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유네스코 세계유산 해석 국제회의 발제자 윌리엄 로건 교수
윌리엄 로건(William Logan) 디킨대학교 명예교수가 ‘2019 유네스코 세계유산 해석 국제회의’ 발제자로 한국을 찾았다. 아시아 지역 유산 관련 전문가이자 문화유산의 보편적 의미와 해석 방법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뤄 온 로건 교수에게서 우리 시대에 유산이 갖는 의미에 대해 들어 보았다.
길지 않았던 이번 서울 방문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은 이번으로 벌써 일곱 번째 방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곳을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보아온 풍경은 늘 흠잡을 데 없이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건물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도시를 웅장한 산이 에워싼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감동적이지요. 이번 방한 일정도 마치 이 도시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일주일 같은 사흘이었다고 할까요. 물론 좋은 의미에서입니다.
유산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하셨습니다.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1970년대부터 유산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으니, 정말로 먼 길을 걸어왔다 하겠습니다(웃음). 그 안에서도 제 관심은 시간에 걸쳐 많이 변하고 또 넓어졌습니다. 안식년을 가졌던 1986년에 파리 세계유산센터 아태지역 담당부서에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동남아시아 지역의 도시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방글라데시, 라오스, 베트남, 중국, 파키스탄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활동했습니다. 최근 15년 동안은 유형의 유산이 지니는 무형적 가치에 주목한 여러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래서 ‘유산의 고고학적 가치에 초점을 두었던 전통적 시각에서 나아가 진화하는 유산의 개념을 짚어보고자 한다’는 이번 회의의 설명에 더욱 매료되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다루어 온 주제는 그 중에서도 유산과 인권의 관계입니다.
유산과 인권의 관계란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와 지역사회,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정의합니다. 이 과정에서 현장을 지키며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 온 유산은 사람들의 삶에 깊게 뿌리내려, 그들의 정체성 자체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산을 다루는 것은 곧 유산을 둘러싼 사람들의 정체성을 다루는 것과 다르지 않지요. 대단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산은 종종 국가 간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고 또 오용됩니다. 이러한 행위가 유산을 둘러싼 사람들의 인권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산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제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벌써 해 주셨습니다. ‘유산은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정체성’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유산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한 말이겠으나, 유산을 해석하는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이란 없습니다. 다만 유산을 해석하는 다양한 주체와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한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유산 해석의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유산 해석의 원칙’이라는 것이 특정한 방향성을 제시하여 도리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틀이 되지는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산의 해석은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을 짜겠다는 의도가 아니니까요. 유산 해석의 원칙이란 국가, 사회, 개인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토착민, 성소수자, 어린이의 관점까지도 배제하지 않는 가장 세심하고 보편적인 원칙을 말합니다. 유네스코 설립의 기저가 된 바로 그 원칙, ‘평화’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보편적 해석의 원칙을 구축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유네스코는 밖에서 볼 때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이지만, 사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무수한 국가가 뒤엉켜 있습니다. 단언컨대, 당장 이들 모두를 설득하여 세계유산협약 속에 ‘해석의 보편적 원칙’을 끼워넣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평화라는 목적 의식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작은 한 걸음이라도 변화로 나아가기 위한 모든 길목이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지역에도 유산을 두고 한국-일본-중국 간 긴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난 분쟁의 역사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 유산들을 바라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손다희 문화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