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만큼 중요한 지질다양성과 지질유산 보호
지난 10월 6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지질 다양성의 날’이었다. 이 기념일이 제정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로 지질 다양성이란 용어는 여전히 대중에게 낯설다. 세계적 지질전문가이자 현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인문사회·자연과학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경식 교수가 지질다양성과 지질유산의 현황과 보전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보통 자연환경을 보호한다고 하면 생태계나 생물다양성 보전을 떠올린다. 국제적으로 자연보전을 위해 협의되고 결정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사항도 생물다양성에 대한 논의에 국한되며, 지구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지질다양성과 지질유산의 개념은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지질다양성은 46억 년의 지구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지질학적 요소와 현재 지구표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토양, 지형 등과 같은 다양한 지질학적 현상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생물다양성과는 달리 단지 높은 지질다양성을 보인다고 해서 그 지역의 보전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적 요소 중에서도 지구 역사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중요한 가치가 있는 광물, 암석이나 지질구조를 보여주는 곳이 지질유산의 범주에 포함된다. 지질유산 보호구역은 그 특징 또한 다양하다. 넓은 지형이나 그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산이나 산맥 전체가 보호되기도 하고, 반면에 지질학적 시대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담긴 1미터 남짓한 특정 지층만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질유산은 잘 보전하면 영원히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재생이 가능한 생태계와는 달리 지질유산은 한 번 훼손되거나사라지면 영원히 복구될 수 없다. 국가적·국제적 가치가 있는 지질유산이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을 근거로 중요한 지질유산 가치가 있는 지역을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한다. 자연환경보전법에도 국내 중요한 지질 및 지형 지역을 보호하게 되어 있지만,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보전되고 있는 지역은 아직 한 곳도 없다. 많은 관광객이 지질 및 지형의 가치 때문에 찾고 있는 국립공원에서도이들의 가치를 설명하는 표지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지질유산의 가치를 인정하여 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적 보호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적으로 지질유산 가치가 높은 지역의 보전에애쓰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보호되는 지질유산의 수는 여전히 너무나 적다. 세계자연유산 프로그램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가지는 지역에 한정되며, 국제적인 지질학 가치를 가지는 지질유산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지질공원 프로그램 역시 지질명소와 주변 마을을 연계한 활동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그 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즉, 서로 목적이 다른 유네스코의 두 프로그램만으로는 지구 역사 중에서도 중요한 현상을 보여주는 지질유산을 모두 보호하기란 불가능하다.
최근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요한 지질유산을 보전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앞서 2008년 스페인에서 열렸던 세계자연보전총회는 지질유산과 지질다양성의 중요성을 의제로 채택했고, 2012년 제주도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지질유산의 중요성과 이를 보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강조한 바 있다. 이후 IUCN은 IUCN 보호지역세계위원회(WCPA) 내에 지질유산전문가그룹(Geoheritage Specialist Group)을 결성해 국제적 가치를 가지는 지질유산을 추가로 보호할 수 있는 ‘Key Geoheritage Area’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IUCN 프로그램이 채택되면 지질유산의 국제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2021년 ‘한국의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기까지 필자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거의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하지만 등재 과정에서 한국의 갯벌이 지닌 지질유산적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점은 여전히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애초 한국은 세계유산 등재 기준 중 ‘지질유산의 가치(vii)’, ’대표적인 생태계(ix)’, ‘생물다양성과 멸종위기종(x)’의 세 가지 항목을 갯벌의 세계유산 등재 사유로 신청하였으나 이 중에서 최종적으로 적용된 것은 ‘생물다양성과 멸종위기종(x)’뿐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IUCN의 심사위원들이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에만 익숙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한국의 갯벌’의 지질학적 특성은 물론 일반적인 지질유산의 속성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등재 심사 당시 IUCN은 갯벌의 지질유산적 가치 자체보다는 주로 ‘면적’에 집중하며 지적 사항을 달았는데, 본 글의 앞부분에서 설명했듯 지질유산의 가치가 반드시 보호구역의 면적과 결부돼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국내 4곳의 갯벌 중에서 서천갯벌과 신안갯벌은 그 면적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지만 두 지역이 보여주는 지질유산의 가치는 너무도 유사하다. IUCN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것으로 보이며, 당시 세계유산위원회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되면서 우리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국내 담당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갯벌의 등재 기준에 지질학적 가치를 추가로 포함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계유산의 등재가 ‘끝’이 아니라, 우리 갯벌이 가지는 지질유산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경식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IUCN 지질유산전문가그룹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