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회관 소위원회 박경립 위원장
“유네스코회관이 유네스코 정신을 실천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박경립 강원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11월 열린 제260차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집행위원회에서 유네스코회관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한국 유네스코 활동의 보금자리인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의 다가올 50년을 준비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박 위원장의 포부를 들어 보았다.
먼저 유네스코회관 소위원회 위원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유네스코회관 소위원회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상대적으로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인데요, 어떤 목적으로 구성된 것인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건축은 그것을 짓고 그 속에서 살았던 삶들과 시대를 증언하는 일종의 기록물입니다. 유네스코회관은 우리 국민의 염원과 비전, 노력을 담아 1967년에 준공된 건물입니다. 이제 갓 50살이 넘었지요. 그간 이 회관은 한국 유네스코 활동의 중심지이자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을 통해 한국과 유네스코는 긴밀히 연결되었고, 모든 활동의 역사가 여기 담겨 있습니다. 든든한 이공간이 있었기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50여 년 동안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건물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리적으로 약해지고 환경적 성능도 떨어집니다.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맞춰 내부 공간도 변해야만 합니다. 각 시대의 삶과 역사,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적절한 진단과 처방, 보강이 있어야 합니다. 운영예산의 상당 부분을 회관 임대에 의존하는 한국위원회로서는 공간 사용을 최적화해 경제성을 높이는 동시에, 건축의 역사·문화적 가치도 보존해야 한다는 이중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회관 소위원회는 이런 복잡한 문제를 지혜롭게 풀기 위해 꾸려진 조직입니다.
만장일치로 회관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셨습니다. 위원장님의 어떤 이력이 집행위원들께 믿음을 주셨을까요?
제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문성이 필요한 시기에 우연히 건축 전공을 한 제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대학에서 건축설계와 건축역사를 가르쳤던 건축과 교수이자 틈틈이 설계를 하였던 건축가입니다. 그리고 문화재청 건축문화재분과 위원(장)으로 국보와 보물을 보존하고 수리하는 일에 관여했고, 유네스코 창의도시 한국위원회 자문위원장으로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이러한 인연과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지난 30여 년간 개개의 건축물 못지않게 도심 속 역사문화 환경 보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고민 끝에 이 어려운 숙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유네스코 회원국 국가위원회 중 규모나 재정 면에서 가장 탄탄한 조직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명동 중심부에 위치한 유네스코회관은 특히 유네스코 활동의 재정적 측면에서 중요한 버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건축가이자 문화재 전문가로서 진단할 때, 안전성, 문화재적 가치, 자산적 가치 등의 측면에서 유네스코회관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50여 년 전 우리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 국민들이 온 힘을 모아 세운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이 회관은 국가 등록 문화재로서의 요건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준공 이후 내부가 일부 변경되었고 외관의 변화도 많았지만, 충분히 원형을 확인할 수 있고 가장 근본이 되는 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조사연구와 세미나를 통해 그 가치를 상세히 밝히고, 보존해야 하는 부분을 세심하게 처리하면 문화재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이 건물은 자동차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에 지어져 주차장 시설이 없고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충분하지 못합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요구와 기준에 맞추어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노후화된 구조와 설비 시스템의 교체 및 보강을 위한 전문적인 진단과 판단도 필요합니다. 더불어 서울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 건축물의 입지적 가치와 장점을 충분히 살려 공간의 경제성도 높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 건물이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건물임을 잊지 않으면서, 앞으로 또 다른 50년 동안 우리가 효율적이고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 계획과 유지 관리 계획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위와 같은 평가에 기반하여 향후 2년 동안 소위원회에서 어떤 부분에 집중하실 계획인지도 궁금합니다.
회관 건축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밝혀 등록문화재로 등재하는 일을 준비하고, 정확한 진단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투자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더불어 지속가능한 사용을 위한 비전을 담은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다른 위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관계 당국의 이해와 협조가 함께 한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끝으로, 위원장님이 생각하시는 ‘유네스코다운 건물’이란 무엇일까요?
유네스코회관은 20세기 후반 우리나라가 추구하고 지켜 나가고자 했던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담아낸 몇 안되는 독자적 건축물입니다. 이곳이 역사 속 공간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는 중심 공간이될 수 있도록, ‘유네스코 정신을 실천하는 공간’으로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 관련 기관들이 입주하여 유네스코 활동 네트워크의 구심적 공간이자 유네스코를 통한 세계평화 구축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국내외 관계자들의 교육 공간이자 탐방객들의 정보 공유 및 소통 공간으로 활용되고 관련 회의 및 세미나 개최와 교류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국가의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노후화된 건물과 소규모 업체들의 임대 소득으로 유네스코 활동을 이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보존은 물론 지혜로운 재생으로 새로운 50년을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유네스코뉴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