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속 ‘공장’과 ‘사우나’, 또 다른 길을 보여주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박은경 부위원장이 최근 ESD(지속가능발전교육) 연구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과학창의재단의 지원으로 유럽의 대표적인 ESD 모범 도시들을 탐방했다. 과연 유럽에서는 공동의 미래를 위해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 시도되고 있을까. 이번호에는 핀란드 에스포시 교육현장 참관기를 게재한다. 필자인 박 부위원장은 ‘유네스코 ESD 국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
핀란드는 12세기부터 1809년까지는 스칸디나비아 형제국 속의 삶의 터로 존재했지만, 러시아가 차지한 118년의 식민지 시대를 거쳐서 비로소 국가로 탄생한 나라다. 지구 북녘에 위치한 척박한 기후환경 속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만큼 경제적, 국가적 결속력 국제적 생존 전략이 돋보이는 국가이기도 하다. 헬싱키 인근에 자리한 인구 26만 명의 에스포는 핀란드 제2의 도시로서 “노키아의 고향”이라던 과거의 광영을 뒤로하고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새로운 혁신 가치를 산학 현장에서 심고 있었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은 핀란드 교육부 국정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설정한 중요한 교육 목표이다. 에스포의 모든 학교에서 매년 개정해 나가는 지속가능발전 계획이 작성된다. 교사와 예비교사 연수를 통해 학교마다 최소한 1명의 에코-지원 교사가 자리해 동료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2014년까지 학교당 최소 2명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교육위원회는 시 의회와 협력해 매년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시 정책 및 국가 지속가능발전 계획과도 연계해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시르파 헤르텔(Sirpa Hertell) 에스포 시의회 부의장은 에스포가 유럽에서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음을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강조했다.
혁신과 사회 변화 이끄는 알토 대학교
핀란드 정부가 2010년 기술, 경제, 예술, 디자인 분야 등에서 유서 깊고 우수한 3개 대학을 합병해 창립된 알토(Aalto) 대학교는 가히 인상적이었다. 학생 2만 명 규모의 이 핀란드 대표 대학은, 연구와 교수의 중심에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도입해 새로운 교육의 장을 펼치고 있었다. 과학·기업·예술 분야 및 지역사회의 탄탄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대학과 기업에서 개발한 기술적인 자산을 일반인들이 삶과 사회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고 있었다. 2013년부터 알토 대학 대학생들은 직접 엑스포를 조직해 자신들의 창업 아이디어를 미국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전 세계 500여 명의 투자자들이 모인 가운데 선보이기 시작했다.
‘Urban Mill’(도시 공장), ‘Startup Sauna’(스타트업 사우나)라고 명명된 ‘작업장’에선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과거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안에서 벌어지는 ‘작업’은 창의적이고 신선했다. 프로젝트마다 칸막이를 해놓고 학생과 교수, 지역주민과 기업인들이 자신들의 연구와 기술을 사회적 성과로 연계시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핀란드의 고유 문화인 ‘사우나’와 영어 ‘Start up’(시동 걸다)을 결합한 ‘스타트업 사우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의 이름이자 교육 현장이다. 사우나에 불을 때듯이 알토대학을 핀란드의 실리콘밸리로 키우려는 열의가 느껴진다. 프로젝트별로 정부와 대학, 기업 전문가의 멘토링과 일대일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을 보면서 알토대학의 직접적이고 해결중심적인 교육을 체험할 수 있었다. 복잡하고 에너지 넘치는 공간 구석구석에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장만되어 있었고, 서너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원이 그려져 있는 ‘행복의 동그라미’도 눈에 띄었다. 이 원 안에 들어서면 누구나 서로 포옹하며 행복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뜨거운 창업 현장에 이를테면 제도적(?)으로 ‘행복 찾기 마당’을 마련한 셈인데, 지친 심신을 달래는 측면도 있겠지만 아마도 지식이나 기술보다 서로가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
2007년부터 시작된 ‘Urban Mill’에는 디자인 팩토리(Design Factory), 미디어 팩토리(Media Factory), 서비스 팩토리(Service Factory), 헬스 팩토리(Health Factory) 등 4개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알토 대학의 전문가들이 이들 공장에서 제품과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디자인과 미디어, 서비스와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공동의 장을 펼치고 있었다. 연구를 통한 새로운 지식이 그대로 가르침에 녹아드는 현장이기도 했다. 교수, 연구자, 학생들의 이 교육 현장은 기업가와 지역주민들에게도 열려 있어 하나의 공동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유니세프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적정기술 개발 프로젝트’, ‘아우디 자동차의 지원을 받는 디자인 혁신 프로젝트’, ‘도시 개발을 시뮬레이션해보며 기업과 대학, 시정부가 서로 협력하는 연구실’ 등 미션을 수행하는 현장마다 도전정신이 꿈틀대고 있었다. 아마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키워가는 지속가능발전교육이 그 꿈을 여는 열쇠일 것이다.
삶의 가치 일깨우는 직업학교 옴니아
에스포 지역에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발전교육(ESD)을 선도하고 있는 주인공은 에스포 RCE의 사무국장 안나 마리 뉘티넨(Anna-Mari Nuutinen)씨이다. 그가 꼽은 대표적인 지속가능발전교육 현장은 바로 직업학교 옴니아(Omnia)이다. 옴니아는 에스포지역의 3개 도시와 연계해 직업고등학교(4000명), 평생학습센터(성인 4000명), 도재식 기술학교 (1800명), 청소년워크숍(200명) 등 전체 1만 명 학생을 아우르는 교육 프로그램과 연간 350명의 국제 학생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핀란드의 학생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지속가능발전교육’을 받아서 ESD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옴니아 학생들은 지속가능발전 지수가 높은 기업의 제품과 친환경 유기농 식품을 이용하고, 일회용품 등을 삼가는 생활을 교내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물, 에너지에 대한 철저한 절약을 통해 ‘지속가능발전적인 생활로 이 지구를 살린다’는 의무감과 자부심을 삶의 가치로 만드는 ESD의 현장이었다.
에스포시의 지속가능발전 전략을 통해 보듯이, 핀란드는 세계를 향한 큰 꿈의 열정을 가지고 정책을 세우고, 시민, 학생, 교수, 연구자, 기업가가 공동의 가치를 지니고 공동의 작업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정열적인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나의 삶, 사회의 운명이 철저하게 하나로 일치되는 듯한 신념을 읽을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에스포는 단순히 하나의 시가 아니라, ‘사회’라는 무형의 존재를 느껴지게 하는 인간들의 조직체였다. 이들에겐 내가 하는 일이 바로 사회에 필요한 일,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지속가능발전을 기치로 내건 핀란드 정부의 뒷받침이 자리하고 있다. ■
지속가능발전교육(ESD)이란? 우리 공동의 미래를 위한 교육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교육’(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을 의미한다. 지속가능한 미래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가치, 행동, 삶의 방식’ 등을 추구하고 이를 전파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은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으며, 특히 2005~2014년을 ‘유엔 지속가능한 발전교육 10개년’으로 선포했다. 유네스코는 ‘지속가능발전교육’의 실행기관으로서 지구촌에서 다양한 ESD 활동을 펼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