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의 열기가 50도를 웃도는 아라비아의 사막국가 카타르는 천연가스 생산으로 인구 200만 명의 1인당 국민소득이 12만 불이 넘는 부국이다. 현대 건축물의 전시장과 같은 도하의 카타르국립컨벤션 센터에서 6월 15일부터 열흘 동안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렸다.
세계 191개국이 가입한 세계유산협약을 바탕으로 매년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세계유산에 대한 각종 현안을 다루며, 그중 가장 중요한 40개 내외의 세계유산에 대한 등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올해에는 41개가 상정돼 마지막 순간에 철회된 5개를 제외하고 36개가 논의되었는데, 이중에서 문화유산은 남한산성을 포함한 12개 유산만이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로부터 등재권고를 받았다. 남한산성은 심사기구인 이코모스의 서류검토와 실사, 평가위원회의 종합 검토 등 그 어려운 심사과정을 통과해 등재권고를 받은 것이다.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반영하듯 올해부터 우리나라는 21개 위원국의 일원으로 4년 임기를 시작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7~19세기에 이르는 국내 축성술의 발달 단계와 무기체계의 변화상을 잘 드러내는 동시에, 16~18세기 동안 전란을 거치며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 간 산성 건축술이 상호 교류한 중요한 증거로 파악하면서 등재기준 (ii)와 (iv)를 인정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선이 전란을 대비하여 험난한 자연지세를 이용해 축성한 포곡식 초대형 산성으로서, 전란을 대비한 조선의 임시수도인 산성도시라는 점이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이다.
남한산성 같은 유산은 세계에 없기 때문에 유산명도 영어명이 아닌 한글 그대로인 ‘Namhansanseong’으로 신청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는 바로 이 땅을 지켜온 선조들의 얼과 슬기, 그리고 말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대한 세계인의 인정과 찬사가 아닐까.
42명의 한국대표단을 대신해 나선화 문화재청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세계유산 등재에 감사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으로 가꾸고 지킬 것을 세계인에게 약속하였다. 등재와 함께 남한산성은 광주시의 것도, 경기도의 것도 아닌 한국의 유산이자 세계의 유산이 된 것이다. 세계유산 남한산성을 보존하고 가꾸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나라사랑의 마음을 가꾸고 지키는 일이다. 특히,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로 개편하고 남한산성 관리의 주체로 삼을 것을 등재 과정을 통해 세계인에게 약속한 것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다.
이번에 남한산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을 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첫째, 문화유산의 보전을 위해서는 무원칙적이고 원형을 무시한 ‘파괴적 복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훼손되었더라도 원형을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지만, 불가피한 경우에는 원상회복을 위한 적절한 복원기술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한산성의 봉암성과 한봉성 구간이 다행스럽게 원형이 남아 있었기에 유산의 진정성을 설득할 수 있었다. 앞으로 문화재 정책도 보수와 복원보다는 보전 위주로 정책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둘째, 세계유산 분야에서 전문적 지식을 갖춘 융합적이고 세계적인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등재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연구들은 있었지만, 이들 연구물을 융합적으로 종합해 설득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절실하였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논리를 구사하는 국가의 발언권이 더 세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가 세계 어디를 가든 당당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당당함은 세계를 아는 폭넓은 지식과 국제적인 매너가 결합되어야 더욱 빛나는 법이다. 특히, 문화유산에서는 우리 것을먼저 이해해야 영어로도 제대로 말할 수 있다. 이번에 영어로 등재신청서를 쓰면서 영어문제가 아닌 한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역이 더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셋째, 세계적인 인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는 폭넓은 시각에서 많은 제도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국 등 다른 나라를 보면 오랜 기간 세계유산업무를 전담하는 공무원들을 두어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문화유산의 시대에 세계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문화와 교육을 통한 세대 간의 소통을 중시하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거는 기대는 더 클 수밖에 없다. ■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교수, 남한산성 등재신청서 OUV 집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