한 위기를 가장 어린 땡땡이 기지와 재치로 해쳐나가는 식이다. 불만을 가질만한데, 그렇다고 못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수룩해서 정이 가고 도저히 못 본 체 할 수가 없다. 게다가 평상시에는 사고만 치던 어른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대부분 우연의 도움으로) 땡땡을 구해주는 일도 생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타인에서 친구로, 결국은 가족과도 같은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되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죽음을 넘어선 우정의 힘
인간관계가 변화면서 땡땡의 행동도 바뀐다. 전화한 통에 여행가방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채 훌쩍 모험을 떠났던 그가. 이제는 친구들의 무사를 먼저 확인하고 함께 모험을 떠난다. 모험의 동기 또한 초기에는 사회적인 관심과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후반으로 갈수록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속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아진다.
특히 땡땡의 유일한 또래 친구로 나오는 중국인 ‘창’과의 우정은 시리즈 전체에서도 돋보인다. 중국이 배경인 <푸른 연꽃> 편에서 땡땡은 우연히 창을 익사의 위험에서 구해 주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창은 중국의 다양한 모습을 알려준다. 이를 통해 땡땡은 중국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고 모험을 함께 겪으면서 둘의 우정은 더욱 깊어진다.
이후 <티베트로 간 땡땡>에서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인한 창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땡땡은 망연자실하지만 창이 자기를 살려달라는 꿈을 연속으로 꾼 후 망설이지 않고 사고가 난 티벳으로 떠난다. 이러한 무모함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독 선장은 땡땡을 염려해서 함께 따라나선다. 친구와 함께 또 다른 친구를 찾아 나선 이 모험의 결과는 <땡땡의 모험> 다른 편과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이다. 땡땡과 아독 선장은 기적적으로 살아 있던 창을 구해내며, 인종과 국적을 훌쩍 뛰어넘는 우정의 힘을 증명해 보인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창은 에르제의 실제 친구였던 창총런이라는 중국인 조각가를 모델로 했다는 점이다. 당시 벨기에에서 활동하고 있던 창총런은 에르제가 땡땡의 중국 모험을 준비하는 것을 알게 된다. 창총런이 당시 유럽이 중국에 가지고 나약하고 소극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내용을 담아 주기를 에르제에게 제안하면서 둘은 알게 되고 친구가 된다. 이 둘의 우정은그 후로도 계속되었고, 에르제는 과거와는 달리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균형잡힌 시각을 만화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매력
『땡땡의 모험』의 초기작에서 드러나는 제국주의적 편견이나 에르제의 나치 부역여부 등은 여전히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전세계의 소식을 알 수 있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오늘날 『땡땡의 모험』은 조금 단조롭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단 친구를 먼저 살리고 나서 그 다음을 고민하는 이 낙천적인 젊은 기자와 친구들의 매력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함께 읽어볼만한 책 『먼나라 이웃나라』 전세계를 여행하며 여러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했다는 점에서 『땡땡의 모험』 얼핏 이원복의『먼나라 이웃나라』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두 만화 모두 해외여행이 활발하지 못한 시기에 발표되어 오랜 시간에 걸쳐 방대한 양으로 집대성되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원복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과는 제목에도 유사점이 있다. 다른 문화와 역사를 배움으로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두 만화 남녀노소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모험담인 『땡땡의 모험』과는 달리 『먼나라 이웃나라』는 다른 나라에 대한 역사, 문화에 대한 지식 전달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다. |
한국유네스코평화발전연구소 홍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