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류의 물질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과학이고, 수학은 그 과학의 핵심을 이루는 학문 중 하나다. 수학은 일기예보에서부터 전염병 대응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과 안전, 그리고 미래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계산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먼 과거의 일이고, 이제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인간의 ‘생각’까지 대신해 줄 수 있는 세상에서 수학이라는 학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류가 직면한 복잡한 도전과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열어가는 데 있어 수학적 사고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팬데믹과 수학
코로나19가 전 지구를 휩쓴 지난 2년 여간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숫자와 통계, 그리고 생소한 수학적 개념들을 자주 눈여겨보게 되었다. 우리가 매일같이 확진자의 숫자와 그 증감을 나타내는 곡선, 그리고 치명률과 백신 접종률에 주목한 이유는 단지 그 숫자와 그래프들이 보여주는 변화가 흥미로워서는 아니었다. 그 숫자들이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짚어야 할 부분을 드러내 주며, 나아가 앞으로 다가올지 모를 위기를 미리 예측하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고 이를 읽고 해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민들의 능력이 뒷받침되면서, 우리는 처음 보는 바이러스와 맞닥뜨린 지 3년 차에 조심스럽게 ‘엔데믹’을 이야기하고 있다. 3년도 되지 않아 이루어낸 이같은 반전이 과학의 힘 덕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에서부터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이르기까지 과학은 매 단계마다 ‘최단기간’의 기록을 세우며 바이러스 극복에 핵심 역할을 했다. 과학이 이처럼 이른 시일 내에 바이러스에 맞서 싸울 ‘무기’를 우리 손에 쥐어주었다면, 수학은 그러한 무기가 나올 때까지 인류가 최대한 피해를 억제하면서 견디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지난 2년 간 뉴스에 수없이 등장한 ‘기초감염재생산지수’(한 명의 감염자로부터 전염돼 발생하는 신규 감염자 수, R0)와 확진자 수의 변화를 예측하는 수학 모델들은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도를 비롯한 적절한 방역 대책을 세우는 핵심 근거로 활용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어떤 대상의 특징이나 성질을 간단한 숫자로 표현하는 ‘지수’와 이를 실제 데이터와 조합해 만든 ‘모델’은 예측하기 쉽지 않은 변화나 상태를 한눈에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예컨대 언론을 통해 잘 알려졌듯 전염병의 확진자 수는 바이러스의 R0가 1을 넘어설 때 증가하고 1 아래로 유지될 때 감소한다. 이러한 지수는 그 자체로도 효과적인 정보 전달 수단이 되지만, 다른 데이터와 수학적 계산을 적용해 ‘모델링’을 거칠 때 더욱 유용한 정보가 된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전염병의 R0를 분석해 기존 전염병들의 R0와 비교하고, 이를 통해 전체 감염대상군(susceptible, S)과 접촉군(exposed, E), 감염군(infected, I), 회복군(recovered, R) 및 사망자(dead, D) 추이를 예측하는 모델(SEIRD모델)을 만든다. SEIRD모델은 새로운 전염병이 실제로 ‘얼마나 더’ 위험한지, 의료 시스템이 한계에 달하기 전에 이를 대비할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파악하게 해 준다. 이 모델 덕분에 우리는 코로나19 초기 변이 바이러스의 R0가 3.8로 일반 독감의 1.5에 비해 훨씬 높다는 사실로부터 코로나19가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올 수 있는지를 예측하고 그 대응 방안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림1’ 에서 볼 수 있듯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인위적인 개입이 없을 때 독감은 발병 250-300일 사이에 동시 감염자 수(빨간 선)가 전체 인구의 5%로 최대치에 달한 뒤 서서히 감소하며 결과적으로 전체 인구의 58%를 누적 감염시키지만(회색 선), 코로나19는 불과 150일 만에 전체 인구의 30%를 동시 감염시키고 누적 감염자 수는 전체의 98%에 달하면서 손쉽게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킨다. 정부가 집단 면역이 생길 때까지 바이러스 확산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대규모 백신 접종이라는 대책을 시행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 모델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숫자 없는 곳’에서 펼쳐지는 마법
기초감염재생산지수를 비롯해 1인당 국민소득, 문해율, 바닷물의 산소 농도 등 여러 분야에서 쓰이는 각종 통계치나 지수들이 수학의 활용도를 증명해 주는 예임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수학은 이러한 숫자나 통계의 영역보다도 더 폭넓은 분야에서 특별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다. 유네스코가 지난 3월 14일 수학의 날을 맞아 펴낸 정책보고서 『Mathematics for Action』(행동을 위한 수학)에는 2030년까지 전 인류가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서 수학이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분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례들이 나와 있다. 이들 사례에서 알 수 있는 놀라운 점은 수학적 방법을 적용해 만든 모델들은 이미 존재하는 숫자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쓸만한 숫자나 통계가 부족하거나 심지어 없는 곳에서도 그 대안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유엔의 첫 번째 지속가능발전목표(SDG1)인 ‘빈곤 퇴치’ 달성에 필요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빈곤 현황을 나타내 주는 다양한 지수와 통계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빈곤의 구체적 기준을 파악하기 위해 빈곤선(poverty line)을 산출해야 하고, 대상이 되는 인구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최신의 인구 센서스 자료도 필요하다. 지역별, 가구별로 가능한 한 세분화된 인구 자료가 확보될수록 정부나 국제기구가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할 지역을 선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가난하고 사정이 좋지 못한 나라일수록 이러한 통계의 질과 양은 턱없이 부족하고, 한 푼이 아쉬운 빈곤 퇴치 활동 자금을 막대한 인력과 돈이 드는 이러한 기초 자료 조사에 마냥 쏟아부을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학적 모델은 부족한 자료를 보완할 뿐만 아니라 더 유용하고 상세한 자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데이터 대신, 추가적인 인력과 자금 투입 없이도 수집할 수 있는 비전통적 데이터를 적절한 계산과 보정을 거친 후 필요한 데이터로 가공하는 것이다.
2016년 아프리카 세네갈의 지역별 빈곤 상태를 나타내 주는 ‘그림2’의 두 지도는 바로 그러한 예를 보여준다. 하나는 유엔개발계획의 글로벌 다차원빈곤지수(Multidimensional Poverty Index, MPI)에 따라 세네갈을 단순히 서부-중부-북부-남부의 네 지역으로 구분해 놓은 기존의 빈곤 지도이고, 다른 하나는 세네갈 국민들의 휴대전화 사용 데이터를 지리정보시스템(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GIS)과 결합해 다시 그린 556개 지역별 빈곤 지도다. 두 지도 중 어느 것이 빈곤 퇴치를 위한 정책 수립에 유용하게 쓰일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새로운 빈곤 지도를 그리는 데 쓰인 것은 비싸고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문조사요원의 분석 자료가 아니다. 대신 특정한 수학적 알고리즘이 적용된 인공지능이 현지의 통신 인프라 위를 매일 오가는 110억 건의 휴대전화 신호와 9백만 건의 문자발신 데이터를 익명화해 수집하고, 이를 도로포장과 전기 공급 여부 및 건물 상태, 경작지 수준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상세 위성데이터 위에 적절한 분류 공식과 가중치에 따라 시각화했다. 이러한 자료는 기존 자료보다 훨씬 더 자주 업데이트할 수 있으며, 지역뿐만 아니라 나이, 소득, 성별 등 다른 기준에 따른 자료로도 쉽게 가공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객관적이고 편견 없는 수학적 알고리즘은 성차별이 심각한 지역에서 종종 누락될 수 있는 여성 및 약자의 현황도 상대적으로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이처럼 수학적 모델은 충분치 않은 데이터의 대안을 마련하고, 기술적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산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 — 예를 들어 어떤 정책의 경제적 효과 예측이나 특정 생태계의 경제적 가치 등 — 에서도 신뢰할 만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가 최대한 현재 상황을 실제와 가깝게 파악하고 미래를 위한 계획과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유네스코가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에 있어 수학과 수학적 사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예로 든 사례에서뿐만 아니라 수학은 기후변화 양상을 모델링해 인류가 적절한 에너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목표치를 제시해 주고(SDG13; 기후변화와 대응), 물 공급이 끊긴 시간을 ‘베이즈 정리’1에 따라 역으로 분석해 물 공급 사슬에서 문제 발생 가능 지점을 짚어주고(SDG6; 깨끗한 물과 위생), 심지어 ‘네트워크 이론’(그래프 이론)2을 활용해 특정 지역에서 실종자의 위치를 파악(SDG16; 정의, 평화, 강력한 제도)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유네스코의 이번 보고서에 집필진으로 참여한 캐나다 몬트리올대의 수학자 크리스티안 루소(Christiane Rousseau) 교수는 “여기 실린 사례들은 각국이 정부 내 과학 자문단에 수학자를 포함시켜야만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며, 정부가 정확한 증거에 바탕을 둔 정책을 수립하고 실현하는 데 수학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샤밀라 네어-브두엘(Shamila Nair-Bedouelle)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사무총장보는 보고서 서문에서 “수학 분야를 담당하는 유엔 내 유일의 전문기구로서 유네스코는 수학 교육 및 연구 활동을 증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대중들에게 수학은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학문으로 남아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수학은 각종 기기에서부터 통신 수단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도 명확히 눈에 띄지는 않는다”며, 이 때문에 수학 영역에서 유네스코가 펼치는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수학 교육이 “기초 수리력 증진을 넘어 ‘수학적 문화’(mathematics culture)를 길러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보고서에 실린 사례들을 통해 수학이 그저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채 완전무결한 증명만을 활용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리만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오늘날의 환경적이고 사회-경제적인 여러 도전 과제들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임을 보여주고자 한다고도 강조했다.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수학자들이 해낸 일들을 생각하면 수학이 그저 ‘골방에 틀어박혀 머릿속으로 수(數)의 세계를 유영하는 학문’이라는 세간의 오해 아닌 오해는 충분히 억울할 법도 하다. ‘연금술의 시대’였던 기원전 3세기에 아르키메데스는 금과 은의 비중 차이를 활용해 금세공사의 속임수를 간파했고, 17세기에 뉴턴은 미적분학을 통해 세상 만물의 움직임을 해석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2차 세계대전 때 앨런 튜링은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해 전쟁을 일찍 끝내는 데 기여함으로써 대략 1400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까지 평가받는다.
그리고 이제 수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인류가 지금의 관념과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을 때 맞이할 수 있는 어두운 미래를 ‘모델링’해서 보여주고 있다. 최신의 데이터와 지금까지의 추세, 그리고 정교한 알고리즘을 활용해 분석해 본 우리의 미래가 여전히 밝지 못하다는 전망은 수없이 많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어쩌면 이러한 모델들의 결과값을 바꾸어 놓을 가장 중요한 ‘지수’일 수도 있다. 현재의 과학기술과 수학적 지식을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그리고 양손에 신뢰할만한 데이터를 쥐고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기성세대를 향한 청년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는 너무 늦지 않게 인류의 미래를 규정할 그 지수의 값을 바꿔놓을 수 있지 않을까.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