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글로벌 청년 포럼: 전문가에게 듣는다 ➌
전쟁은 위대한 장군과 이름 없는 용사의 용기로 기억되지만, 평화는 무고한 희생자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전쟁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6월을 맞아, 숫자로만 남아있는 이들을 가만히 불러 봅니다.
영웅의 이름
미국 하버드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메모리얼 교회(Memorial Church)에는 6·25 전쟁에서 전사한 동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교회 안에는 6·25 전쟁뿐 아니라 1·2차 세계대전에서 생을 다한 하버드생들의 위패가 가득합니다.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추모하는 이름으로 벽을 채우고, 아침마다 예배를 통해 젊은 죽음의 안타까운 희생을 기리는 기도를 올립니다. “주여,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소서, 영원한 안식을 주시옵소서.” 6·25 전쟁은 많은 희생자를 남겼습니다. 한국군 13만 명, 유엔군 4만 명, 남·북 민간인 250만 명. 이 어림잡은 사망자의 통계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과연 몇 명일까요? 우리는 먼저 영웅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용감한 결단력과 치밀한 지략으로 승리를 따낸 명장의 이름은 오랜 시간 신화처럼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웅의 서사만으로는 다 기억할 수 없고 기록에 남길 수 없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름 없이 ‘숫자’로만 남은 사람들을 기억해 보려고 합니다. 냉전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죽어서도 숫자로만 남은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원숭이라 불린 여인들
6·25 전쟁은 이 땅에 많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미군 부대 주변에 형성된 기지촌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주한 미군이 주둔했던 서울 용산, 평택, 동두천, 의정부, 그리고 군산 등을 중심으로 경제활동권이 형성되었습니다. 미군 전용 세탁소, 이발소 등 소비 중심의 경제구조가 만들어졌고, 부대 안에는 ‘하우스보이’나 청소 등을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아마도 성매매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업이 발달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곳에서 미군 병사들은 외부적으로 노출되지 않으면서 성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고, 한국 정부 또한 경제와 국가 안보를 위해 이를 묵인하고 방조했습니다. 1954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성매매 여성의 수는 1만7300명이었고, 1962년에는 2만 명 이상이 미군을 상대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보건상의 이유로 ‘성병방지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기지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강제적인 성병 검사와 관리를 진행하게 됩니다.
동두천과 평택 등지에 설립된 속칭 ‘몽키하우스’는 이러한 기지촌 정화작업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곳은 성병 검사에 통과하지 못한 여성들을 수용하는 장소로, 구금된 여성들은 강제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야 했습니다. 정확한 진단 없이 일괄적으로 처방된 페니실린은 종종 과도한 양이 투입되어 환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고, 쇼크사로 요절하는 여성도 속출했습니다. 이 여성 수용소가 몽키하우스로 불린 이유는 페니실린 주사로 인해 환자들의 허리가 휘어 원숭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밤마다 수용소 창살을 잡고 우는 여인들의 모습이 원숭이 같아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지촌에서 사망한 여성은 정식 장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숫자’가 적힌 나무 팻말 아래 쓸쓸히 묻혀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초혼 — 공감과 연대를 통한 평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의 이름과 더불어, 숫자로만 흔적을 남긴 이름 없는 이들 또한 기억해 봅니다. 작년 9월 내려진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판결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양공주’, ‘양색시’라는 사회적 낙인, ‘몽키’라는 조롱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이들에게 국가는 ‘민간외교관’, ‘외화 버는 애국자’라는 칭송을 보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강압된 애국 교육은 사실 국가가 주도적으로 군사 동맹을 위하여 성매매를 조장하기 위함이었으며, 이는 곧 국가가 스스로 준수해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했다는 뜻입니다. 약간의 배상금으로 이 안타까운 희생을 다 위로할 순 없겠지만, 이제 그들의 존재를 음지가 아닌 양지로 모셔 나와 잊혀졌던 목소리가 다시 들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었던 기묘한 전쟁. 냉전은 이미 지나간 역사로 남았는데, 한반도를 가로질렀던 38선은 휴전선으로 남아 아직도 좌우 이데올로기의 날카로운 대립을 생생히 전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은 이 땅에서 아직도 진행 중인 역사이며, 과거의 참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됩니다. 평화를 위한 커다란 발걸음은 공감과 연대를 통해서 과거의 아픔을 함께 위로하고, 또한 잊혀진 이름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류정민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조교수, 디지털인문학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