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간 전 세계 인류는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가공할 위력의 바이러스에 맞서 사투를 벌여 왔다. “언제 어디서든 감염될 수 있다”는 방역 당국의 경고대로 바이러스는 모든 곳에서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든 감염되고 전파될 수 있는 것은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유네스코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확산되는 ‘허위정보의 팬데믹’도 실제 바이러스 못지않게 심각한 상황이며, 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한다.
머릿속에서 확산되는 또 다른 팬데믹
“트럼프 대통령은 유명 헐리우드 배우 및 사회지도층 인사들로 이루어진 사탄숭배 소아성매매 조직을 상대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위협을 느낀 이들은 트럼프를 부도덕하고 부적격한 사람으로 몰아 그가 불러올 ‘심판의 날’을 막고자 한다.”
황당한 우스갯소리로 들릴 법한 이 주장은 최근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큐어넌’(QAnon) 음모론의 요지다. 스스로를 ‘Q’라고 부르는 익명(Anon)의 기밀폭로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지는 이 음모론은 이제 인터넷상의 밈(meme; 사람에서 사람 사이에 전파되는 어떤 생각, 스타일, 행동)을 벗어나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는 데까지 이르렀다. 미국 및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 코로나19 시위 현장에서는 이를 언급한 팻말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지난 8월 백악관 브리핑에서는 기자가 대통령에게 큐어넌 관련 내용을 질문하기도 했다. 영국의 BBC는 지난달 3일자 기사에서 “코로나19 관련 미신과 큐어넌 음모론이 결합해 거대한 종합 음모론이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하며, 자사에도 “코로나바이러스는 아동성매매 단체 관련 폭로를 덮으려는 것이라는 내용의 제보가 여럿 들어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ISD의 클로에 콜리버(Chloe Colliver) 디지털정책전략부서장은 “위험한 허위정보의 잠재적 청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들을 일반인과 구분짓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며 “인터넷 플랫폼들로서는 이러한 허위정보를 쉽게 걸러내기는 이미 늦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큐어넌만큼 황당한 내용은 아닐지라도, 전례없는 바이러스의 확산과 더불어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음모론을 접하는 것은 국내외 할 것 없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중국의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거나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정부가 조작하고 있다는 설 등이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이야기들이다. 대다수는 확실한 근거가 없음에도 청자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솔깃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이거나 ‘빌 게이츠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서 몸 속에 마이크로칩을 심으려 한다’는 소문처럼 막연한 의심과 공포를 자극하는 것들이지만, 이들은 인터넷망을 타고 다양한 채널로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적지 않은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아니라 ‘허위정보’인 이유
SNS와 메신저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며 정보의 혼란(information disorder)을 야기하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주류 언론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난 2016년 미 대선이었다. 당시 SNS, 특히 페이스북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라든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와 주고받은 이메일이 공개됐다’라는 허위정보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공유됐고, 이때부터 ‘가짜뉴스’(fake news)라는 말도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이 말은 사실을 왜곡해 전달하거나 거짓을 사실인양 뉴스로 포장한 정보를 지칭하는 용어로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가짜뉴스가 비록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널리 알려진 말이지만, 유네스코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것이 현재 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오염시키고 있는 일련의 잘못된 정보들을 지칭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용어라고 이야기한다. 2017년 유럽평의회가 발간한 『정보 혼란: 연구 및 정책 마련을 위한 다학제적 프레임워크』는 “‘가짜뉴스’라는 말은 정보 공해의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라며, 이것이 생산 목적에서부터 전체 혹은 일부의 사실 여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잘못된 정보들을 한 데 섞어 모호하게 만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정치가들이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언론 기사에 이 용어를 갖다붙임으로써 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깎아내리고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2018년에 유네스코가 발간한 저널리즘 교육과 훈련을 위한 핸드북 『저널리즘, ‘ 가짜뉴스’ 및 허위정보』도 “뉴스란 검증 가능한 정보로 공익을 우선해 만들어진 소식을 지칭하므로 ‘가짜뉴스’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 지적하고, 이 용어가 “정당한 요건을 갖춘 ‘진짜 뉴스’에 대한 신뢰도를 깎아내린다”며 우려를 표했다. 더불어 가짜뉴스라는 용어는 “정보 유포자가 잘못된 정보임을 인지하지 못한 ‘오보’와 정보 유포자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고의로 유포하는 ‘허위정보’를 구분짓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적절치 못하다고 언급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보 생산자나 소비자 할 것 없이 우선 정보의 혼란을 야기하는 정보들을 확실하게 분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위의 두 간행물들은 모두 혼란을 일으키는 정보의 유형을 ▲사실이 아니지만 해를 끼칠 의도가 없는 ‘오보’(mis-information)와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해를 끼칠 의도로 유포된 ‘허위정보’(dis-information), 그리고 ▲사실이지만 해를 끼칠 의도로 공적 영역에 유포된 ‘유해정보’(mal-information; 유명인사의 사생활 폭로, 중요 기밀 유출 등)로 구분할 것을 제안하고, 각각의 경우에 맞는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정보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에 따라 “필요하거나 적절하거나 실현 가능한 해결책도 제각각”이라는 이유에서다.
진실이 아닌 믿음에 관한 문제
유네스코는 위 세 가지 정보의 유형 중 허위정보의 확산을 막거나 예방하는 것이 코로나19로 전 지구적 위기를 겪고 있는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진단한다. 비록 허위정보가 생성되고 유포된 역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지만, 조작된 콘텐츠를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이를 광범위하게 퍼뜨릴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가 갖춰진 현대 사회는 허위정보가 “더 자주 만들어지고 더 많은 지원을 받으며 더욱 강화”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유네스코는 「허위정보 – 코로나19 허위정보를 판독하다」 정책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관련 허위정보는 의학 및 과학에 혼선을 일으켜 모든 시민 및 사회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므로 더욱 위험하고 치명적이다”라고 분석하는 한편, 현재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보의 혼란 상황을 ‘디스인포데믹’(disinfodemic; 허위정보를 뜻하는 ‘disinformation’과 바이러스의 대규모 확산을 뜻하는 ‘pandemic’의 합성어)이라 규정했다.
아프리카 최초의 팩트체크 기관인 ‘아프리카 체크’(Africa Check)의 보건 연구원이자 저널리스트인 디옴마 드라메(Diomma Dramé)도 유네스코 『꾸리에』 기고문을 통해 현재의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이 허위정보가 대량으로 생성·확산될 수 있는 매우 비옥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새로 출현한 바이러스의 많은 부분을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하지 못한 틈을 타 허위정보가 기록적인 속도로 퍼지고 있음을 밝히며 “해소되지 못한 정보에 대한 갈증이 더욱 많은 루머와 허위정보를 낳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는 공백을 허위정보가 더욱 쉽게 파고든다는 뜻이다. 이처럼 믿을만한 정보에 대한 허기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 상황에서 각각의 정보 소비자들이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그래서 ‘더 믿음직한’ 사용자들로부터 공유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성향을 분석해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내용’만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킬 때, 이용자는 자신의 기존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무비판적으로 믿게 되는 ‘확증 편향’에 빠질 수밖에 없다. 드라메가 앞서 『꾸리에』 기사에서 지적한 대로 “믿고자 하는 욕망이 정보를 얻고자 하는 욕망을 앞서게 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라는 면역력 기르기
그렇다면 바이러스에 대해 여전히 확실히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불확실한 지금의 상황에서 허위정보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을 막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가이 버거(Guy Berger) 유네스코 정보커뮤니케이션분야 정책전략국장은 먼저 정보의 ‘공급’ 측면에서 정부와 언론이 바른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버거 국장은 유엔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차원에서 정부가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보다 투명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공식 채널이 공급하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위기 속에서 시민들이 신뢰를 쌓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부가 언론을 대신해 혼자서 올바른 정보 공급자의 역할을 해선 안 된다”며 책임있고 독립적인 언론이 허위정보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당한 취재와 정보 습득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언론이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허위정보와의 싸움에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네스코는 이렇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생산된 정보의 ‘전달’ 측면에서 ‘인터넷의 보편성’(Internet Universality)이라는 대전제를 강조하고, 인터넷이 ▲인권 ▲개방성 ▲접근성 ▲다양한 주체의 참여라는 4가지 원칙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정부와 주요 인터넷 기업 및 시민사회와 함께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통해 허위정보와 결합하여 확산되기 쉬운 혐오 발언이나 극단적 폭력 등의 메시지가 아무런 제약 없이 공유되고 생산되지 않도록 기술적, 도덕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손쉽게 정보의 생산자 및 유포자가 될 수 있는 21세기에 공급과 전달의 측면에서 시행되는 위와 같은 조치만으로 허위정보의 확산을 막기란 쉽지 않다. 유네스코가 지난 수십 년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Media & Information Literacy, MIL)를 높이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네스코는 뉴스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 역시 MIL을 통해 미디어와 기술과 정보를 보다 자신감 있게 다룰 수 있게 되며, 나아가 비판적 사고력을 지닌 시민으로서 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고 강조한다. 모든 시민들이 정보의 진실성을 판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허위정보를 쉽사리 믿거나 이를 공유하지 않으며, 자신이 생산하고 공유하는 정보가 편견이나 혐오 또는 분노를 담지 않도록 유의할 때 허위정보에 대한 사회 전체의 ‘면역력’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라고도 믿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제 멋진 문화유산을 감상할 때만 쓰이는 말이 아니라, ‘정보가 곧 무기’인 세상에서 정보를 얻거나 만들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되었다. 특히 코로나 시대의 ‘디스인포데믹’은 우리에게 정보가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힘인 동시에 온갖 혼란을 야기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 상자 안에 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리고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 ‘진짜’를 판별할 수 있는 지성의 눈을 갖고 싶다면, 유네스코와 한국이 ‘디스인포데믹에 저항하다: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MIL’이라는 주제로 오는 10월 24일부터 31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2020 글로벌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주간’(www.gmil2020.co.kr)을 한번 주목해 보자.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
[참고자료]
· bbc.com “How Covid-19 Myths Are Merging with the QAnon Conspiracy Theory”
· Council of Europe 『Information Disorder: Toward an Interdisciplinary Framework for Research and Policy Making』(2017)
· news.un.org “During This Coronavirus Pandemic, ‘Fake News’ Is Putting Lives at Risk: UNESCO”
· unesco.org “The Health Crisis: Fertile Ground for Disinformation”, “New Resources to Counter COVID-19 Conspiracy Theories through Critical Thinking and Empathy”
· UNESCO 『Journalism, ‘Fake News’ & Disinformation』(2018), 「Disinfodemic: Deciphering COVID-19 Disinformation」 Policy Brief 1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