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37차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유네스코가 유엔개발계획(UNDP)과 공동으로 기획한 창의경제보고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공동으로 출간한 세계사회과학보고서가 하루 간격으로 발표되었다. 흥행의 승자는 단연 전자였다. 문화와 발전에 대한 유엔총회의 결의를 목전에 앞둔 상황에서 사무국이 준비한 창의경제보고서 초판 200부는 순식간에 소진되었다. 당일 출판 기념식에서 보코바 사무총장은 모든 국가들이 역동성의 새로운 원천을 찾고 있고, 동시에 국제사회가 2015년 이후 개발 아젠다를 설정하고 있는 완벽한 타이밍에 보고서가 도착했다고 말했다.
시청각 상품, 디자인, 뉴미디어, 공연예술, 출판, 시각예술 등의 창의산업들은 소득, 고용, 수출면에서 급성장하며 세계 혁신 경제를 견인하고 있으며 동시에 표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질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에서 유엔 차원에서 논의 중인 Post-2015 개발 아젠다에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요한 맥락이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국제사회 기여를 강조하는 우리 정부의 기조를 고려하면 보고서가 국내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보고서(p 74)는 최근들어 아시아권에서 한국이 가장 성공적으로 문화 및 창의 산업을 발전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8년과 2010년에도 유엔 차원에서 창의경제보고서가 있었다. 유네스코가 주도한 이번 보고서가 이전 1-2차 보고서의 주요한 연구 성과를 기초로 설계되었지만, 문화와 창의경제가 각 국가 및 지역의 발전 과정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규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교역의 측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과거 보고서와 차별된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보고서가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현재 지역의 경제적, 비경제적 활력을 이끌고 있는 생생한 창의경제의 사례와 증거들을 전세계에서 발굴해 냈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보고서가 세네갈의 사례로 언급한 Hip Hop Akademy는 지난 18일 사무총장 취임식에 초대되어 축하 공연을 했고, 보코바 사무총장은 취임사에서 지속가능발전의 추동력으로서의 문화의 위상을 강조해 왔던 자신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사실 2009년 첫 취임 당시 사무총장이 던진 문화와 발전에 대한 화두는 ‘하나의 유엔'(One UN)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유네스코의 확실한 비교우위인 문화 부문을 새년천개발목표(MDG) 이후의 개발 전략에 명징하게 각인하려는 유네스코의 생존 전략 또는 입지 선점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문화가 Post-2015 개발 아젠다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된다면 이는 보코바 사무총장의 주요한 업적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창의경제보고서는 개발 아젠다에 대한 유네스코의 상징적인 ‘출사표’로 보인다. 보고서의 부제(Widening local development pathways)에서 보듯, 유네스코는 문화를 통한 창의경제를 단일하게 쭉뻗은 고속도로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 서로 연결된 오솔길에 비유하면서 개발에 대한 사고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고서가 결론으로 제시한 창의경제 발전 10대 주요 권고는 향후 지속될 관련 논의에 중요한 국제협력의 틀을 제공할 것이다. 한편, 보고서와 함께 개통된 전용 웹사이트는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헬렌 클락 UNDP 사무총장의 홍보 영상을 배포하는 등 다양한 추가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 창의적이다.
강상규 주 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 주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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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창의경제보고서는 creativeeconomyreport2013.com에서 다양한 콘텐츠와 함께 열람이 가능하며, 웹사이트에서 “Let’s put culture on the agenda now!”를 슬로건으로 한 유네스코-UNDP 사무총장 홍보 영상 등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