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계를 비롯한 유색인종들을 대상으로 발생하고 있는 폭력과 테러는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가 만들어 온 차별 철폐를 위한 진전에 큰 상처를 내고 있다. 법과 제도의 끊임없는 개선에도 불구하고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는 차별 문제가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더욱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네스코는 우리 마음 속에 깃든 차별을 도려내기 위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팬데믹과 차별, 혐오의 악순환
지난해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부터 지난 3월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여성 대상 총격 테러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서는 차별과 혐오가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러하듯 차별과 혐오에 의한 피해 역시 우리 사회의 약하고 소외받는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빈곤 계층과 비주류 인종 등을 중심으로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팩트’의 뒤에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고, 이들 소외 계층에 대한 주류 사회의 낙인찍기도 덩달아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과 감염, 그리고 차별의 악순환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국내에서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 우려가 높아지던 지난 3월 말, 일부 지자체들은 역내 외국인노동자 전원의 코로나19 검사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조치라고 판단하고 시정을 권고했지만 몇몇 지자체는 ‘공동체의 안전이 우선’이라며 반발했다. 시민들의 의견은 ‘방역을 위해 일정 부분 개인의 권리와 자유 침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에서부터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각자의 노동 및 거주 환경이 아닌 피부색(인종과 국적)에 따라 판단하는 명백한 차별’이라는 시각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 논란에 대해 『시사IN』은 해당 행정명령의 대상을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20대 여성’이나 ‘20대 남성’ 혹은 ‘고졸 미만’, ‘지방 출신’ 등으로 바꿔보고 각각의 느낌을 살펴보자”고 꼬집은 바 있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이 단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바이러스 전파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던 것처럼,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사람들은 은밀한 따돌림에서부터 노골적인 낙인찍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혐오에 기반한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미 하버드대 사회학과와 유네스코가 파트너십을 맺고 지난해 5월에 발족한 ‘AAPI(Asian American Pacific Islander;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 코로나19 프로젝트’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3월 이후 지금까지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과 폭력 신고는 2500건이 넘는다. 조사에 응답한 한 태국계 미국인은 “내 어머니는 이 나라에서 30여 년간 간호사로 일해 왔지만 코로나19 이후 몇몇 환자들은 단지 그녀가 중국인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담당 간호사 교체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낯선 바이러스와 낯설지 않은 차별
코로나19 상황에서 특별히 더 큰 주목을 받게 됐지만, 우리는 혐오와 차별이라는 바이러스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모범적 소수계’(model minority)라 불리며 그간의 인종차별 사건들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동아시아인들은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침묵도 인종차별에 동조하는 것’이었음을 절감하고, 전 세계 시민들이 함께 차별 철폐를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
차별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달리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해 온 것이라면, 그간 여러 국제기구와 인권 단체의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숱한 운동가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뿌리뽑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차별이 우리 인간의 마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속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을 구분짓고, 우리가 남보다 더 낫다는 확신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당연한 습성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2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소개된 ‘인종주의의 뿌리’(Roots of Racism)라는 기사에서 제임스 시다니우스(James Sidanius)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는 “인간은 아무런 기준 없이 임의로 조직된 집단에서조차 내가 속한 집단이 더 똑똑하고 도덕적이며 정의롭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다니우스 교수는 우리와 남을 구분짓는 경계는 “인종, 종교, 국적, 말투뿐만 아니라 기타 수많은 임의적인 속성에 따라 그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문제는 “일단 경계가 그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차별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애착, 그리고 내 집단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차별은 한정된 자원을 갖고 여러 다른 부족과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했던 인류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길러 온 습성이라는 뜻이다.
차별의 감정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거의 본능적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우리 마음 속에서 몰아내는 것이 생각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뜻한다. 한편으로 ‘우리와 타인을 구분짓는 선이 임의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시다니우스 교수의 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다른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인종이나 민족 같은 타고난 특징과는 관계 없이 보다 넓고 임의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우리’를 규정하는 테두리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선을 최대한 넓게 확장할 때 다른 민족이나 문화, 다른 종교를 가진 구성원도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속 ‘괴물’ 직시하기
차별을 완전히 뿌리뽑기 위해 필요한 것이 각자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일이라면, 결국 문제는 그 마음 속에 어떻게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채우느냐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내 마음 속에 차별이 들어가 있을 여지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차별을 막기 위한 법률이나 제도적 장치가 어느정도 마련된 국가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차별이란 자신과 동떨어져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됐고, 누군가의 행동을 인종차별적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큰 싸움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에 반해 우리가 무심코 저지르는 차별은 조용히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며, ‘방역을 위한 외국인 코로나19 전수조사’와 같이 보기에 따라 그것이 정말 차별인지 아닌지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측면까지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흑인 인권 운동가이자 미 공영 라디오 『NPR』 내 인종차별 대응 부서 ‘코드 스위치’(Code Switch)팀의 에디터인 진 뎀비(Gene Demby)는 “오늘날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은 ‘당신은 착한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과 같이 ‘예’ 혹은 ‘아니오’라고 잘라 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차별이 법적 처벌이나 소송의 대상이 되면서 정작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자유롭게 던질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차별에 대해 서로가 자유롭게 지적하고 여기에 대해 토론할 수 없을 때, 차별을 저지르는 사람과 그것을 당하는 사람 사이에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나는 차별한 적이 없다’는 사람과 ‘분명히 차별을 당했다’는 사람이 함께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디 애틀랜틱』의 타-네히시 코츠(Ta-Nehisi Coates) 선임기자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평가가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미국에서조차 끊임없이 정치인들의 차별적 발언이 나오는 것을 보며 “오늘날 미국에는 인종주의의 사례가 수없이 많이 있음에도 실제 인종주의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라고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우리 마음 속에 차별의 씨앗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곧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자는 것과 같은 뜻이다. 나 자신도 얼마든지 차별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있고 나도 모르게 차별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성찰과 반성의 기회가 열리며,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가져야만 사회 전체가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대상을 차별하게 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관용을 향한 로드맵
지난 3월 22일 국제 인종차별 철폐의 날(3.21)을 맞아 한국과 유네스코가 공동 개최한 ‘인종주의와 차별 반대 포럼’(Global Forum against Racism and Discrimination)에서도 오늘날의 차별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 우리 마음 속의 차별적 시각을 인식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포럼에 참석한 타릭 모두드(Tariq Modood) 영국 브리스톨대 교수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인종주의의 형태는 단순히 피부색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문화, 종교적 정체성 등으로 인해 파생되는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하며 “우리 사회 안에 인종주의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임현묵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APCEIU) 원장은 이처럼 복잡다단한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며, 세계시민의식이 교육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유네스코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교육은 각국 정부에 의해 국가주의가 확대,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임 원장의 지적대로, 한정된 자원과 기회를 두고 점점 격화되고 있는 국가 간, 그리고 국가 내의 경쟁 상황에서 존중과 관용,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하는 교육이 폭넓게 이뤄지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유네스코는 교육을 비롯한 사회 전 분야에서 차별을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통합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진단하고, 신뢰성 있는 인문사회과학적 연구에 근거한 유네스코만의 다학제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가 및 사회 시스템에 내재된 차별뿐만 아니라 개인의 마음 속에 자리한 차별에도 대응하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도 “인종주의에 맞서는 것은 유네스코의 역사이자 유네스코 DNA의 일부”임을 강조하며, 유네스코가 인종주의에 맞설 효과적인 보루를 인간의 마음 속에 쌓음으로써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이주민과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오랜 패턴을 끊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가장 크고 포용적인 경계선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전 세계로 차별과 혐오가 번져 나가던 지난해 4월, 호주 멜버른대 빅터 소호 몬존(Victor Sojo Monzon) 박사와 하리 바푸지(Hari Bapuji) 교수는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넓고 임의적인 경계선’을 긋는 출발점으로 “차이가 아닌 공통점을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을 제시한 바 있다. ‘똑같은 유니폼’이라는 공통점 안에서는 인종도, 종교도, 국적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오늘날의 스포츠 팀처럼, 사회 구성원 모두를 포괄하는 경계를 만들 능력이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첨예한 대립을 일으키는 경계선은 좀처럼 인종과 문화, 국적과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경계 확장의 토대가 될 수도 있었을 인터넷에서는 편견을 바탕으로 한 허위정보가 확산되며 성별, 인종, 출신지역 등으로 사람을 구분짓고 혐오하는 발언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는 그 경계를 최대한 넓게, 최대한 포용적으로 긋기 위한 공감대를 우리 마음 속에 만드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이점이나 이해관계보다는 인류 공통의 관심사와 목표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통해 결국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마을의 시민’, 즉 세계시민임을 인식하게 되리라는 희망에서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각국 정부가 법과 교육을 통해 체계적인 차별 반대 시스템을 확립하고 ▲학계가 충분하고 정확한 지식 전달을 통해 차별에 대한 감수성과 저항력을 높이고 ▲문화 간 대화 및 협력을 촉진하는 등의 노력에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차별과 혐오는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바이러스’로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팬데믹이 발생한 이후 미국에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사이트나 게시글이 200% 늘었다는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그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가 위기에 빠지는 순간이면 언제든지 거대한 광기로 되살아날 수 있다.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며, 나 역시 차별의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이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차별의 방역’을 이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바로 지금 우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주시해야 할 대상은 ‘히틀러의 자서전을 앞주머니에 꽂은 스킨헤드족’만이 아니라, 메건 마클(Meghan Markle)의 피부색이 어딘지 불편했던 영국 왕실이나 코로나19가 굳이 ‘중국 바이러스’임을 강조하는 정치인, 그리고 ‘이것은 차별이 아니다’라며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차별할 수 있는 일에 서슴없이 동의를 표하는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참고자료]
· npr.org “The Ugly, Fascinating History of the Word ‘Racism’”(2014)
· pursuit.unimelb.edu.au “The Toxic Spread of COVID-19 Racism”(2020)
· sciencemag.org “Roots of Racism”(2012)
· sisain.co.kr “외국인 전수검사가 쏘아올린 뜨거운 공”(2021)
· slate.com “Playing the Racist Card”(2008)
· unesco.org “A Roadmap for Tolerance”(2021), “Combatting Racism against Asian Americans and Pacific Islanders”(2021), “#FightRacism & #FullfilTheDream : UNESCO Calls for Strong Action against Racism and Discrimination”(2021)
· unesco.or.kr “유네스코와 대한민국, 인종주의와 차별 반대 국제포럼 공동개최”(2021)
· weforum.org “How Racism Spread around the World alongside COVID-19”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