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지난해 11월 발간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교육의 미래 보고서)은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의 주도하에 전 세계 백만 명이 논의에 참여한 방대한 연구와 협의의 결과물이다. 국제미래교육위원회 위원으로서 지난 2년 여에 걸쳐 보고서 작성 과정에 참여한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안녕하세요. 먼저 2년에 걸쳐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방대한 보고서를 완성하신 소회와 더불어 위원회 참여 계기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2019년 5-6월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네스코로부터 국제미래교육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Futures of Education)의 위원으로 초빙한다는 연락을 받았지요. 이 활동은 상당히 뜻깊은 일이기에 저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유네스코는 지난 1972년에 처음으로 교육의 사회적 역할을 검토하며 교육자가 지녀야 할 구체적 지침을 마련한 『존재하기 위한 학습: 교육 세계의 오늘과 내일』(일명 포르 보고서)을 냈고, 그 후 두 번째로 1996년에는 『학습: 그 안에 담겨 있는 보물』(일명 들로르 보고서)을 펴냈습니다. 즉, 이번 보고서는 유네스코가 25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내놓는 세 번째 보고서인 셈이지요. 밝은 미래를 위해 요구되는 교육철학과 교육자의 사회적 소명을 새롭게 하는 작업입니다. 세계 각국의 18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 참여했지요. 위원이 각 나라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현직 대통령이신 샤흘레-워크 쥬드(Sahle-Work Zewde)와 라트비아 전 대통령께서도 위원으로 함께 활동했습니다. 두 분 다 여성인데, 특히 에티오피아 대통령께서는 한 나라의 원수로서 매우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을 맡아 모든 회의를 한 번도 빠짐없이 주관하셨어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확실한 신념이 있는 국가 지도자로 보여서 무척 부러웠습니다.
— 위원회 활동 기간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해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보고서를 준비하시면서 어렵거나 아쉬운 점은 없으셨는지요?
위원회의 첫 번째 전체회의가 열린 때가 2020년 1월 말이었습니다. 2박3일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회의실에서 회의가 열렸지요. 모든 위원들이 교육이 나아가야 할 미래 방향에 대해 발표했고, 그 자리에서 저는 지역적으로, 그리고 각기 처한 환경에 따라 교육에 대한 의견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어느 의견도 그릇된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의견들을 어떻게 모두 수용해 유용한 보고서를 만들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전히 전 세계 인구의 약 10% 정도는 비문해자고, 이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문해교육이 중요한 것은 자명합니다. 반면에 이런 문제는 우리의 경우에는 전혀 문제가 아니지요. 1월 말 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뒤 코로나19로 모든 여행이 어려워졌고, 그렇게 2년이 흘렀습니다. 원래 4차례 정도의 전체회의가 잡혀 있었지만, 당연히 그 후 회의는 모두 비대면 방식으로 총 10차례 정도 모였던 것 같습니다. 두세 시간 정도 영상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어서, 결국은 실무자들이 마련하는 보고서에 대해 짧은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에 그쳤던 것 같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 교육의 미래 보고서는 ‘미래교육의 청사진을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각 사회의 맥락에서 미래교육 담론을 촉진하는 마중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함’이라고 발간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육의 미래 보고서가 국제사회에 던지는 핵심 화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미래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각 사회마다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유네스코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담론 혹은 화두에 한정될 수밖에 없지요. 물론 파괴되고 있는 지구 생태계, 심화되고 있는 사회 불평등, 그리고 급속한 기술발전 등에 기인하는 공통의 문제는 있습니다. 이런 공통의 문제와 각 사회의 개별적 문제를 모두 고려하면서 2050년 이후의 밝은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이번 보고서가 이를 위한 구체적인 설계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설계도를 각 사회별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지침이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교육에서 ▲계속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중단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창조적으로 새롭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라는 보고서에 제시된 세가지 핵심 질문에 대해 이제 우리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교육의 미래 보고서를 활용하여 대한민국이 국제 교육계에서 새로운 교육 담론을 창출하고자 한다면 어떠한 이슈에 중점을 두어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 좋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며 세계는 엄청나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지구촌 모두가 서로 연결되는 디지털 세상이지요. ‘디지털 전환’은 곧 문명의 전환입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살아갈 디지털 세상은 지나간 산업시대와 완연히 다를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교육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합니다. 철기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석기 만드는 법을 계속 교육하고 있다면 이는 전혀 가치 없는 일이지요. 대한민국은 디지털문명 시대의 새로운 교육을 이끌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우리나라의 초·중등 공교육 혁신, 과열 입시경쟁의 완화 등을 위한 고등교육 혁신의 필요성을 오랫동안 강조해 오셨습니다. 교육의 미래 보고서 역시 교육권을 평생교육권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혁신을 위해 우선 추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2020년 기준으로 우리 청년층(만 25-3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70%로 OECD 여러 국가 중 1위입니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인 45%를 크게 앞서고 있지요. 대한민국은 이미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무대에서 크게 인정받고 있는 우리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대학 경쟁력은 칭찬보다 비판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아프지만 합당한 비판인데, 오늘의 대학 경쟁력이 미래의 국가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고등교육 혁신은 중차대한 이슈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첫 단계는 대학 운영에 자율권을 허락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처럼 모든 대학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고 규제하는 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교육의 미래 보고서는 교육분야 국제기구 및 단체, 학생 등 백만 명 이상의 전세계 시민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출간됐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방법과 형태로 의견을 전달했는지, 그리고 유례없는 다양한 방식의 참여가 이번 보고서 발간에 가지는 의미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유네스코학교의 학생, 교원, 학부모 28인이 설문조사 참여와 인터뷰의 형식으로 교육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보고서 초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여 유네스코에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 백만 명 이상의 시민이 2050년의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했으면 하는 것, 미래에는 사라지길 바라는 것 등을 함께 논의하며,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교육의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 자체가 이 보고서의 제목인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와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육의 미래 보고서가 강조하는 ‘공동재’의 개념, 즉 교육을 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실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 이번 보고서 내용 중 아쉽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문명 시대의 교육방법과 철학에 좀 더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에 의해 전통적인 대면교육이 차단되면서, 오히려 멀게만 느껴졌던 미래가 성큼 다가왔지요. 이미 지난 2년간 각급 학교의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과거와 같은 대면교육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위원회 활동 중 인도 및 파키스탄 학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아직도 대부분이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환경임을 토로했습니다. 각국마다 처한 교육 환경이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유네스코 차원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 끝으로 보고서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한국의 미래 교육에 대한 제언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는 어떠한 역할을 기대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번 보고서를 계기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대한민국의 교육의 미래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수행하면 좋겠습니다. 뜨거운 감자일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교육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인데, 눈앞의 이슈들에 치여서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이 된 것 같아 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야말로 2050년을 내다보면서 우리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도연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 위원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초대 위원장, 제7대 포항공과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_교육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