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 등 통해 지식과 경험 전수 … 동티모르 등 4개국 등재 도와
오늘날 캄보디아의 근원이 된 크메르 제국은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존속했던 왕국이다. 당시 찬란하게 꽃피웠던 크메르 문명은 지금까지도 캄보디아 사회와 문화의 일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앙코르와트가 화려했던 크메르 문화의 외면을 보여준다면, 그 내면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바로 ‘림케’이다. 림케는 인도의 라마야나가 힌두교와 함께 2세기경캄보디아로 들어와 변형된 힌두교 신화이자 서사시이다. 또한 캄보디아 사람들의 역사관과 문화관,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끼쳐온 정신적 뿌리이기도 하다. 림케는 연극, 문학, 무용 등 거의 모든 크메르 예술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림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캄보디아의 유명한 이야기꾼 타쿠릇이다. 1960년대 국립 라디오에서 맹활약하던 당시 그는 림케 서사시를 12시간에 걸쳐 녹음하였다. 또 칸달 지역의 로카콩 마을에서도 6시간 45분에 걸쳐 림케를 공개적으로 들려준 바 있다. 이 자료들은 구전되어 온 크메르 문명의 림케가 완전하게 수록된 유일한 오디오 기록이다.
타쿠릇의 오디오 자료가 새삼 화제가 된 것은, 2013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 등재훈련 워크숍’에 ‘타쿠릇의 림케, 세계의 서사시’가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 초안으로 제출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태지역에서 기록유산 등재 활동이 활기를 띠게 되기까지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세계기록유산을 11건이나 등재시켜 이 분야에서 선도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2009년부터 그간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아태지역 이웃나라들과 나누고 있다. 기록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아태지역 내 인식을 높이는 한편, 가치 있는 기록유산의 발굴과 보존을 돕기 위해 저개발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것.
그 시발점이 된 것이 2009년 경기도 이천에서 처음 개최된 ‘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 등재훈련 워크숍’이었다. 이 워크숍은 2011년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태지역을 대상으로 다시 열렸고, 2012년에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아프리카지역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한위의 지원에 힘입어 벌써 4개 국가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마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09년 제1차 아태지역 워크숍에 참가했던 국가들 중 몽골의 ‘알탄톱치 : 1651년에 쓰인 황금역사서’, 베트남의 ‘로 왕조와 막 왕조 왕조시험기록 비석’, 피지의 ‘인도인 노동자들의 계약이민 기록’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고, 2011년 제2차 아태지역 워크숍에서 등재신청서를 작성 및 보완한 동티모르의 ‘국가의 탄생’ 또한 올해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이번 아태지역 워크숍에는 캄보디아를 비롯하여 라오스, 몰디브, 마셜 제도, 사모아, 피지, 스리랑카, 쿡 제도 등 8개국이 참가했다. 이들 참가국은 아직 자국 기록유산을 세계기록유산목록에 등재하지 못했거나 한 건만 등재한 국가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레이 에드몬슨 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위원회 위원장, 얀 보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심사소위원회 위원장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5명의 전문가가 워크숍에 참석해 기록유산 등재신청서 작성과 보완에 대한 실직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번 워크숍의 가장 핵심인 그룹별 신청서 검토 작업에서는 캄보디아의 ‘타쿠릇의 림케, 세계의 서사시’ 외에도 아태지역 8개국의 진귀한 기록유산에 대한 등재 신청서 준비 작업이 이뤄졌다. 1890년부터 1937년까지 요하임 디브럼이 제작한, 마셜제도의 선교사들과 상인들 등의 모습을 담은 2227개의 사진 원판으로 구성된 ‘유리 필름 모음집’, 13세기 몰디브의 토지 보조금 기록을 담고 있는 ‘로마파누’ 동판모음, 그리고 영국과 칸 드얀 왕국이 왕 라지싱하의 면직을 기술한 스리랑카의 ‘1815 칸 드얀 협정서’ 등이 그것이다.
올해 워크숍에는 특히 태평양지역 국가들이 다수 참가하여 아시아지역에 비해 등재가 저조한 이 지역의 기록유산 보호 및 인식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워크숍 기간 중 보완된 신청서들은 2014년 유네스코 본부로 제출돼 2015년에 최종 등재 여부를 심사받게 될 예정이다. 이 신청서들이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등재된다면 해당 국가는 물론 이번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문화재청에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세계기록유산이란? 다함께 지켜야 할 ‘세계의 기억’ 기록유산은 인류 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대한 기록으로서, 과거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미래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그러나 형태상의 취약점으로 인해 훼손, 유실 등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이와 같은 위험으로부터 인류의 소중한 기록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지난 1992년부터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 중 가장 성공적이고 가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인 ‘세계기록유산 목록’은 세계적, 지역적, 국가적 중요성 및 의미를 인정받은 기록유산을 목록에 등재하는 사업이며, 등재된 기록유산을 세계기록유산이라 지칭한다. 2013년 현재 전 세계 102개국 및 4개 국제기구의 기록유산 301건이 등재되어 있고, 아태지역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24개국 80건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훈민정음(1997년)과 조선왕조실록(1997년)을 시작으로 직지심체요절(2001년), 승정원일기(2001년),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년), 조선왕조의궤(2007년), 동의보감(2009년), 일성록(2011년),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2011년), 난중일기(2013년),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년) 등 총 11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지역에선 첫 번째, 세계에선 다섯 번째로 많은 기록유산을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