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뉴스 800호가 지나온 길
1964년 1월에 창간한 『유네스코뉴스』가 올 2월로 800호째를 맞았다. 60여 년에 걸쳐 『유네스코뉴스』가 지나온 8백 개의 발자국 위에는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굵직굵직한 순간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지난 『유네스코뉴스』가 다뤄 온 주요 이정표들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찾아 보았다.
1964『유네스코뉴스』창간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유네스코 이념과 활동을 국내에 널리 알리기 위해 1957년부터 월간 『유네스코 통신』을, 1962년부터 프린트물 책자 형태로 『유네스코 뉴스레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유네스코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사업과 활동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간행물의 시작은 1964년 1월에 창간된 『유네스코뉴스』라고 할 수 있다. 컬러로 된 표지만 덧붙인 흑백 프린트물 형태로 첫 선을 보인 『유네스코뉴스』는 현대의 기준으로는 가독성과 보는 재미가 크게 떨어지지만, 정보 전달과 지식 습득을 위한 자료 자체가 풍족하지 못했던 당시 한국에서 유네스코 본부가 발간하는 『쿠리에』에 실린 좋은 글들을 선별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이후 『유네스코뉴스』는 한국 사회의 경제 발전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역할 확대에 맞춰 판형과 지면, 발행 부수 등을 지속적으로 개편하면서 독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펼쳐오고 있다.
1967 유네스코회관 준공
창립 이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오랜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유네스코회관 건립이 1967년 2월에 마무리됐다. 1958년에 출범한 ‘사단법인 한국유네스코후원회’를 통해 건립 자금과 서울 명동의 회관 부지를 확보하고 1959년부터 시작된 유네스코회관 건축은 8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소식을 다룬 『유네스코뉴스』(제4권 제3호)는 명동 한복판에 자리잡은 유네스코회관을 “지상 11층, 지하 2층, 연건평 4,109.2평에 이르는 매머드 건물”이라 표현하면서, 당시로서는 서울의 몇 안 되는 현대적 고층빌딩을 마련한 것에 자부심을 표했다. 당시 유네스코회관 건물은 냉난방 설비와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첨단 건물이었으며, 건물 전면이 알루미늄 커튼월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건물로서 건축사적 가치도 있었다. 『유네스코뉴스』는 이러한 내용과 더불어 준공 사흘 뒤인 2월 20일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이 건물 7층에 입주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1974 제1회 조국순례대행진 출발
학생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행진하는 조국순례대행진은 1970년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대표적인 청년 사업 중 하나였다. “희망찬 조국의 내일을 향하는 젊은 대학인의 행진”을 취지로 1974년 8월에 처음 시작된 조국순례대행진은 청년 및 학생에게 방학 기간 학생 활동의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이후 많은 국내 단체들이 주관한 유사한 형태의 국토순례 프로그램의 원형이 된 것은 물론, 새로운 청년활동 및 청년문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신문 형태로 격주간으로 발행되던 『유네스코뉴스』는 8월 7일자 뉴스(180호)의 1면 기사에서 조국순례대행진 참가자 및 관계자들의 모습과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해당 기사는 “학생들이 예정 코스를 행진할 때마다 지방 유지들과 주민 그리고 학생들이 연도에 나와 열렬한 박수로써 젊은 순례자들을 격려해 주었”으며, “보리차와 콜라를 선물하면서 반가이 맞아 주기도 했다”고 썼다.
1977 유네스코청년원 개원
1965년 유네스코학생회(KUSA) 출범, 1974년 조국순례대행진 진행 등을 통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6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서 청년 중심의 유네스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이후 청년들의 교외 교육과 야외 활동을 보다 폭넓게 지원하기 위한 조직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 한국 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74년 8월 경기도 이천군(현 이천시)에 ‘학생종합수련원’ 부지를 마련해 공사를 시작했다. 1977년 6월 22일자 『유네스코뉴스』(246호)는 같은 해에 완공된 이 수련원의 공식 명칭을 ‘유네스코청년원’으로 확정했다는 제92차 집행위원회의 결정을 전했다. 해당 기사는 “피교육적 인상을 주는 ‘수련원’보다는 청소년·학생들이 스스로의 수련도장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 ‘청년원’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썼다.
1982 국내 첫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유네스코는 환경과 개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인간과생물권계획(Man and the Biosphere programme, MAB)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1980년 6월 MAB 한국위원회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내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을 위한 과정이 시작됐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면서 동시에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정하는 구역으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81년 8월에 지리산과 광릉, 한라산, 설악산 등의 4개 지역을 생물권보전지역 후보지로 선정했고 그 이듬해 설악산이 국내 첫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1982년 8월 31일자 『유네스코뉴스』(355호)는 이 소식을 “3년 만의 결실”이라는 표현과 함께 1면에 싣고 “선진국과 생물의 생태연구, 보전계획 등에 대해 상호 정보를 교환하며 자연보전 사업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대를 표했다.
1990 한국청년 해외봉사단 제1기 단원 파견
6·25전쟁 직후의 폐허 속에서 유네스코에 가입한 한국이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있게 되었음을 자각하게 된 이후, 이제 우리도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뜻을 가진 청년들이 많아졌다. 이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89년 정부에 해외 파견 청년봉사단 구성을 건의해 평화, 발전, 참여를 기본 이념으로 인류의 보편적 복지 증진과 국가 발전의 기반 조성을 목표로 하는 한국청년해외봉사단(Korean Youth Volunteers)을 창설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네팔, 스리랑카 등 4개국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1990년 4월 16일부터 훈련과정을 수료한 제1기 단원 44명은 8월 10일 유네스코청년원에서 수료식을 갖고 현지에서 의료, 교육, 농업, 체육, 사회봉사, 지역사회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같은 해 9월호에서 이 소식을 다룬 『유네스코뉴스』(450호)는 “봉사단이 추구하는 나눔과 섬김의 정신은 지구 위에 온 인류가 실천해야 할 덕목이 될 것”이라는 김영식 당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의 격려사를 소개했다. 단원들은 8월 30일에 프레스센터에서 언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한 뒤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오찬까지 함께 했다는 내용도 실려 있는 것을 보면, 당시 봉사단 파견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95 대한민국 첫 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995년 7월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만장일치로 한국의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의 세계유산 등록 권고안을 채택했다. 당시 격월간으로 발간되던 『유네스코뉴스』는 1995년 7-8월호에서 이 소식을 전하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현지 조사 평가서를 토대로 유산 등재 권고를 받은 이상 이변이 없는 한 같은 해 12월에 베를린에서 열릴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이들 유적의 등재가 확실시되고 있음을 알렸다. 더불어 “세계유산목록에 등록이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인류가 공동으로 책임을 갖고 보존을 위해 노력해야 할 귀중한 유산이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인 동시에 “우리 스스로 세계유산 보호의 책임을 안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면서, “경마장과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날로 피폐해지고 있는 천년고도 경주를 우리 국민 모두가 보살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후 ‘화성’과 ‘창덕궁’(이상 1997년),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과 ‘경주역사유적지구’(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에 이어 ‘한국의 서원’(2019년)까지, 14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소식이 있을 때마다 『유네스코뉴스』는 현장의 소식과 전문가들의 분석을 독자들에게 전달해 왔다.
2009 ESD 한국위원회 설립
2009년 6월 18일에 열린 제57차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정기총회에서 ‘유네스코지속가능발전교육한국위원회(ESD한국위원회)’의 설립이 결정됐다. ‘지속가능발전’이 유엔 전 회원국 차원의 화두가 되면서, 세계 각국은 정부 차원의 ESD 담당기구를 설치해 ESD를 교육 혁신의 한 축으로 삼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에 한국도 늦게나마 ESD한국위원회를 설립하면서 국내외 관련 지식 자원과 네트워크를 넓혀가는 일종의 기관 간 협업 체계를 마련했다. 『유네스코뉴스』는 2009년 7월호(648호)에서 이 소식을 전하고, 별도 칼럼을 통해 이를 “늦었지만 의미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해당 칼럼은 새로 출범하는 ESD한국위원회가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기능, 권한, 구성, 임무, 활동에 대한 깊은 통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0 아프리카 6개국에서 브릿지 프로젝트 실시
70여 년 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이제 유네스코 회원국 중 최상위권의 공여국으로 발돋움해 다양한 교육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1989년 제정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은 국제사회의 비문해 해소에 대한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2010년부터는 ‘브릿지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육 소외계층의 기초문해교육을 지원하고 동시에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과 지역 개발을 이룰 역량 강화를 돕고 있다. 2010년 10월 6일자 『유네스코뉴스』(653호)는 한 달여 전인 9월 16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열린 ‘아프리카 희망브릿지 발대식’ 소식을 1면에 싣고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는” 브릿지 사업의 출발을 알렸다. 50일에 걸친 훈련을 거친 활동가 18명은 “교육, 소통, 자립, 다양성, 희망의 5가지 가치를 표방하며 꿈꾸는 사람들이 이어가는 소통의 다리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2023 그리고 801번째 걸음
지난 2018년 1월(739호)부터 『유네스코뉴스』는 오랫동안 익숙했던 신문 형태의 포맷을 버리고 총 36페이지의 잡지 형태로 변신을 시도했다. 그러한 변신의 가장 중심에는 역시 ‘읽는 재미’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가급적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유네스코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포부와 진심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꾸미고자 했다. 그러면서 “이 새 모습이 800호를 향해 가는 『유네스코뉴스』의 ‘습관적 변화’가 아닌 ‘결정적 한 방’일 수 있기를 바란다”며 변화의 첫 이야기를 풀었다. 그로부터 벌써 4년, ‘바로 그 800호’를 맞은 『유네스코뉴스』가 그날의 다짐을 잘 이행해 왔는지 여부는 겸허한 마음으로 독자들의 판단을 구해 본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801번째와 그 이후 내딛는 걸음에서도 독자 및 후원자들의 응원을 양분 삼아 『유네스코뉴스』는 평화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이야기를 꾸준히 전할 것을 약속드린다.
정리 『유네스코뉴스』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