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타임머신 / 그땐 이런 일도] 한위 60년 뒤안길 들여다보기 I
올해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가 설립된 지 60돌을 맞는 해이다.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국민적 여망을 안고 탄생한 유네스코한위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교육·과학·문화 활동을 펼치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해왔다. |
대한민국은 1950년 6월 14일 유네스코 제5회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55번째 유네스코 가입국이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유엔 가입국가가 아니라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신청안은 먼저 상위기구인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를 통과해야 했다. 이때 한국의 가입 신청안을 제출한 나라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였다. 그후 우리나라와 호주의 인연은 한국전쟁 참전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가입안은 경제사회이사회의 심의와 유네스코 집행위원회의 토의를 거쳐 1950년 제5차 유네스코 총회에 인도네시아 및 요르단의 가입안과 함께 상정됐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이라크 필리핀 등은 한국을 포함한 3개국의 가입에 대해 지지선언을 했는데, 특히 당시 왕정국가이던 이라크 대표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이들 3개국이 유엔에 가입하지 못한 것은 특정 국가의 거부권 행사에 그 책임이 있으므로 유네스코는 그것에 구속받을 것이 아니라 이들의 가입을 꼭 승인해야 할 것이다.”
상정안건에 이슬람권 국가인 요르단과 인도네시아가 포함돼 있던 까닭도 있었지만, 이라크의 강력한 지지선언은 한국 등 3개국의 가입안이 표결을 거쳐 차례로 확정되는 데 일조했다. 당시 대한민국에 앞서 유네스코에 가입했던 아시아 국가는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중국 태국 필리핀 등이었다.
일본의 경우 이듬해에 뒤늦게 유네스코에 가입했으나, 실제 활동을 주도할 유네스코 국가위원회의 설립은 우리보다 앞섰다. 우리나라는 유네스코에 가입한지 채 2주도 안되어 6·25전쟁이 일어나 국가위원회의 탄생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 와중에 유네스코는 운크라(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와 함께 교과서 제작을 지원하는 등 긴급원조에 나섰다. 국민의 여망 속에서 마침내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설립된 것은 1954년 1월 30일, 유네스코 가입 후 3년 7개월여가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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