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교육 라운드테이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여아들은 조혼을 통해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될 결혼 지참금과 맞바꿔지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집안일만 하거나, 교육을 받더라도 ‘현모양처’가 되는 법을 익히는 것에 그쳤다. 전 세계 남성 인구 문해율은 90%에 달하지만 여성 인구의 문해율은 83%에 그치고, 전체 문맹 인구 중 여성이 63%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여성의 교육권이 침해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 달성에 힘쓰는 유네스코가 교육 사업 중에서도 여아 교육(girls’ education)을 우선순위로 지정한 것은 당연하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이러한 우선순위에 공감하여 유네스코, 외교부, CJ와 함께 올해 제206차 유네스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기간 중 ‘단 한 소녀도 소외되지 않게’(Leave No Girl Behind)라는 제목으로 소녀교육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이번 라운드테이블은 다양한 규모와 분야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소녀교육 사업의 성과를 공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라운드테이블의 시작을 알린 홍석인 외교부 공공문화외교국장은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전후(戰後) 무너진 교육을 다시 세울 수 있었던 한국이 이제 다른 나라에서 교육이 그같은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돕고자 한다”고 말하며, 2030년까지 모든 소녀들이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임을 표명했다. 이에 스테파니아 지아니니 유네스코 교육 사무총장보는 한국의 지속적인 지원에 사의를 표하고, “유네스코가 여성을 교육하는 것은 개인과 국가를 넘어 전 세계를 교육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소녀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진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소녀교육 사업 관계자들이 다각도에서 유네스코 소녀교육 사업을 평가했다. 말리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협력해 소녀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랄라 엘 옴라니(Lalla El Oumrany) 씨는 “조혼이나 집안의 경제적 문제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는 소녀들이 아직도 많다”며 다분야간 접근(cross-sectoral approach)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보건, 젠더, 고용 등 다방면에 걸친 교육을 병행해 소녀들이 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네팔 소녀교육 사업의 수혜자에서 사회적 사업가로 성장한 보니타 샤르마(Bonita Sharma) 씨도 이 주장에 공감하며, 소녀들에게 영양 및 월경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이 설립한 사회적 기업인 ‘Social Changemakers & Innovators’를 소개했다. 특히 영양부족이 심하고 월경을 불경시하는 네팔 사회에서 적절한 영양 공급과 월경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여성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폴린 로즈(Pauline Rose) 교수는 소녀들이 동등한 교육을 받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가시적인 정치적 의지를 보이고, 저학년 교육에 투자하고, 소녀교육을 국가발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린 로즈 교수는 이 세 요소가 여러 연구를 통해 중요성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의지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교육, 외교, 경제 등 다양한 부처가 협동하여 소녀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공여주체 중 소녀교육 사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여를 하고 있는 CJ 그룹 사회공헌추진단의 민희경 부사장은 “직원과 고객층 모두 여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재 기업으로서 여성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CJ가 강점을 보이는 문화 산업 플랫폼을 이용해 소녀들의 인식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네스코 말랄라 펀드를 통해 소녀교육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CJ는 올해 유네스코 베트남사무소와 협력해 신규 소녀교육 사업을 3개년에 걸쳐 진행할 예정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김광호 사무총장은 폐회사에서 한국에서도 여성의 교육이 등한시되었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음을 언급하고, 앞으로 소녀교육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유네스코 및 회원국이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보니따 샤르마 씨는 라운드테이블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 나가기에 ‘너무 어린 나이’란 없다”고 했다. 인류의 절반이자 미래를 이끌어갈 전 세계 소녀들이 교육에 대해 평등한 접근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은 인권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그들은 더 다양한 고급 기술을 가진 노동자로, 더 건강한 자녀들을 길러내는 어머니로,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과학자로 거듭날 수 있다. 그 어느 소녀도 뒤쳐지지 않고, 자신이 선택하고 원하는 삶을 멋지게 살아내는 여성으로 자라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기대해 본다.
박다혜 국제협력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