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개국, 977개 학교’. 해외에 한국어나 한국학 강좌가 개설된 나라와 대학의 수이다. 한류와 경제발전 등으로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한국학’에 대한 지구촌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국제학술지는 여럿 있지만, 국내 최초의 영문 한국학 학술지인 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학술지는 아마 드물 것이다.
바로 그 이 한국학 연구 진흥을 위해 ‘코리아저널상’을 제정하고 지난 9월 18일 첫 시상식을 가졌다. 평균 45 대 1의 경쟁을 뚫고 초대 수상작으로 선정된 논문은 두 편. 과연 이 논문에는 어떤 특별한 내용이 담겨 있을까. 두 논문의 포인트를 문답 형태로 정리했다.
조선 남자의 눈물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
▶ 인문사회 분야 수상자 최기숙 교수(연세대 국학연구원 인문한국)
▶ 논문 제목:‘우는 남자의 애도 의례:18세기 조선 사대부의 애곡의 장소와 인문성의 처소’
☞ 무엇을 다룬 논문인가
유교문화 아래서 감정 표현, 특히 감정의 절제가 미덕으로 강조되던 시대에 사대부들이 슬픔과 애도를 ‘제문’(죽은 이를 제사 지낼 때 쓰는 글)이라는 특정한 글쓰기 양식을 통해서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분석한 글이다.
☞ 논문 소재가 특이하다
조선시대 남자들은 특히 어려서부터 울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다. ‘그렇다면 울음으로 분출되지 못한 그 눈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가 의문의 출발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중용’을 강조해 슬픔마저도 예에 맞게 표현해야 했다. 그렇지만 인간이 절제(화)하지 못하는 극단의 비통한 순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이 바로 사대부들의 글 가운데 제문이었다.
☞ 연구 자료가 흔치 않을 듯한데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인 제문(祭文)과 비석에 새기는 묘비문(墓碑文), 무덤 속에 넣는 추도문인 광지(壙誌) 등 400여 편의 자료를 연구해 사대부 남성들이 어머니, 아내, 딸 등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겪을 때 어떻게 제문을 통해 슬픔과 애도라는 격한 감정을 담아내는지를 분석했다.
☞ ‘애곡의 장소와 인문성의 처소’라는 부제의 의미는
조선시대 사대부 남성은 눈물을 흘리는 공적인 기회를 ‘박탈’당했으며, 특히 슬픔이나 절망 같은 감정을 억압하도록 교육 받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문’이라는 문학적 양식을 통해 공적으로 울 수 있는 ‘문학적 장소’를 마련해왔다. 제문을 분석해 보면 망자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가 지녔던 인간적 가치를 애통해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죽음은 누군가의 슬픔과 의례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문은 글 쓰는 주체가 인문성(Humanity)을 발견하고 전달하며 구축하고 기억하는 통로로 작용했다.
☞ 애도 표현은 대상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었나
망자와의 혈연성, 관계 친소성과 지속성, 애정과 관심도 등에 따라 달라졌다. 정서적 친밀성이 강하고 애정이 깊을수록 애도의 감정 표현이 짙어졌다.
남성 작가가 남성 망자(아버지, 남동생, 친구)를 위해 쓴 제문보다 여성 망자(어머니, 아내, 여동생)를 위해 쓴 제문에서 슬픔과 관련된 수사적 표현이 더 많았다. 제문에 나타난 슬픔과 애도의 표현에는 감정과 관련된 개념어(예컨대, 슬프다) 대신, 슬픔을 겪는 몸의 움직임과 반응에 대한 표현(예컨대, ‘가슴이 찢어진다’, ‘피를 토하는 듯하다’)이 많았다.
☞ 이 논문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나
제문에서 나타나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진정을 나누고자 하는 ‘관계성’이 사람들을 풍성하게 하고, 자기자신을 자유롭게 하며 인간적인 존재로 만드는 문화적 힘이었다는 점이다. 사대부의 제문 중에는 가족과 친인척에 대한 것이 많지만, 동네에 살던 이름 없던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들도 있다.
누군가 그 사람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면, 그가 살았다는 존재 자체가 잊혀질 수 있다. 그렇기에 제문은 망자와의 관계를 추억하며 타인을 위해 울 수 있는, 순수한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는 글쓰기인 것이다.
지금 작은 성과 쌓아야 미래 ‘통일대박’ 가능
▶ 사회과학 분야 수상자 박건영 교수(가톨릭대 국제학부)
▶ 논문 제목:‘미중 관계와 한반도의 통일’
☞ 무엇을 다룬 논문인가
평화통일은 한국의 핵심 국가목표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는 현실적으로, 법리적으로 국제화돼 있어 한국이 독자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자신의 주요 안보 이익을 투영하고 있고, 세계 및 지역의 안보 질서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이 글은 미중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탐색하고, 이것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노정과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 분석한 것이다.
☞ 기존의 통일 관련 논의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기존의 논의들은 대부분 ‘불완전한 민족국가의 완성’이라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거나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적 시각 중에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고 있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이 논문은 변화하는 동아시아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이 통일을 향해 나아갈 길을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중 관계, 한미 한중 관계 등과 연계해 조망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 논문에서는 향후 미중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서서히 변화하겠지만 당분간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불안정한’ 양국 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미중 관계에 대한 연구는 경제적·군사적·전략적인 문제와 함께 양국의 정체성과 가치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미국은 자유주의와 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치주의가 근간이다. 자유의 가치, 즉 미국의 가치를 국경 너머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미션 의식’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 우리는 없어서는 안 되는 국가다’라는 ‘미국적 예외주의’라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 예외주의는 미국의 국내외 정치핵을 관념적으로 지배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 역시 천하 질서에 기초해 문화적 위계질서를 상정한 ‘중국식 예외주의’가 존재한다. 게다가 아편전쟁 때 겪은 트라우마로 서방의 자유주의가 아닌 ‘반자유주의’ 정서가 뿌리 내리고 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에게는 ‘개인의 자유는 국가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중국식 위기의식’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양국 사이의 이러한 가치관의 충돌, 문화적이고 구조적인 갈등이 미중 관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미국과는 보다 현대화된 동맹관계로 옮겨가야 하고, 중국과는 협력 확대를 통해 상호관계를 더 깊이 해나가야 한다. 미래의 미중 관계 아래서 한반도의 평화통일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실용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은 평화통일 외교의 성공을 위해 현실과 유리된 ‘십자군적 정신’에서 탈피하고, 정책의 목표를 ‘실질적 이익의 내용’ 관점에서 정의해야 한다.
☞ 현 시점에서 남북관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전략적 실용주의’에 기초한 외교가 필요하다. 지금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한 걸음도 못 나가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작은 성과들이 축적된다면, 현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미래에는 훨씬 해결하기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