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올라, 한국 유산으로는 11번째
천년의 역사가 깃든 우리의 유산 남한산성이 마침내 인류의 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 6월 15일부터 10일간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열린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22일 한국의 ‘남한산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가 보유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합쳐 모두 11건으로 늘었다.
등재 심사에서 남한산성은 세계문화유산의 등재기준 6가지 중에서 기준 (ii)와 (iv)을 충족했다. 등재기준 (ii)는 “특정 기간과 문화권 내 건축이나 기술 발전, 도시 계획 등에서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의 증거”, 등재기준 (iv)는 “인류 역사의 중요 단계를 보여주는 건물, 건축,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탁월한 사례”에 해당한다.
[남한산성 등재된 세계유산위원회 스케치] 기념비적 유산 된 아프리카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
‘1000번째 세계유산’ 영예 뒤에 아름다운 배려 있었다.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열흘 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6월 25일 폐막했다. 회의 전부터 모두의 관심과 주목을 받은 이슈 중에는 단연 이번 위원회에서 1000번째 세계유산의 영광이 누구에게 돌아갈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위원회에서 심사될 유산은 총 41건이었다. 그중 세계유산 자문기구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문화유산 심사)와 IUCN(세계보전연맹, 자연유산심사)으로부터 등재불가 권고를 받은 유산 5건은 사전에 신청을 철회해, 실질적으로 총 36건이 심사되었다. 자연유산 심사부터 시작되던 종래와 달리 올해는 문화유산 심사부터 이뤄졌고, 이에 누가 1000번째 세계유산의 명예를 가져갈 것인가를 두고 여러 국가 간 협상과 조율이 계속됐다.
‘명예의 땅’은 아프리카로 정해졌다. 보츠와나의 자연유산인 오카방고 델타는 등재심사 순서를 바꾼 끝에 1000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오카방고 델타는 계절마다 범람하는 오카방고 강의 하구에 위치한 삼각주로, 해수에 유입되지 않는 희귀한 지역인 만큼 다양한 동식물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는 유산이다. 보츠와나 문화부 장관은 등재 소감에서 내전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가 이러한 기념비적 유산을 갖게 된 것에 깊은 사의를 표했다. 여러 국가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배려와 존중, 결의 등 다양한 고려가 반영된 결과였다.
오카방고 델타를 포함해 새롭게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린 유산은 총 26점이다. 그중 팔레스타인은 남부 예루살렘에 위치한 바티르 마을의 올리브와 포도밭 문화경관을 ‘긴급보호가 필요한 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 보호장벽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운 가운데, 유네스코는 장벽이 건설되면 유산에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긴급신청을 받아들이고, 바로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도 포함시켰다. 비밀 투표까지 간 치열한 심사 끝에 나온 결과였다.
한국의 남한산성도 자문기구 심사부터 완벽한 등재 권고를 받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이 공동으로 신청한 실크로드 유산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에 걸친 3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잉카인들의 안데스 길 등과 같은 초국경 유산들의 등재도 금번 위원회의 흥미로운 포인트이다. 이제 161개국 1007점으로 확대된 세계유산의 보호는 앞으로의 큰 도전이 될 것이다.
■ 김지현 문화커뮤니케이션팀
[역사 속의 남한산성]‘패전은 있어도 함락은 없었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 성남 하남 일원의 산지에 걸쳐 건설된 대형 산성이다. 옛 문헌을 통해 백제 온조왕 때 이 지역에 성을 쌓은 것이 유래라는 이야기와 신라 문무왕 때 한산주(남한산주)에 쌓았던 주장성(일장성)에서 비롯됐다는 견해 등이 있으나 역사적 사실로 규명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삼국시대부터 이 지역은 각국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쟁취하려 했던 군사적-전략적 요충지였음은 분명하다. 고려 때에는 남한산성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으나 광주부사를 지낸 이세화의 묘지명에 ‘광주성’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1231년 몽고병의 1차 침입 때 광주 군민들이 광주성으로 피해 몽고군의 공격을 방어했으며, 몽고의 2차 침입(1232년) 때도 살례탑이 이끄는 몽고군의 주력부대를 이세화가 광주성에서 물리쳤다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들어 한양의 남쪽 관문인 남한산성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조선 초기에는 남한산성을 일장산성으로 불렀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일장산성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높고 험하며, 둘레가 3993보(걸음)요, 안에 군자고와 우물이 7개 있는데 가뭄을 만나도 물이 줄지 않는다. 또한 밭과 논이 있는데, 모두 124결이다.’ ‘남한산성’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은 선조 때부터로 추정된다. 이후 인조 때에 남한산성에 대한 대대적인 축성과 개수가 이뤄졌고, 정조 때에도 증개축을 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유사시 임시 수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산성 내에는 임시 궁궐인 ‘남한행궁’을 건립했다. 남한산성은 천혜의 지형을 바탕으로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이끌던 12만 대군은 불과 6일 만에 한양에 당도할 정도로 파죽지세로 조선 땅을 유린했다. 하지만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간 뒤 조선 군민은 청군의 1/10에 불과한 군세로 47일간 항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최후의 보루였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세자와 왕자가 포로로 붙잡히면서 결국 인조는 스스로 성 밖으로 나서게 된다. 흔히 남한산성 하면 인조가 무릎을 꿇고 청 태종에게 절을 한 ‘삼전도의 굴욕’만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는 졌으되, 남한산성은 결코 ‘함락’되지 않은 산성이었다. ■ | [남한산성 다음엔?]세계유산 오를 만한 우리 유산들 남한산성의 뒤를 이어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될 만한 우리 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답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잠정목록은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희망하는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작성한 자국의 유산 목록이다. 각 회원국은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하기 최소 1년 전에 잠정목록을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즉 잠정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은 유산은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될 수 없다. 남한산성의 경우도 이미 2010년 1월 잠정목록에 등재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에는 어떤 유산들이 올라와 있을까.강진 도요지(1994년 등록),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2010년), 익산 역사유적지구(2010년), 중부내륙 산성군(2010년), 낙안읍성(2011년), 한국의 서원(2011년), 서울 한양 도성(2012년), 한국의 전통산사(2013년) 등 13개의 문화유산과 서남해안 갯벌(2010년), 우포늪(2011년) 등 4개의 자연유산이 잠정목록에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2015년도 세계유산 등재신청 추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유산은 ‘한국의 서원’과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이다. 한국의 서원은 현재 국내에 있는 637개의 서원 중 도동 돈암 무성 필암 옥산 병산 소수 남계 도산서원 등 사적으로 지정된 9곳이 그 대상이다. 또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경우 기존 잠정목록에 올라 있는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와 익산 역사유적지구를 하나로 묶어 등재를 추진할 예정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