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불러온 이슈들은 기술적인 것이 아닙니다. 과학과 정치와 철학과 윤리적 물음을 인간에게 제기하는 휴머니티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다룰 때 인본주의 가치에 기반을 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지난 3월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는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이 개회사를 시작으로 ‘인본주의’라는 키워드로 인공지능을 다룬 글로벌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유네스코와 인공지능의 만남을 인본주의로 엮어낸 이번 회의는 인공지능을 유네스코 내 논의의 장으로 끌어오고, 유네스코를 인공지능의 영역에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로운 가능성과 유네스코의 역할
유네스코에서도 인공지능은 뜨거운 이슈다. 아프리카를 위한 인공지능, 교육을 위한 인공지능,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인공지능 등 작년부터 인공지능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유네스코는 인공지능 이슈를 관장하는 태스크포스를 꾸리기도 했다. 인공지능은 유네스코가 다루는 교육, 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분야와 관계가 있다. 이에 유네스코는 지난 1월 유네스코의 각 분야가 인공지능과 어떤 접점이 있는지를 회원국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고 인공지능을 유네스코 사업 전체를 관통하는 큰 줄기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전하기도 했다. 교육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취약 계층과 소외 지역을 위해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물 관리 모니터링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할 수 있으며, 문화 분야에서는 문화유적을 재건, 보존하고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을 막는 데 인공지능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유네스코의 인공지능에 대한 열정에 화답하듯 회원국들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인공지능 분야 카테고리 2센터를 설립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했고, 중국은 ‘SDG 4(교육)에 인공지능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이번 집행이사회에 제안했다. 일본, 브라질, 모로코는 인공지능 관련 유네스코 회의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가야 할 길
그야말로 ‘폭풍성장’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어떤 모습의 미래를 만들어 갈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른다. 삶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있는 반면, 빈부 격차를 더 벌릴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있다. 또 ‘마음’ 없이 ‘두뇌’에만 의지하는 인공지능이 편견, 차별, 불평등이라는 인류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닮게 될 수 있다는 걱정도 크며,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거대한 공간에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인공지능의 기술적 발전에 비해 인공지능이 나아갈 방향을 안내하는 법적, 사회적, 윤리적 환경은 매우 더디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 늦어질수록 어긋난 길을 되돌리는 일도 어려워진다. 유네스코가 인공지능 분야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기준을 세우는 일, 이것은 유네스코가 이제껏 84개에 달하는 규범을 만들며 해 온 일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을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관리하기 위한 윤리적 원칙이 필요하다.’ 지난 3월 글로벌컨퍼런스에 참석한 정부와 민간, 기업과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40여 명의 연사가 한 목소리를 낸 대목이다. 유네스코는 작년 여름부터 인공지능의 윤리 원칙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전문가들의 예비보고서가 이번 집행이사회에 올라왔다. 이 보고서는 투명성, 포용성, 인권, 민주, 지속가능성 등 인공지능이 염두에 두어야 할 기본 원칙들을 유네스코의 권고 안에 담아낼 것을 주문했다. 공식 권고문이 나오기까지는 광범위한 협의와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과학기술과 기후변화, 생명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성공적으로 제시해온 유네스코이기에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우리에게 바른 길을 안내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선경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