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023년 9월 17일 사우디아리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됐다. 독보적인 문화와 기술을 가졌음에도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잊힌 나라’로 여겨지던 가야의 탁월한 가치를 비로소 전 세계에 제대로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흔히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가야는 한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1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대등한 힘을 가진 여러 정치체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가야고분군’은 이러한 정치체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7개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7개 고분군은 ▲대성동고분군 ▲말이산고분군 ▲옥전고분군 ▲지산동고분군 ▲ 송학동고분군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다. 이들 고분군의 지리적 분포와 입지, 묘제, 부장품을 살펴봄으로써 가야연맹은 내부적으로 여러 정치체 간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적으로는 주변국과의 교섭을 통해 고대 동아시아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가야고분군은 북쪽과 서쪽으로는 소백산맥, 동쪽으로는 낙동강, 남쪽으로는 남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남부의 해안과 내륙의 독립된 분지에 위치한다. 이러한 자연적인 경계는 개별 정치체가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다중심적인 가야연맹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각 정치체의 중심지의 가시성이 뛰어난 구릉지에 오랜 기간 군집 조성된 고분군은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각 정치체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산이다.
그 중에서도 가야연맹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는 것은 가야식 석곽묘와 토기를 비롯한 부장품이다. 동일한 장례풍습을 행했음을 보여주는, 평면이 세장방형인 가야식 석곽묘와 고배·기대·장경호의 공통적인 가야 토기는 가야연맹의 구성원으로서의 동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지리적 범위를 알려준다. 그러면서도 각 정치체의 세부적인 토기 양식의 차이(곡선미, 다양한 형태의 다리 구멍, 표면 장식 등)는 연맹을 구성했던 각 정치체의 범위와 개별성을 나타낸다. 고분군에서 출토된 지배계층의 무장적 성격의 위세품(대도·갑주·마구)을 보면 각 세력이 대등한 수준의 세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고, 주변국과의 교섭을 보여 주는 교역품(철기·토기 등)을 통해 연맹을 구성한 각 정치체가 자율성을 가진 수평적 관계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가야고분군 중에서 대성동고분군은 크고 높게 조성하지 않은 봉분의 외형과 석곽묘의 모습,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를 통해 연맹에 속한 여러 정치체가 공유한 매장 풍습의 초기 유형을 잘 보여준다. 말이산고분군은 7개 고분군 중 가장 긴 기간(1-6세기) 동안 연속적으로 조성되어 연맹의 구성원이 공유한 속성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옥전고분군에서는 다른 가야 정치체의 영향을 받은 묘제와 높은 수준의 위세품을 통해 가야 정치체 간의 활발한 교류를 파악할 수 있다. 지산동고분군의 가장 발달된 가야식 석곽묘의 매장부 유형과 대형 고분군의 군집된 경관은 연맹의 최전성기를 증명하고 있으며, 송학동고분군은 봉토의 축조 방식과 출토된 교역품은 일본열도와 활발하게 교역했던 정치체의 특성을 보여준다.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에서 확인된 가야식 석곽묘와 백제계 교역품은 가야 정치체들이 자율적으로 백제와 교섭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가야 연맹의 서북부 최대 범위를 잘 드러내고 있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에서 확인된 신라와 인접한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묘제와 신라계 교역품은 신라와의 자율적 교섭 역시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가야고분군은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하면서 주변의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와 병존하였던 가야의 문명을 실증하는 증거로,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한 유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 또한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형태와 디자인, 재료와 물질, 위치와 주변 환경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각 봉분은 처음 조성된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위치하고 있으며, 유산의 가치를 보여주는 입지적·지형적 특징도 잘 유지하고 있다. 7개 고분군 모두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되어 대부분의 유산구역과 완충구역이 개발 행위로부터 보호되고 있다.
가야고분군은 2013년 3개 고분군(대성동고분군, 말이산고분군, 지산동고분군)으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으나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연속유산의 선정 논리 및 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2018년 4개 고분군(옥전고분군, 송학동고분군,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이 추가되어 2019년에 다시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이후 2021년 1월에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했고, 2021년 9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현지실사, 2차례의 추가자료 제출, 패널회의 등의 심사 과정을 거쳐 2023년 5월 ‘등재 권고’평가를 받고 9월 17일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등재 결정을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의 열여섯 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가야고분군이 앞으로 자랑스런 우리의 유산으로서 전 세계에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요청드린다.
강경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