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햇살보다 더 뜨거웠던 유네스코키즈 여름캠프 현장 리포트
‘제2의 반기문을 키우자’는 모토로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키우기 위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가 시행하고 있는 ‘유네스코키즈 프로그램’의 1단계 국내활동인 ‘유네스코키즈 세계시민캠프’(여름캠프)가 지난 8월 9일부터 13일까지 4박 5일에 걸쳐 이천 유네스코평화센터에서 열렸다. 작년 88명의 어린이를 선발해 여름캠프를 가졌던 한위는 올해 그 대상을 확대해 100명을 선발했다. 며칠간의 캠프 생활로 무슨 변화가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겠지만, 그 짧은 기간에도 아이들 눈빛이 달라졌다. 한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4박5일의 이야기를 싣는다.
“중국 대표의 의견에 반박합니다. 중국 대표께서는 핵발전소를 사막 지역에 건설해 만약에 있을 사고에 있어서도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핵발전소의 경우 냉각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냉각수가 필요합니다. 사막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계획이신가요?”
“독일 대표께 질문이 있습니다. 독일은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고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럴 경우 추가로 발생할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독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비효율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한국대표께선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경제적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원자력 발전소 폐쇄와 안정화에 120조 원이 듭니다. 과연 원자력이 경제적인 방안일까요?”
제2회 유네스코키즈 세계시민캠프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열린 ‘모의유네스코총회’ 장면이다. 전문 외교관 같은 발언의 주인공들은 캠프 참가자로 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이었다. 참관인 석에 있던 민동석 한위 사무총장은 “실제 국제회의에서 일어나는 장면이다.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진지한 태도, 예의, 발언 내용과 순간적으로 반박하는 능력에 놀랐다”며 연이어 감탄사를 터뜨렸다.
세계 향한 꿈과 비전 갖는 계기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유일한 나라이다. 여기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처럼 국제기구에 진출하는 한국인이 늘어나며 국제사회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에 한위는 차세대들이 국제 평화와 발전을 이끌어갈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3년부터 ‘유네스코키즈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모의 유네스코 총회 장면은 이런 한위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해 1기를 배출하며 호평을 받았던 유네스코키즈 프로그램은 올해 2기를 맞으며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면서도 잠재력이 있는 어린이들의 참여 폭을 넓혀 교육 기회의 균등과 교육격차 해소에도 기여하고자 했다. 또 유네스코학교 소속 학생들의 비율도 높여 평소 유네스코 활동에 적극 참여한 어린이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했다.
서류전형으로 선발된 100명의 아이들은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발대식을 가진 후 가족과 헤어져 이천 유네스코 평화센터로 이동,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4박 5일 동안 아이들은 UN WFP(유엔세계식량계획) 임형준 한국사무소장의 ‘UN과 MDG(새천년개발목표)’, UNEP(유엔환경계획) 한국위원회 한지희 팀장의 ‘UNEP과 환경’, 국제매너아카데미 이문화경영전략연구소 김인석 소장의 ‘국제 매너’, 평화프로젝트 모모(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의 ‘평화’ 등의 학습활동을 가졌다. 여기에 사진으로 유네스코 정신을 표현해 보는 ‘유네스코 사진미션’, 경희대 환경동아리 Envis와 함께 한 ‘풍력 모형 자동차 만들기’, ‘기아차 소하리 공장 견학’ ‘세종대왕릉 답사’ 등의 체험활동을 수행했고, 틈틈이 ‘아이스 브레이킹’ ‘야외체육활동’ ‘캠프파이어’ 등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추억을 만드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모의총회 마친 아이들 자긍심 넘쳐
세계시민캠프의 하이라이트는 ‘모의유네스코총회’였다.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를 가지고 각 나라의 대표가 돼 실제 국제회의 방식으로 기조발언, 토론, 마무리발언까지 하는 경험을 가졌다. ‘모의’지만 ‘진짜’보다 더 리얼했다. 한위는 아이들에게 완벽한 경험을 주기 위해 23조에 이르는 ‘의사규칙’까지 마련했다. 활동을 위해 티셔츠 복장이던 멘토들도 이 시간 만큼은 정장 차림으로 국제회의 분위기를 만들었고, 평화센터 내 강당을 실제 국제회의장처럼 꾸몄다.
외적인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은 한위의 몫이지만 토론을 준비하는 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올해 의제는 ‘각국은 원자력 핵발전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와 ‘각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여야 하는가’ 두 가지였다. 제비뽑기로 찬성 혹은 반대하는 입장의 토론국을 뽑았다. 그 모둠(소모임)에 속한 조원들은 해당 나라의 대표가 돼 각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로 총회를 준비해야 했다. 3일에 걸쳐 자료를 조사하고 역할을 나누고 기조발언문을 적는 것 모두 아이들 스스로 했다. 아이들은 ‘소도서국 ‘투발루’가 온실가스에 의해 해수면 상승이 일어나 침몰 위기에 처하자 주권 포기 선언을 했다’는 내용까지 조사해 왔다.
모의총회는 8월 12일 오후 2시부터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입장하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비장미까지 느껴질 정도로 아이들은 모의총회에 몰입했고, 모의총회는 실제 유네스코총회처럼 치러졌다. 토의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몇몇 의전은 생략됐지만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 각 나라의 명패를 세우는 등의 관례는 유효했다.
자국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아이들은 연이어 명패를 세웠다. 긴장감에 떨리는 목소리도 들렸지만 대체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모의총회를 마친 아이들은 붉게 상기된 표정이었다. 준비한 걸 모두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도 남았지만, 마침내 해냈다는 자긍심에 눈빛이 반짝였다.
“제 꿈이 외교관이었는데 모의총회를 해보니까 그 꿈을 꼭 이뤄야 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자료 조사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상대 이야기를 반박할 수 있었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조수아 6학년)
“제가 정말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아직도 떨려요. 온실가스를 다뤘는데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되었구요. UN에서 일하며 그런 쪽을 다뤄보고 싶어요.”(이수진 6학년)
모의유네스코총회의 여운에 흥분해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민동석 한위 사무총장 입가에 ‘아빠 미소’가 그려진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게 느껴집니다.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캠프를 통해 아이들에게 세계를 향한 꿈과 비전을 심어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그 꿈을 이뤄가도록 더 열심히 돕겠습니다.”
한위는 여름캠프 우수 수료 학생 25명을 선발해 해외현장학습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들은 3개월간의 자기주도학습을 마친 후 내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유네스코, OECD 등 국제기구를 직접 방문하고 프랑스의 세계문화유산을 탐방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아이들이 또 얼마만큼 성장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