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과학보고서』를 통해 살펴본 유네스코와 한국의 역할
『유네스코 과학보고서』는 ‘디지털’과 ‘녹색’의 이중 전환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국경을 초월한 협력을 각국에 당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유네스코와 한국이 해야할 일과 던져야 할 질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이번 보고서의 요약본 한글판을 감수한 박범순 교수의 제안을 들어보자.
우리 속담에도 있듯 한 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일에는 둘 모두를 놓칠 우려가 늘 따라온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둘다 놓쳐서는 안 될 상황이 생각보다 많다. 예컨대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직장과 가정, 사업과 건강, 개발과 환경 등은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조합이다. 그런데 지난해 발간된 『유네스코 과학보고서』는 ‘녹색 전환’과 ‘디지털 전환’의 ‘짝짓기’(pairing)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서 그치지 않고, 둘의 짝짓기를 통해 불평등의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일석삼조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사실 녹색 전환은 유엔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것이다. 유엔은 1970년대에 이미 「인간환경선언」(스톡홀름선언)을 선포하며 유엔환경계획(UNEP)을 발족했고, 유엔환경계획의 세계환경개발위원회는 1987년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에서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에서 유엔지속가능발전위원회 창설이 합의되었고, 20년 만에 리우에서 다시 열린 2012년 회의에서는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녹색경제’를 채택하는 동시에, 다소 추상적이었던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구체적인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로 대체하는 데 동의했다. 2015년 제70차 유엔총회에서는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게 하자’(Leave no one behind)라는 슬로건 아래 2030년까지 인간, 지구, 번영, 평화, 파트너십이라는 5개 영역에 17개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이렇듯 전 세계가 디지털 기술을 등에 업고 녹색 전환을 위해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유네스코 과학보고서』가 강조하고자 한 점은, 이제 시한이 채 10년도 남지 않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최대한 널리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 즉 정보통신,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로봇공학 등을 활용해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경제구조를 바꾸고 친환경적인 녹색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보고서에서 분석한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스마트 시티, 스마트 모빌리티, 스마트 교통, 스마트 농업 등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여기에 투입되는 연구개발 예산도 증가하고 있어 희망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전반적으로 재생에너지의 비용 대비 편익이 예전에 비해 크게 상승해 녹색 에너지 프로젝트로 경기부양과 고용 확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된 점도 중요한 변화다. 특히 선진국의 원조 형식으로 과학기술이 퍼지고 있는 것이 아닌, 후발주자들이 자체적으로 그 역량을 키우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다만 보고서는 녹색과 디지털의 이중 전환이 국가 간, 사회계층 간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같은 목표와 지향점을 갖고 있지만, 이미 ‘출발점’이 다르기에 기술과 자본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간극은 더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간 격차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선진국의 적극적인 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국가 간 경쟁으로 사각지대에 있을 수 있는 국가나 부족,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 바로 유네스코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국가 간 협력이라는 과제는 유네스코의 바람대로 잘 달성될 수 있을까. 이번 보고서에서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나타난 국가 간 과학 협력의 양상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여기에는 희망과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희망적인 부분은 팬데믹이 백신 개발을 위한 국제간 공조를 촉진하고,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등 지식 생산 시스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각국의 자국우선주의와 팬데믹으로 인해 빚어진 글로벌 공급망의 차질 때문에 더 많은 나라에서 주요 제조업을 국내로 회귀하는 작업(reshoring)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 반도체, 통신설비 등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협력보다는 경쟁, 기술 공유보다는 기술 패권을 향한 움직임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요즘 뉴스란을 수시로 장식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전쟁과 갈등은 팬데믹 발생 이전부터 일어났던 일이지만, 팬데믹이 진행되면서 더욱 공고화된 측면이 있다.
이번 보고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한국을 모범국가로 그리고 있다. GDP에서 과학기술 연구비 비율은 세계 최정상급이고, 4차 산업혁명을 주요 정책으로 삼아 디지털 전환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적인 내용에 기뻐하기보다는 보고서에서 미처 자세히 다루지 못한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과의 짝짓기 작업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 혹여 그것은 디지털 산업을 위한 녹색포장(green washing)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정치권은 이중 전환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회 불평등 문제 해소에 얼마나 진정성 있는 정책적 관심을 보이고 있는가? 불평등 문제를 이중 전환의 부작용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일에 얼마나 가치를 두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관을 공유하고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공정, 평등, 정의, 자유와 같은 가치가 공유되기보다는 무한경쟁, 각자도생의 ‘오징어 게임’으로 몰리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그려 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발전’ 그 자체보다 ‘지속가능’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범순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인문사회·자연과학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