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협약 제18차 특별위원회 개최
매년 한 차례 열려 유네스코 세계유산 신규 등재를 비롯한 주요 안건을 처리해 오던 세계유산위원회는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일정에 차질을 빚어 왔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시행 반 세기를 넘어선 유네스코 세계유산사업이 새로운 5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1월에 파리에서 열린 특별위원회에서 위원국들은 차기 개최지 결정을 비롯해 굵직한 사안들을 처리하면서 흔들림 없는 사업 추진을 위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제8조에 의거해 설립된 세계유산위원회는 매년 한 차례 열려 세계유산 등재 유산 심의 결정, 기금 사용 승인, 위험에 처한 유산 선정, 보호 관리에 대한 정책 결정 등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0년도 회의가 이듬해로 한 차례 연기된 바 있고, 지난해 6월 19일부터 30일까지 열릴 예정이던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는 같은 해 2월에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개최되지 못했다. 통상 세계유산위원회는 위원회 의장국이 회의를 주최해 왔는데, 하필 러시아가 당시 의장국이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가 카잔에서 회의를 개최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세계유산위원회 의장단은 회의 장소 변경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절충안을 시도했으나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러시아는 2022년 11월에 이르러서야 원활한 의장 역할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의장국에서 자진 사임했으며, 세계유산협약 절차규칙에 따라 의장단 중 국가명 영어 알파벳 순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차기 의장국을 맡게 되었다. 결국 작년 12월에 열린 제17차 특별위원회는 2022년 정기위원회 개최를 유보하고 2023년 1월 중 제18차 특별위원회를 열어 제45차 정기위원회의 2023년 개최 일자와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말 개최된 제18차 특별위원회에서는 신규 의장국 사우디의 제안으로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를 개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한편, 이번 특별위원회는 최근 ‘분쟁에 관계된 기억유산(site of memory)’의 세계유산 등재 지침 마련을 위한 공개작업반 논의 결과를 공유했고, 전쟁 및 관리정책의 부재로 인해 위협에 처한 3건의 세계유산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World Heritage in Danger)’으로 등재하는 안건도 논의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치열한 전쟁의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된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역사지구를 비롯해 레바논의 ‘라치드 카라미 국제시장’과 예멘의 ‘고대 사바왕국 유적’ 등이 현 상황의 응급성을 인정받아 등재 심사에 올랐고, 3건 모두 세계유산 등재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보존관리방안의 구체화 등 몇 가지 권고사항을 차후 보완하기로 하고 등재 결정이 이루어졌다.
특히 전쟁의 파괴적인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된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연안의 최대 도시인 오데사가 새로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은 주목할만 하다. 과거 러시아제국 시기 부동항으로 개발된 이래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문화적 교류의 중심에 있었던 도시인 오데사의 상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언론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앞서 오데사 중심지의 오래된 건축물 및 유·무형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통합보존지역 설정을 특별법으로 제정한 바 있으나, 이번 등재 결정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비준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전문적·기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네스코는 교육, 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총 1800만 달러 이상을 투입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왔다. 또한 이번 오데사 역사지구의 등재 과정에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에 규정된 비상절차에 따라 추가적 위협에 대비하는 한편, 작년 초여름부터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 현지 전문가와 국제 전문가를 연결해 유산 등재를 도왔다. 이를 통해 오데사의 국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이 입은 피해를 수리하고 오데사 국립 기록원에 소장된 예술 작품과 다큐멘터리 컬렉션 약 1000여 점의 디지털화 프로젝트도 지원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도 2022년 10월 제215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온라인 연설을 통해 오데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제출을 공식화한 바 있다.
오드레 아줄레(Audrey Azoulay)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이번 특별위원회에서 오데사 역사지구의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후 “자유 도시이자 세계 도시이며 영화, 문학, 예술에 흔적을 남긴 전설적인 항구인 오데사가 이제 국제사회로부터 더 굳건한 보호를 받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이번 등재 결정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도 항상 세계적인 격변을 극복해 온 오데사를 추가적인 파괴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유네스코의 집단적 결의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현 선임전문관 유네스코의제정책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