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에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도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
도시는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장소지만, 동시에 코로나19를 극복할 열쇠를 쥐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이 앞다퉈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조언을 내놓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0년 3월 23일, 코로나19 확진자가 가파르게 증가하자 앤드류 쿠오모(Andrew Cuomo) 뉴욕주지사는 트위터에 “뉴욕시는 밀도를 낮추기 위한 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최근 뉴욕, 런던 등 대도시의 도심에서는 공실률이 치솟는 반면, 교외지역의 부동산 시장은 호황을 맞고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함께 도심 인구의 교외 탈주가 시작된 것이다. 그간 경제성장의 성과를 도시라는 공간에 집적시켜 온 인류에게 이같은 흐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만약 도시가, 즉 인간의 밀집된 삶의 방식이 팬데믹의 원인이라면 이제 인류는 도시의 시대를 마무리해야 하는 것인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 이제 우리는 전원적인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쿠오모 주지사의 말은 틀렸다. 코로나19가 대도시를 매개로 급속히 확산된 것은 맞지만, 그 죄가 도시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2020년 6월 세계은행이 제시한 뉴욕시 코로나 확진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뉴욕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집중된 공간은 ‘밀도가 높은 맨하탄’이 아니라 소득수준이 낮고 인프라가 열악한 웨스트 퀸즈 지역이었다. 확진자 발생 건수는 지역별 밀도와는 관계가 명확치 않았던 반면, 소득수준과는 분명한 반비례의 관계를 보였다. 즉, 문제는 단순히 밀도가 아니라 적절하지 못한 주거환경, 열악한 의료체계, 그리고 이를 초래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었던 것이다. 뉴욕의 상황이 이러한데 개발도상국 슬럼(slum, 도시 빈민가)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을 만나야 하루 하루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애당초 불가능한 지침이었다. 이들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 부족한 공공공간, 부적절한 도시 인프라로 특히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코로나19의 위기는 전지구적이지만, 그 피해는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편중돼 돌아간다.
코로나19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11번째 목표인 ‘포용적이고, 안전하며,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도시와 거주공간 조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유엔에서 전통적으로 도시문제는 주택과 슬럼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 도시문제는 그 범위가 크게 확대된다. 11번 목표의 세부내용은 적절한 주거, 대중교통 접근성, 참여적이고 통합적인 계획, 문화와 자연유산의 보존과 활용, 재해위험 경감, 대기오염과 폐기물 관리, 녹지공간 확충, 도시와 농촌의 통합적 접근을 모두 포함한다. 게다가 도시문제는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는 빈곤, 환경, 여성, 기후변화 등 다른 목표들과 연계되어 있다. 즉, 모든 영역이 도시 내에 있으며 모든 영역에 도시가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 도시 부문을 이렇게 폭넓게 해석하는 것은 도시문제가 매우 종합적이고 타 부문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영역을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핵심이 무엇인지 모호할 수도 있지만, 지속가능한 도시가 제시하는 가치는 분명하다. 도시가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즉 지속가능하게 변화시키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핵심에는 포용성(inclusiveness)의 가치가 있다. 유엔 해비타트(UN-Habitat)는 2016년 지속가능발전목표 11번을 구체화한 ‘새로운 도시 의제’(The New Urban Agenda)를 채택했는데, 이 의제의 핵심 가치가 바로 ‘모두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다. 도시가 만드는 기회, 혹은 변혁의 힘이 특정 계층과 특정 집단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상황은 오늘날 세계의 도시가 외부의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 그 충격이 주로 누구에게 더 영향을 미치는지를 명확히 드러냈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도시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감염병은 의료보건상의 위기로 시작되었지만, 이는 곧 소득감소의 경제적 문제로, 차별과 배제의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었다. 지속가능한 도시는 단순히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시민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롭게 대두된 과제도 있다. 저소득층 거주지역은 의료 및 기초서비스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공동체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적절한 의료체계가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개인위생물품, 깨끗한 식수, 필수 식료품, 안전한 대중교통 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공공공간(public space)의 가치도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공공공간은 시민들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거점이다. 공원, 녹지, 가로(街路)공간 등이 확충되어야 하고,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실내활동을 수용할 수 있도록 그 기능과 디자인이 재검토되어야 한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도시공간을 매개로 확대되고 있다. 온라인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군, 온라인으로 교육을 받을 환경을 갖춘 지역은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는다. 그러나 온라인 근무가 불가능한 직군, 온라인 교육의 환경을 갖추지 못한 주민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더 크게 입는다. 디지털 격차가 확대되지 않도록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코로나19의 책임이 도시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어떠한 도시를 만들 것인가’하는 문제는 어느 때보다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2012년 당시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투쟁은 도시에서 이기거나 질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이 말의 의미가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박세훈
국토연구원 글로벌개발협력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