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50주년 맞은 인간과 생물권(MAB) 프로그램
올해는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MAB) 프로그램이 출범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자연을 그저 보살핌의 대상으로서만 여기던 기존의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전체의 일부이자 핵심 구성 요소로서 인간과 자연을 함께 놓고 공존을 통해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자 하는 이 프로그램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
자연보호의 아이디어에 ‘인간’을 추가하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출입을 막아 철저한 보존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1970년대 초, 유네스코에서는 인간이 자연보전의 핵심임을 인식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통해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인간과 생물권(Man and the Biosphere, MAB)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유네스코 프로그램의 이름에 ‘인간’이 들어간 것은 그만큼 자연보전에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MAB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유네스코 본부와 각국 국가위원회, 그리고 MAB국가위원회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 왔다. MAB 50주년 기념행사의 대변인으로는 세계적 생태학자이자 환경연구가인 제인 구달(Jane Goodall) 박사가 임명됐다. 구달 박사는 50주년 기념사업으로 6명의 세계 각 지역 청년 MAB 대표자들과 함께 생물다양성의 중요성 및 MAB 프로그램의 역할을 강조하며 MAB를 홍보해 왔다. MAB 50주년 공식행사는 지난 9월 나이지리아 아부자와 프랑스 파리, 그리고 온라인으로 제33차 MAB 국제조정이사회 중에 진행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MAB 5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해 왔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MAB한국위원회는 제33차 MAB 국제조정이사회 중에 ‘생물권보전지역과 평화’를 주제로 부대행사를 공동으로 주관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 국가 간 평화, 평화와 지속가능성, 청년의 역할과 관련된 생물권보전지역의 역할을 논의했다. 지난달에는 ‘MAB: 삶을 얘기하다’를 주제로 MAB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열었으며, 그외에도 생물권보전지역 사진 공모전, 활동수기 공모전, 유네스코 MAB 청년 포럼도 개최했다.
MAB 프로그램과 생물권보전지역
MAB 프로그램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976년부터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을 지정하고 관리해 왔다. 전 세계에는 현재 131개국에서 727개소의 생물권보전지역이 지정되어 있다. 또한 총 면적 700만㎢의 지역 안에 살고 있는 인구만 약 2억 6천만 명에 달해 생물다양성 보전과 지구기후변화 적응에 매우 큰 역할을 하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델이 되고 있다.
생물권보전지역이 하나의 공간에서 보전과 지속가능발전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비법은 해당 지역을 기능이 다른 3개의 구역으로 나누는 공간적 배열에 있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이상적으로는 가장 안쪽에 핵심구역, 중간에 완충구역, 그리고 바깥에 협력구역(전이구역)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나눠진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갈수록 인간의 이용이 강조되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수록 자연 보전이 강조되며, 그 중간에 완충구역을 두어 보전과 이용 사이의 충돌을 막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9개소가, 북한에는 5개소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특히 남한과 북한 사이에 설치된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북한의 금강산, 남한의 강원생태평화, 연천임진강의 3개 생물권보전지역이 서로 인접하고 있어 비무장지대와 생물권보전지역이 한반도의 동서 생태축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직 지정되지 않은 파주의 비무장지대 인근지역 및 한강하구 수역의 남북경계지역도 추가적인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이 논의되고 있어 앞으로 유네스코와 생물권보전지역을 통한 자연보전분야에서의 남북협력 가능성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MAB의 과제와 희망
MAB 프로그램이 지정하는 생물권보전지역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만 봐도 현재 국내 9개 생물권보전지역의 총 육지 면적은 7673㎢로 충청북도보다도 넓으며, 해양지역까지 포함하면 1만 7012㎢에 달한다. 생물다양성법 또는 자연환경보전법으로 생물권보전지역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생물다양성 보전뿐만이 아니라 탄소 흡수 및 저장, 기후변화에 대한 자연기반 적응, 지속가능발전 등 향후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설정된 탄소중립시대를 성공적으로 열어가는 데도 중요한 일이다.
한편, 오랫동안 인구의 노령화 및 인구감소가 뚜렷하게 진행돼 온 우리나라의 농·어·산촌 지역에서는 앞으로 지역사회를 활성화하고 인구를 유입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며, 특히 이 지역에서의 지속가능발전 프로그램을 이끌어갈 젊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현재 MAB 프로그램은 젊은 활동가들을 찾고 양성시키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세계 여러 곳에서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유엔이 정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대부분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육지와 해양의 생물다양성 보전, 평화 증진, 빈곤 저감 등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설립 50주년을 맞이한 MAB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우리 미래의 건설에 일익을 담당하리라 기대하는 이유다. 지난 50년간 일구어 낸 바탕 위에서, MAB 프로그램이 21세기에 인류가 당면한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 등의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기를 희망한다.
조도순 MAB한국위원회 공동위원장, 국립생태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