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포용과 연대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지속성과 포용성을 잃지 않는 교육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애써 온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6월 7일 서울시 교육청에서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과 마주앉아 여러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경구 — 먼저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교육감님께서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단절 없는 교육을 위해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오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교육 현장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희연 — 팬데믹 속에서도 우리는 최대한 교육을 이어나가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성적 중위권을 의미하는 ‘학습 중간층’이 얇아지고 성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은 다양한 교육격차 해소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올해는 정책적 노력을 더욱 강화해 학습 중간층 복원에 전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그 일환으로 모든 학생이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고 배움을 이어가도록 지원할 ‘기초학력(기본학력) 협력교사’를 공립 초등학교와 공・사립 중학교 전체에 전면 배치합니다. 이를 통해 교사-학생 간 소통이 활발해지면, 교실에서부터 모든 학생의 학습 부진을 예방하고 기초학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경구 — 말씀하신 대로 단지 ‘회복’뿐만이 아니라 학습격차나 불균형 해소 등에 대한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한 때입니다. 이는 비단 교육에 국한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다루어야 할 문제이기도 할 텐데요.
조희연 — 코로나19는 단지 교육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제·사회·생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감수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기후위기와 팬데믹, 공해, 생물종 감소와 같은 구조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포함한 지구 전체의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생각의 뿌리를 바꾸고 새로운 사고를 촉진하는 교육적 전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생태전환교육’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사람과 더 나은 지구를 위해 현존하는 교육을 재구상하는 것이지요.
한경구 — 지난 5월 17일부터 19일까지 열린 ESD 세계회의(이하 세계회의)에서도 발표하셨지만, 말씀하신 생태전환교육은 여러 면에서 유네스코의 지속가능발전교육(ESD)이나 세계시민교육(GCED)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명칭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세계시민 양성을 위해 두 기관이 함께 할 일들이 많다고 봅니다. 저는 세계회의 자리에서 지속가능발전교육과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관심과 사례를 공유한 발표도 인상깊게 봤는데, 두 분야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이 갖고 있는 생각을 독자들과 공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희연 — 서울시 교육청은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유네스코의 지속가능발전교육 2030(ESD for 2030)이라는 국제적 기준에 부응하여 생태전환교육 중장기 발전계획(2020-2024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탄소배출 제로(0) 학교’를 목표로 학교 환경을 전환하고, 교육구성원들이 ‘생태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의 생태적 전환과 전환적 실천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학생들이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경험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포용적이고 성숙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고, 그 일환으로 ‘미얀마의 봄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사회 현안 계기교육 자료를 만들어 학교 현장에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교육의 비전이 곧 지속가능발전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촌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2010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서울시 교육청이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ASPnet),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 교육사업 등 협력 사업을 적극 추진해 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한경구 — 현재 서울시의 81개 학교가 전 세계 약 1만 1500개교가 가입해 있는 유네스코학교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유네스코학교 네트워크에 가입한 지도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간 서울시는 개별 학교뿐만이 아니라 지역협의회를 통한 활동도 활발히 진행해 오고 있는만큼, 이 자리를 빌려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유네스코학교 활동의 목표와 내용은 국내 교육의 목표나 내용과 접점이 매우 넓고 상응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교육기본법 제9조에 “학교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 교육을 중시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전인적 교육이란 지덕체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뿐만 아니라, 나와는 멀리 떨어진 나라의 사람이나 앞으로의 인류를 염두에 두는 사람, 즉 시공간적 관념이 내 나라 사람과 현재에만 머물지 않는 세계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희연 —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육을 통해 특정한 인식과 행동을 하는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 교육의 가장 큰 의의가 아닌가 합니다. 교육은 한 명의 자연인이 사회적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식과 행동을 학습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러한 측면에서 저는 교육이 경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모든 학생들이 능력, 민족, 인종, 성 등에 구애받지 않고 똑같이 존중받으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오직 한 사람 교육’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자 우리 공동체의 문제’라는 깨달음을 통해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자격을 추구하는 교육을 멈추고 ‘지속가능발전’이라는 변혁적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출발점에서 미래의 교육에 대한 비전을 유네스코가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경구 — 말씀하신 대로 유네스코는 1972년 「포르 보고서」와 1996년 「들로르 보고서」 등을 통해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미래교육 담론을 이끌어 왔고, 올해 11월에는 「교육의 미래(Futures of Education)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입니다. 이 보고서는 기후위기와 사회불평등 등으로 예측되는 여러 가지 미래를 제시하며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인류의 변화를 촉구하는 한편, 이를 위해 교육시스템과 학교 및 교육기관의 구성, 교과과정, 교수법 등 교육 전반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강조할 예정입니다. 또한 교육이 물과 대기, 생물다양성만큼이나 중요한 전지구적 공공재이며, 교육계가 공교육 및 민주적 교육의 유산을 수호·확장하는 것과 더불어 사회적 숙의를 통해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공동으로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예정입니다.
조희연 — 불평등과 양극화, 차별과 혐오, 극심한 경쟁, 생명 경시, 개발지상주의,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등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세계사적 위기입니다. 이에 서울시 교육청도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를 통해 교육부가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평화, 세계시민성, ESD 등을 포함시키도록 강력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ESD가 양질의 교육을 위한 본질적인 토대’라는 유네스코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미래의 주체가 될 학생들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생각하고,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 행동하는 세계시민으로 자라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단위에서도 함께 다루어야 할 교육 이슈로, 그 과정에서 유네스코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경구 — 국제교육계의 담론과 국내현장과의 연결을 강화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데 공감합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교육권과 학습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역할이지요. 사실 한국 교육은 그동안 여러 국내 이슈에 매달리느라 일부 주제(PISA 성취도 등) 외에는 국제 이슈에 큰 관심을 두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도 국제업무는 다른 부서로부터 업무가 다소 괴리되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4번(SDG4)의 국내 포컬포인트로서 SDG4 국내 협의체를 운영하고 유네스코학교 네트워크, 브릿지 사업을 추진해 온 것과 더불어, 국내 및 국제 교육계의 공통된 노력을 이끌어내는 데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위원회는 서울시 교육청이 진행하는 2021 세계시민교육 온라인 국제 수업 교류 사업과 교육부가 추진 중인 한-신남방 온라인 역사 교류 활성화 지원 사업에서 서울시 교육청 관내 15개 학교와 교류 대상 아세안 국가 소재 학교와의 연락 및 연계 업무를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전 세계 학교 간 온라인 교류는 앞으로도 중요한 교육 활동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만큼 우리 위원회와 서울시 교육청의 협력 여지도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서울시 교육청이 유네스코의 다양한 교육 사업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희연 — 서울시 교육청은 평화와 공존의 세계시민 양성을 목표로 인권교육, 평화교육, 문화다양성교육, 생태교육 등 SDGs 지표를 교육현장에서 충실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불과 70년 만에 유네스코의 교육 수혜국에서 대표적인 공여국이 된 자랑스러운 나라로서, 이제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지구의 생태계를 유지하며 더불어 발전하고, 상호 이해와 존중,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돕기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교육 분야에서 유네스코와 협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