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관 서신 / 여성희 문화재청 파견 서기관
여성희 서기관은 문화재청에서 파견돼 파리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3년 근무를 마치고 귀임을 앞둔 여 서기관을 만나 ‘세계유산해석국제센터’ 설립 등 그간의 업무 및 한국의 주요 활동과 더불어 현장에서 쌓은 여러 경험담을 들어보았다.
문화재청 출신으로 어찌보면 가장 적절한 곳에서 근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로 오셨는지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문화재청에서 국제업무를 담당하는 동안 여러 유산 및 문화 관련 협약과 신탁기금사업 등 유네스코 문화분야의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도 세계유산을 직접 다뤄볼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런던대학교에서 연수를 하는 동안 세계유산을 둘러싼 여러 논의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고, 이후 궁궐 활용 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 세계유산 관리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세계유산 등재 경쟁이 과열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그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세계유산센터 내에서 현재 담당하는 분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십시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세계유산 관리를 담당하는 아시아태평양과에서 한국, 호주, 뉴질랜드와 팔라우, 솔로몬제도 등과 같은 태평양 국가의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지원하고 해당 지역내 세계유산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당사국 정부 및 시민사회와 협력해서 보존 문제가 있는 세계유산이나 세계유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개발사업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자문기구의 도움을 받아 세계유산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당사국에 조언을 하고 유산의 보존상태를 세계유산위원회에 보고합니다. 문화재청에서 유네스코 신탁기금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세계유산 지원사업도 제 담당 업무의 하나입니다. 대표적인 신탁기금 사업으로 200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북한 고구려고분군 보존사업’이 있습니다.
해당 업무를 추진할 때 겪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업무는 프로젝트 중심이 아니라, 경상업무적인 성격이 강해서 업무에서 성취감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각국 대표부나 세계유산을 담당하는 부처와 서면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 현장감을 갖기도 어렵고요. 역동적인 국제 업무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여러 기관이 관여되어 있어 업무 처리 과정이 느리고, 그래서 가끔 기다리다 지치기도 해요. 하지만 그게 세계유산협약 사무국이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기 속도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에서 경험했던 문화재 행정과 큰 틀에서는 많이 다르지 않아서 잘 적응할 수 있었어요.
한국이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는 사업이나 활동들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5년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등재되면서 한국에서 세계유산의 해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문화재청, 외교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협력해서 세계유산의 해석에 대한 포럼도 열고 있고, 외교부의 지원으로 ‘기억유산’(Sites of Memory; 갈등·분쟁의 역사가 있는 유산)에 대한 연구용역도 유네스코를 통해 마쳤습니다. 이 흐름에 맞추어서 문화재청은 세계유산의 해석과 해설에 대한 원칙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맡을 유네스코 카테고리2센터로서 ‘세계유산해석국제센터’설립을 제안했고, 지난번 제40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승인되어 해당 분야에서 한국의 활동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3년 근무를 마치고 곧 귀임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리에서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꼽으신다면?
지난 3년은 세계유산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시간이었어요. 특히 세계유산해석국제센터 설립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주도적으로 관여한 사업이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집행이사회, 총회 문서를 초안부터 작성해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덕분에 유네스코 사무국 행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올해 유네스코 가입 70주년을 맞은 한국에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싶으신지요?
대개 우리는 국제기구에게 공명정대함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보류 등의 결정이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유네스코에 대한 회의감이 번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유네스코도 본질적으로는 정부간 기구이고, 국제사법재판소와 같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곳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정치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논리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서 유네스코 무대에 내놓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희 서기관은 2007년 행정고시 50회로 공직에 입문, 문화재청 국제교류과와 무형문화재과, 활용정책과를 거치며 문화재 보존관리와 활용 전반을 경험했다. 부산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대학교(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문화유산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걷기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도보여행을 떠나곤 한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지현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