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헌장은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고 시작한다. 이 구절은 평화나 전쟁은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인간의 마음이란 어떤 곳일까? 그 마음이라는 곳이 든든한 대지가 아니라 진흙 밭 이나 늪이라면 평화의 방벽이 제대로 세워질 수 있을까? 그 마음이라는 곳은 도대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서양 인식론의 역사에서 인간 마음을 가장 심층적으로 탐구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이론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마음은 빙산과 같다. 커다란 얼음덩어리의 일부만이 물위로 노출된 채 떠다닌다” (『프로이트의 의자』 20쪽). 즉, 인간의 마음에는 우리가 인지하고 자각하고 있는 부분(의식)보다 물속에 잠겨있어 여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부분(전의식과 무의식)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의 존재를 중요시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서구에서는 인간 마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기본 전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설기만 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국내에서 발간된) 관련 서적들이 이론과 용어를 원서로부터 날 것 그대로 전달하여 안 그래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정신분석 이론을 더욱 아리송한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정신분석가로서의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해 잘 익은 된장처럼 숙성된 설명을 펼쳐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프로이트의 의자』는 ‘정신분석이 뭐에요?’라고 묻는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자상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이 적절한 예와 비유를 들어가면서 정신분석 이론을 풀이한 책으로, 특히 프로이트 이론의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무의식적 동기’, ‘욕동’, ‘방어기제’, ‘투사’ 같은 개념들과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자아, 이드, 초자아가 벌이는 교묘하고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하 기 쉽게 설명한다. 『프로이트와의 대화』는 좀 더 어려 운, 본격적인 정신분석학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책이지만, 정신분석학의 탄생의 토양이 된 프로이트의 생애와 사상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이를 예술 작품에 적용시켜 읽은 이의 이해와 재미를 더한다.
이 두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정확하게는,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우리가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억압한 원초적 욕망이나 공격성 같은 정서들은 마음의 지하창고 에서 무의식의 형태로 저장되어 틈틈이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 활화산처럼 분출하여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타인과의 관계를 왜곡시킬 수 있다.
무의식은 억압할수록 더욱 파괴력을 지니기 때문에 마음의 지하창고에 볕을 쬐이고 무의식에 말을 거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의식에 접근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이라는 임상적 치료기법과 정신분석가라는 직업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안에 있는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무의식을 억압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어떤 방어기제를 동원했는가를 이해하면 어느 날 대책없이 무의식의 역공을 받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전쟁터가 되지 않고 어머니 대지처럼 평화의 방벽을 쌓을 수 있는 안정된 공간이 되려면 우리 마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무의식부터 보듬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민아 유네스코평화발전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