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선미촌 문화재생 프로젝트
전주시 중심부의 성매매집결지인 ‘선미촌’에서는 2014년까지만 해도 49곳에 달하는 성매매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말 마침내 마지막 남은 업소에서 불이 꺼졌고, 그 8년 사이에 이곳의 빈 건물들은 여성과 청년, 예술인과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콘텐츠로 다시 채워지고 있다. 인권 유린의 공간을 인권 존중과 예술문화의 장으로 탈바꿈시킨 성과를 통해 2019년 이후 매년 ESD 공식프로젝트로 인증받아 온 선미촌 문화재생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전주시 중심부 서노송동 일대에 위치한 선미촌은 성매매집결지로서 60여 년간 도심 속 그늘과 아픔이 축적된 장소였다. 2004년 성매매방지 특별법이 제정된 후 수 차례에 걸쳐 이 지역을 정비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이후 2011년부터 서노송동 일대에 구도심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됐고, 2014년에는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지역주민, 행정, 학계가 모여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를 출범하고 선미촌 정비 방향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강제 철거 후 민간자본으로 재개발 사업을 하는 안에서부터 공영개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협의회는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점진적 기능전환방식을 통해 문화재생사업을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전주시는 선미촌 기능전환을 위한 용역을 실시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을 시작했다.
체계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2015년 8월 도시재생과 내에 신설된 ‘서노송예술촌’팀은 성매매 공간을 사들여 전시를 하고, 여성단체에서는 낮시간 선미촌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6년부터 국토부 공모사업으로 보안등과 가로등 설치, 우범지대 방범용 CCTV 설치, 도로와 골목길 정비 등을 통해 환경 개선도 시작했으며 2017년에는 전국 최초로 성매매 집결지 내에 현장시청을 개소해 팀장 1명과 주무관 2명이 근무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선미촌 업소에서 나온 여성을 대상으로 직업훈련 및 생계지원비와 주거지원비를 지원해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과정에서 반발도 적지 않았다. 성매매 조직들로부터 수많은 협박과 민원이 있었고, ‘자발적 성매매에 왜 공적 자금을 쓰냐’는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는 소통과 설득을 한 끝에 38명의 여성이 선미촌을 벗어나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주시는 주민들이 쉴 수 있는 녹지공간과 인권 및 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2016년부터 선미촌 내 건물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선미촌의 변화 방향을 묻는 인터뷰에 “지금은 손님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의자지만 (나중에는) 친구와 산책하다 잠시 쉬는 의자면 좋겠다”고 답했던 한 여성의 소망을 담아 매입 건물 1호점은 지역 주민들의 쉼터이자 녹지공간인 ‘시티가든’으로 탈바꿈했다. 2호점은 문화예술인들이 전시와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뜻밖의 미술관’이 되었고, 선미촌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성매매 업소 건물이었던 3호점은 환경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새활용 문화와 산업을 키우기 위한 복합문화시설인 ‘전주새활용센터 다시봄’으로 다시 태어났다. 4호점은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동네책방인 ‘물결서사’로, 5호점은 지역의 문제를 찾고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공간이자 선미촌의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고 여성인권과 성평등 활동을 돕는 공간인 ‘성평등전주’로 바뀌었다. 이어서 6호점에는 주민생활 거점공간인 ‘서로돌봄플랫폼’이 들어설 예정이며 7호점에는 예술협업창작지원센터인 ‘놀라운 예술터’가 들어섰다.
선미촌이 이처럼 밝고 활기찬 공간으로 변모한 데는 여성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과 예술인들의 주도적인 역할이 누구보다 컸다. 이 점이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을 여타 도시재생사업보다 더 돋보이게 만든다. 주민들은 2018년 선미촌문화기획단을 발족해 동네잔치와 마을장터를 열면서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작물과 음식을 팔고, 청년작가들의 공예품을 사고 팔면서 마을에 활기와 온기를 채웠다. 민간 영역이 주도성과 자발적 실천성을 발휘하고 행정이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했기에 오늘날의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서노송예술촌이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아 있다. 누군가는 현재의 서노송예술촌을 보고 ‘이게 무슨 예술촌이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의 선미촌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을 착취하던 공간에 여성인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더 나아가 성평등 활동과 교육의 중심지로서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발전해 나가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 마련된 현장시청 입구에는 개소 당시부터 “가장 아픈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수많은 여성들에게 가장 아픈 곳으로 기억되었을 선미촌을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는 공간으로 다시 가꾸기 위해, 전주시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황선화
전주시청 생태도시계획과 서노송예술팀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