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세계유산과 지속가능한 관광
세계유산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러 관련 단체들은 세계유산 지역에서의 과도한 관광의 폐해를 우려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지나친 관광’이 ‘관광이 전무한 상황’으로 반전되면서, 전 세계는 이제 세계유산 지역에서의 ‘새로운 관광의 기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간 세계유산 분야에서는 관광산업의 팽창을 독이 든 성배로 비유하곤 했다. 유산의 보존관리 예산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서 관광산업의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관광객 대응을 적극적인 유산 보존관리 업무의 일부로 포함하기 보다는 본질에서 한 발 떨어진 부수적인 업무로 취급하곤 했다.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유산의 보존과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와 수반되어 함께 따라오는 방문객 증가와 이로 인한 부가적인 피해는 늘 유산을 망치는 주요한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유산 지역으로서는 관광수익이 가져다주는 이득 때문에 수익을 우선하는 관광에 대해 강력한 비판이나 거부를 하기 어려웠고, 관광산업의 구조를 바꾸기는 요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반대가 되었고, 이제 각지의 세계유산 지역은 앞으로 관광산업의 재건과 관광상품 개발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올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4월 기준 전 세계 세계유산 지역 중 90%가 문을 닫았다. 지난 4월 29일자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박물관과 미술관도 90% 이상이 폐쇄되었고 이들 중 10%는 재정 위기로 인해 다시 문을 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전 세계 항공 노선 역시 올해 70% 가까이 축소 및 취소가 되었다. 그 피해는 관련 산업 종사자들과 세계유산 지역 주변에서 관광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해 온 수많은 지역 주민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느리지만 조금씩 상황이 호전되어 다시금 여행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그 형태와 방식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를 것으로 보인다. 사람 간 거리 유지와 청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기준인 지금, 이미 관광객의 구성은 다수의 무기명 관광객에서 소수의 유기명 관광객으로 재편되고 있다. 단위 시간당 100명 받던 입장객을 3분의1 규모로 줄여 예약제로 받으면, 당장 입장료 수익에는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이들을 더 길게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뿐 아니라 예약제를 통해 어렵게 확보한 방문 기회인 만큼 관광객의 해당 장소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질 수 있다. 또한 국가 간 이동뿐 아니라 전반적인 이동이 모두 어려워졌기에 예전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찍고 다니는’ 형식으로는 방문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어렵게 찾은 관광지에서 좀 더 오래 머물면서, 그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최대한 겪고 가는 형태로 바뀔 수도 있다.
이렇게 여행 환경이 바뀐다면 세계유산 지역은 더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미끼’ 같은 역할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대신 지역의 산업이나 특징적인 문화와 긴밀하게 연계해 세계유산 방문자들이 유산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전체에 대해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경험을 확장시켜주는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유산 구역 내에 들어오는 방문객의 수치만 따지며 입장료를 받는 것에서 벗어나 방문객들이 그곳에 얼마나 더 오래 머무르며 유산 지역 인근 서비스를 이용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07년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의 보존을 위한 5번째 전략목표로 ‘공동체’를 꼽은 바 있으며, 이후 ‘세계유산과 함께 살기’(Living with World Heritage)를 중요한 화두로 다뤄 오고 있다. 그간 지역 공동체가 세계유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며 유산의 보존과 관리에 얼마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지에 논의를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이러한 공동체가 유산을 통해 받는 혜택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까지 고민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기존의 모든 수익 구조와 혜택 구조가 본의 아니게 재편된 지금이야말로 세계유산이 해당 지역 주민들과 지속가능한 공존을 모색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모델을 정착시켜야 할 때다.
유산 지역에서 수행하는 관광 활성화 사업도 이제는 먼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몇 시간 내지는 하룻밤 묵어가는 관광객의 숫자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어선 안 된다. 대신 평생 그곳에서 살고, 자라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보낸, 그래서 지역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과 경험을 제공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지역 주민들을 관광사업의 일부로 편성하고 지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더불어 이들의 생활과 문화, 지역의 특성을 지역 내 세계유산의 가치와 연결하고 융화시키는 한편, 이를 통해 세계유산 관광이 해당 장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일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최적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조유진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ICCROM) 세계유산리더십 사업 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