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유네스코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청년포럼 지상중계
지구촌 17개국 젊은이 60명이 ‘화해와 평화’를 위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유네스코한위) 깃발 아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았다. 지난 8월 19일부터 23일까지 4박5일간 서울 중구 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제2회 유네스코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청년포럼’이 그것. 유네스코한위가 ‘청년이 만드는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주제로 개최한 이번 포럼은 공개강연과 ‘나눔의 집’ 방문, 소주제별 분과회의, <청년 리포트> 채택 및 실천프로젝트 발표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특히 각국 참가자들은 언어와 국적을 초월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훈훈한 우정을 나누며 평화의 의미를 되새겼다. 마지막 날에는 ‘웹 사이트 구축’ ‘SNS 활용’ 등 역사화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다채롭고 의미 깊던 포럼 현장을 지상 중계한다.
포럼 첫째 날, ‘청춘, 서먹함을 녹이다’
지구촌 젊은이들이 청년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속속 서울유스호스텔로 모여들었다. 한국을 비롯해 가깝게는 일본과 중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 등 동아시아권에서, 멀리는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루마니아 등지에서 온 60명의 ‘열혈청춘’들. 대부분 20대이지만, 일본에서 온 35세의 현직 역사교사 하지메 하마다 씨처럼 나이보다 마음이 더 젊은 청년들도 눈에 띈다.
먼저 청년포럼 참가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신을 소개하는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 포럼 전체 일정을 소개하는 오리엔테이션과, 포럼의 주제인 ‘청년이 만드는 동아시아 역사화해’ 관련 강의와 토론이 진행됐다. 엉클어진 역사 갈등의 실타래를 ‘화해’라는 키워드로 풀어보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젊은이들. 앞으로 이들이 내놓을 역사화해의 해법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런데, 진지하나 한편으론 딱딱해 보이는 토론 분위기가 ‘역사’라는 무거운 화두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영어로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고 세월의 나이테도 엇비슷한 젊은이들이지만, 아마도 조금은 낯가림을 하는가 보다. 서로 처음 보는 데다 피부색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다 보니 분위기가 서먹서먹하게 마련. 저녁식사 후에는 레크리에이션을 겸해 낯섦의 벽을 허무는 이른바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이 펼쳐졌다.
포럼 참가자들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앉은 가운데 잠시 이어진 여흥과 장기자랑. 수줍은 듯 다소곳이 앉아 있던 젊은이들이 한 여성 참가자의 ‘용감한’ 댄스를 계기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역시 젊음은 친화력이 강하고, 웃음은 만국공통어인가 보다. 모두가 그렇게 열린 가슴으로 생각을 나누며 화해의 묘안을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둘째 날, 뜨거운 공개강연 속으로
민동석 유네스코한위 사무총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청년포럼의 막이 본격적으로 올랐다. 개회식에 이어 진행된 공개강연에는 포럼 참가자들은 물론, 외부 청중 50여 명도 참석해 청년포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실감케 했다. 특히 이들 중에는 부천 부명중학교 국제반 동아리 학생 10여 명도 끼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첫 강연자는 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유네스코한위 집행위원이기도 한 정 교수는 ‘갈등을 넘어 화해로’라는 제목으로 열강을 했다. 정 교수는 자신의 일본 유학시절 경험과, 한일 간의 역사 인식 차이를 줄이기 위한 그간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젊은 세대의 역할을 주문했다.
“최근 역사 갈등이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동아시아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역사화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끊임없는 갈등이 있겠지만, 갈등하면서도 가야 하는 오디세이 같은 대장정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 주역은 오늘 참석한 여러분이다. 동아시아 청년 모두가 함께 간다면 힘이 덜 들고 성과가 클 것이다.”
포럼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공개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특히 청중 한 사람이 ‘역사 화해’와 ‘역사 바로잡기’에 대해 묻자 정 교수는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를 했다.
“역사화해와 역사 바로잡기는 다르다. 왜곡된 역사를 일시에 바로잡는 것은 나라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목표는 역사화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싸우고 갈등하기 전에 각국이 동반 번영이라는 큰 목표를 세우고, 항상 그 명제를 위에 두어야 한다. 즉 (역사 화해를 이루기 위해선) 상호 이해하고 상호 존중으로 가야 한다.”
두 번째 강연 시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본 관서(간사이)지역 네트워크 활동가인 노리코 마츠무라 씨가 강단에 올랐다. 마츠무라 씨는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하여’(부제 : 할머니들의 평화운동을 통해 배우다)라는 제목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일본 시민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위안부 문제는 요즘 일본 역사 교과서에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요즘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위안부와 평화 문제에 대해 가르친다. 이 내용에 학생들이 놀라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활동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기금도 모으고 있다.”
마츠무라 씨의 강연 이후 부명중학교 학생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우리도 친구끼리 싸우게 되면 좀 있다가 사과도 하고 화해도 하면서 다시 친해지는데, 왜 일본은 그런 사과를 하지 않는 걸까요?” 어쩌면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노회한 셈법이 진정한 역사화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중학생의 순수한 질문은 청중들 사이에 잔잔하지만 긴 울림을 남겼다.
세 번째 강연자는 좀 특별한 인물이었다. 분쟁지역인 팔레스타인에서 ‘원 보이스’(One Voice) 운동을 펼치고 있는 청년 모하메드 아시데. 원 보이스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얽힌 분쟁을 비폭력, 즉 대화와 타협으로 평화롭게 풀어가기를 원하는 양국 시민모임이다.
특히 모하메드 씨는 유네스코한위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해 처음 개최된 ‘제1차 유네스코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청년포럼’에 포럼 참석자로 참여했다가 이번 제2회 포럼에는 강연자로 초빙됐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뉴스로만 접하던 팔레스타인 분쟁의 실상과, 무력투쟁을 지향하다가 평화주의자로 거듭난 과정을 생생하게 전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 이스라엘 투쟁은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끝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해준 말이 나의 의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들아, 복수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복수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 점령군 밑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게 슬프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러한 현실이 우리가 원 보이스에 모여 폭력의 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무엇이든 노력하도록 하는 동기가 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들이 미래에 끊임없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날, ‘나눔의 집’ 눈물의 현장 방문
오늘은 포럼에 참가한 지구촌 젊은이들이 그늘지고 아픈 역사의 산증인과 만나는 날이다. 이날 오전 생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을 방문한 각국 참가자들은 위안부 피해자 이옥순 할머니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위안부 역사관’을 둘러봤다.
“청년들이 역사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말하고 싶어. 참 몹쓸 일이었어.…”
부산이 고향인 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일본인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가 수년간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다. 해방 이후에도 중국 연길에 머물던 그는 지난 2000년에야 그리던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이 할머니가 잔잔하게 슬픈 과거를 회고하는 동안 젊은이들의 어깨는 조금씩 흔들렸다. 할머니 곁에 있던 일본 참가자인 미사토 나가카와 씨(도쿄대 동아시아 국제정치 전공)는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 논쟁이 되는 사안이라 관심을 갖고 ‘팩트’가 무엇인지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를 만나니 중요한 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마니아에서 온 에마 니투 씨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용기 있게 털어놓는 할머니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할머니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연구소에서 일하는 앤드리 수산토 씨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슬픈 이야기다. 용기 있게 말씀해주시는 걸 보니 한국 여성들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의 시민운동가 에나야툴라 사피 씨는 “위안부 문제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다.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포럼 참가자 중 최고 연장자 격인 하지메 하마다 씨는 “그간 전쟁 피해자 정도로만 단순히 인식하고 있었는데, 직접 와 보고 우리가 얼마나 진실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면서 “한국인도 일본인도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중심을 잘 잡아서 함께 과거사를 극복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어제 마츠무라 노리코 씨의 공개강연을 듣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긴 했지만, 각국 젊은이들이 할머니를 만나고 느끼는 체감온도는 사뭇 다른 듯했다. 참가자들은 ‘화해는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얘기에 새삼 고개를 끄덕였다.
나눔의 집 방문 후 참가자들에겐 특별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모둠(소모임)별로 ‘포토에세이’를 제작하기 위한 시간이다. ‘갈등과 화해’를 주제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스토리를 구성한 후 이를 직접 몸으로 표현해 사진으로 담아내도록 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 쉽게 보여줄 수 있도록 분량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5장 이내로 제한했다. 모둠별로 십수 명씩 모인 참가자들이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머리를 맞대더니 잠시 후 어디론가 부산하게 걸음을 옮긴다. 과연 어떤 기발한 작품이 눈을 즐겁게 하고, 또 어떤 의미 깊은 사진이 마음을 움직일까.
어느새 시침이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다. 늦은 시간이지만 이번에는 청년포럼의 피날레를 장식할 ‘역사화해 실천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세미나실로 모여들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토론 열기 때문인지 유스호스텔에는 ‘열대야’가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넷째 날, ‘가슴을 열고 생각을 섞다’
종일 분과회의와 전체 회의, 토의가 이어진다고 해서 ‘회의의 날’이라 이름 붙은 하루다. 참가자들은 이번 포럼에 참석하기에 앞서 각자 에세이를 작성해 유네스코한위에 제출했다. 에세이의 주제는 두 가지. 하나는 ‘무엇이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가로막는가?’ 즉 역사 갈등의 원인 분석,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청년의 실천과 참여’ 방안 모색이었다.
오전 분과회의에선 참가자들이 4개 분과로 나뉘어져 각자 에세이 내용을 파워포인트로 발표하고, 토론을 벌인다. 분과별로 선출한 의장과 부의장이 회의를 진행하고, 전문가가 조정자(어드바이저)로 참석해 조언을 하는 방식이다. 일본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의 마크 카프리오 교수(한국역사학), 평화학의 권위자인 성공회대학 이대훈 연구교수, 성균관대학에서 역사편찬 강의를 맡고 있는 이찬행 박사 등이 지구촌 젊은이들을 위해 기꺼이 어드바이저로 나서 주었다.
어제 참가자들이 청년포럼 단체티셔츠를 입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오늘은 정장을 갖춰 입은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마도 프레젠테이션과 토론에 나서는 진지한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실제로 어제 밤늦게까지 에세이 발표를 준비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분과회의에서 참가자들은 각자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에세이를 발표하고, 그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한국인 강성원 씨는 ‘자이니치 코리안’의 삶을 산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사례로 에세이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자이니치 코리안(Zainichi Korean)이란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사람을 의미하는데,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깊다.
강 씨의 할아버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부친이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고, 설상가상으로 집안에 큰 어려움이 닥치면서 고향을 등져야 했다. 어린 나이에 살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 오사카로 간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어 정착했다고 한다. 강 씨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늘 ‘조선사람’임을 강조했고, 조국의 통일을 꿈에도 바랐지만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2003년 눈을 감았다는 것.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던 할아버지의 서글픈 역사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까. 강 씨는 재일한국인의 삶과 최근 급증 추세인 다문화가정을 염두에 둔 듯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소수자들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강 씨는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해서 국가 간 인적 교류를 확대하고 정치문제에 참여할 수 있는 청년단체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일본 참가자 마사토 나가가와 씨(도쿄대학)는 동아시아 역사화해가 어려운 원인을 세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공동교과서 등 역사 문제에 대한 정보 교류와 이해 부족, 다른 하나는 역사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들의 행태, 또 다른 하나는 정부 간 대화 부족이다. 아울러 나가가와 씨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간 대화통로 확대 등을 주장했는데, 특히 “정상회담 등 정부 간 회담을 개최할 때에 각국의 청년들이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목을 끌었다.
참가자들의 토론이 감정적으로 흐르거나 주제에서 벗어날 때면 조정자 역할을 맡은 교수들이 적절하게 개입해 토론의 방향을 잡아주었다. 또한 때때로 참가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화두를 던져 생각의 폭을 넓혀 주었다. 마크 카프리오 교수는 이전 발표자의 보완점을 지적한 뒤 다음 발표자를 향해 “다음 희생자~”라고 농담을 던져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회의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했다. 조정자들의 윤활유 같은 역할 덕분에 각국 참가자들은 서로를 향해 귀와 가슴을 열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이날 오후에는 전체회의에 앞서 각 모둠별로 참가자들이 어제 제작한 ‘포토에세이’를 발표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참가자들은 ‘갈등과 화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젊은이 특유의 활력과 재치로 표현해 냈다. 참가자들이 풀어낸 이야기보따리는 신선했고, 사진에는 익살스러운 모습이 가득 담겼다.
한 모둠은 물 부족 때문에 두 나라가 서로 싸우게 됐지만, 협상을 통해 다시 화해하는 장면을 코믹하게 연출했다. 다른 모둠은 개인을 색깔로 구분하고,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다가 모두들 색깔을 벗어버리고 평등해지는 모습을 보여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다음은 1차 전체회의. 각 분과별로 토의한 내용을 모든 참가자들이 공유하고, 내일 채택할 토론 보고서 <청년 Report>의 초안을 마련하는 시간이다. 먼저 각 분과의 의장과 부의장이 분과별로 논의된 ‘역사화해 저해 요인’과 ‘극복 및 실천 방안’ 등을 발표하면, 다른 분과 참가자들이 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거나 이의도 제기하면서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실제로 “종교가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한 분과의 발표가 있자, 다른 분과의 참가자가 반대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동아시아는 비교적 유교, 불교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이라 종교가 분쟁의 원인이 된 경우는 많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앞서 발표한 분과의 의장은 이에 대해 “동남아시아에 속하는 태국은 불교와 이슬람교 간 종교갈등이 실제 발생하고 있다”며 “동아시아를 동북아시아로 국한하지 않고 좀 더 넓혀서 보면 종교 역시 갈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토론을 통해 참가자들은 그간 미처 모르던 서로의 문화와 환경을 하나씩 배우며 한 걸음 더 상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저녁때 다시 모여 내일 2차 전체회의 때 발표할 ‘실천프로젝트’를 분과별로 구상하고 가다듬었다.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해 청년들이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방안을 찾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아직 미지수. 하지만 이들이 보이는 진지한 열정만큼은 이미 역사화해의 가교를 잇고도 남을 듯했다.
다섯째 날, ‘화룡정점’ <청년리포트> 채택
4박5일간 이어진 포럼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날. 참가자들은 2차 전체회의를 열고 그간 각 분과별로 토론했던 내용을 간추려 <청년 Report>를 채택했다. 이어 각 분과 참가자들이 준비한 ‘동아시아 역사화해 청년실천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참가자들이 내놓은 실천프로젝트는 다양하고 흥미로웠다. ‘대학생들이 이웃나라와 쟁점이 되고 있는 역사문제를 어린이들에게 올바로 교육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있는가 하면, ‘역사화해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 여러 나라에서 청년들이 역사화해를 촉구하는 영상을 찍어 유투브에 올리자는 공동제안도 있었다.
이날 발표된 각 분과의 청년실천프로젝트는 다른 분과 참가자들과 유네스코한위의 평가를 받게 된다. 이들 프로젝트 중 평가 점수가 높은 상위의 3개 프로젝트에 대해선 각각 최대 2000달러가 지원될 예정. 젊은이들이 역사화해를 말로만 얘기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실천하도록 돕자는 취지에서다. 최종 선정된 프로젝트는 9월 초 유네스코한위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된다.
어느덧 폐막식 시간이 다가오자 참가자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아마도 ‘예정된 이별’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 듯하다. 불과 닷새 전만 해도 서로에게 생면부지의 이방인이었던 젊은이들은 어느새 마음을 나누는 벗이 되어 있었다. 언어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인 젊은이들. 귀국길에 이들의 배낭 한 켠에는 ‘화해를 통한 평화’라는 같은 꿈, 비슷한 바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제2차 유네스코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청년포럼’은 마침내 막을 내렸지만, 포럼청년들이 펼쳐갈 ‘청춘 블루스’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송영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홍보소통특별위원, 전 일요신문 정치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