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가입 70주년을 맞는 해다. 유네스코의 도움과 함께 재도약을 시작했던 한국은 이제 유네스코의 도약을 이끄는 당당한 주요 회원국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네스코가 갖는 의미, 그리고 유네스코 내에서 한국이 갖는 의미를 되돌아볼 기회가 여러 차례 마련될 올해, 그 시작으로 독자들을 ‘유잘알’(유네스코 잘 아는 사람)로 만들어 줄 10가지 상식사전을 준비해 보았다.
#1
이상적인 평화를 향한 첫걸음
유네스코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연합국 측 교육장관들이 영국 런던에 모여 세계 평화 및 전후(戰後) 교육 재건을 위한 국제기구를 창설하기로 뜻을 모은 것을 시초로, 1945년 11월 16일에 창설됐다. 교육, 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촉진하고 세계 평화와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한다는 유네스코만의 사명은 그 유명한 「유네스코 헌장」의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이와 더불어 「유네스코 헌장」은 “정부의 정치적·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중략) 영속적이고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며,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명시하여 유네스코가 힘과 이해관계가 아닌 양심과 지식과 도덕성에 기반한 항구적인 평화 구축을 목표로 하는 조직임을 명확히 했다.
토막상식_유네스코의 뿌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이 만든 자문기구인 ‘국제지적협력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이 위원회에는 앙리 베르그송,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마리 퀴리 등 당대의 석학들이 참여했다.
#2
유네스코에만 있다 – 국가위원회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마찬가지로 각 유네스코 회원국들은 자국에 국가위원회 조직을 두고 있는데, 이는 유엔기구 중 유네스코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다. 유네스코는 유네스코 헌장 제7조에 근거하여 각 회원국이 국가위원회를 설치하고 단지 정부 기관의 대표뿐만 아니라 교육, 과학, 문화, 정보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지식인과 문화예술인까지 폭넓게 포함하여 유네스코 활동을 추진하도록 했다. 각 국가위원회는 자국내에서 유네스코 활동의 가시성을 높일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토막상식_유네스코는 현재 193개 회원국과 11개 준회원국이 가입해 있으며, 총 199개 국가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3
유네스코를 움직이는 머리와 몸통
뒤에 서술할 유네스코 총회(General Conference)와 집행이사회(Executive Board)가 유네스코의 ‘두뇌’에 해당한다면, 여기서 결정된 사항을 추진하고 관리하는 ‘몸통’은 프랑스 파리의 본부 및 전 세계 53개 지역사무소에 근무하는 700여 명의 스태프로 구성된 사무국(Secretariat)이다. 사무국은 유네스코의 최고 행정 책임자인 사무총장을 도와 기구의 관리를 맡고 재정을 집행한다. 사무국에는 행정 및 경영과 전략수립, 감사 등을 담당하는 조직 외에도 유네스코의 주요 사업부문별 담당국과 그 산하 기구들이 많이 있다. 특히 교육과 자연과학부문에는 회원국, 개발도상국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와 사업을 시행하는 기관인 ‘카테고리1 센터’(category 1 center)들이 있는데, 유네스코 국제교육국, 평생학습연구소, 국제이론물리센터 등이 그 대표적 예다. 유네스코 산하 조직은 아니지만 관련 사업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제공하고 회원국들의 역량 강화를 돕는 외부 기구인 ‘카테고리2 센터’도 있다.
토막상식_우리나라에는 교육(아태국제이해교육원), 문화(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 인문사회과학(국제무예센터), 자연과학(물 안보 국제연구교육센터), 정보커뮤니케이션(국제기록유산센터) 분야까지 유네스코의 모든 주요 분야의 카테고리2 센터가 있으며, 지난해 제40차 총회에서 글로벌 국제보호지역 연구훈련센터(자연과학)와 세계유산해석국제센터(문화)의 국내 설립도 추가로 승인되었다.
#4
1국 1표, 평등의 이상 구현하는 총회
2년마다 약 2주에 걸쳐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는 모든 정회원국 대표로 구성된 최고의결기구이자 유네스코의 가장 중요한 행사다. 총회에서는 유네스코의 주요 정책과 전략을 결정하고 사업 및 예산안, 관련 의제들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한편, 집행이사회 이사국과 사무총장을 선출한다. 비토권이 주어진 5개 상임이사국의 한 표가 여타 비상임이사국들의 한 표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갖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시스템과 달리, 유네스코는 총회에서나 집행이사회에서나 철저히 1국 1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과거 막대한 재정을 분담하면서도 ‘193분의 1표’만큼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미국 같은 나라에게는 불만사항일 수도 있지만,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조정이 아닌 인류의 지적 도덕적 연대를 지향하는’ 유네스코만의 이상을 구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의사 결정을 대개 전 회원국의 찬성을 의미하는 ‘컨센서스’(합의)로 처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도 유네스코 총회의 특징이다.
토막상식_총회에서의 국가별 자리배치도 지극히 평등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총회 시작 전 각국 대표들은 추첨을 통해 앞자리에 앉는 순서를 결정한다. 지난해 11월에 끝난 제40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맨 앞자리를 뽑은 국가는 세르비아였으며, 그 이후의 자리는 프랑스어로 쓰여진 알파벳 순으로 배정된다.
#5
유네스코의 분주한 리더, 집행이사회
1년에 두 차례 소집되는 집행이사회는 유네스코의 전반적인 사업 시행을 감독하고 주요 의제를 다듬으며 총회 인준 대상이 되는 사무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중요한 권한을 가진 조직으로, 총회에서 선출된 58개국 대표로 구성된다. 집행이사국은 ▲ 1그룹(서유럽, 북미) 9개국 ▲ 2그룹(동유럽) 7개국 ▲ 3그룹(중남미) 10개국 ▲ 4그룹(아시아, 태평양) 12개국 ▲ 5그룹(아프리카, 중동) 20개국 등 각 권역별로 숫자가 정해져 있다. 각국뿐만 아니라 6개 그룹별 관심사도 서로 상이한 만큼, 집행이사국들은 특히 균형있는 시각과 섬세한 협상 기술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는 1987년에 처음으로 집행이사국으로 선출된 이래 2003-2007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내내 집행이사국을 지속 수임하고 있으며, 지난 제40차 유네스코 총회에서도 4그룹 내에서 최다 득표로 당선돼 오는 2023년까지 그 역할을 계속하게 됐다. 한편, 2017년에는 한국의 이병현 주유네스코 대사가 최초로 집행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지난해까지 활동한 바 있다.
토막상식_원래 ‘세계 지성인의 모임’이라는 취지에 따라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의 이사 자격은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주어졌다가, 1991년 결의안에 따라 그 자격이 정부 대표 자격으로 변경되었다.
#6
공식언어와 소통
총회와 집행이사회 등 유네스코의 핵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자리에서는 유네스코의 6개 공식 언어인 아랍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가 사용된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회의장에 설치된 방음부스에서는 동시통역사들이 6개 언어를 동시통역해 전달하며, 그 전달 속도 역시 한 언어가 다른 언어를 앞서가지 않도록 관리한다. 마찬가지로 공식 문서들 역시 6개 언어로 동시에 기록 및 열람하도록 되어 있다.
토막상식_문화다양성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조직인만큼, 유네스코는 6개 공식언어 외에 전 세계의 공식언어와 사라져 가는 토착어의 보존 및 번역에도 관심이 많다. 유엔이 정한 ‘세계 토착어의 해’였던 2019년에는 유네스코 주도로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으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동화인 「어린 왕자」를 세계 여러 언어로 들어볼 수 있는 홈페이지(www.motherlang2019.or.kr)를 개설하기도 했다.
#7
예산 및 재정
유네스코 예산은 크게 정규예산과 비정규예산으로 나뉘며, 주요 사업비와 인건비, 시설비 등이 포함되는 정규예산은 회원국들이 내는 분담금으로 충당된다. 국민총소득 등의 지표를 고려해 산출되는 각 회원국별 예산 분담률은 유엔 총회에서 결정한다. 지난해 11월 열린 제40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이전 예산보다 약 3% 증액된 5억3460만 달러(약 6375억 원)를 2020-2022년 정규예산으로 승인했다. 한편, 2019년 기준 분담금 순위 상위 회원국은 중국(분담률 15.493%), 일본(11.052%), 독일(7.86%), 영국(5.894%), 프랑스(5.713%) 등이며, 대한민국은 2.926%의 분담률로 전체 회원국 중 10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다.
토막상식_유네스코는 늘 ‘돈 문제’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조직이기도 하다. 분담금에 비해 자국의 이익이 충분히 관철되지 못하다고 느낀 강대국이 분담금을 무기로 조직을 흔든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20% 이상의 분담금을 부담하던 미국은 1984년 유네스코 탈퇴 및 2003년 재가입에 이어 2011년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회원국 가입 승인에 대한 반발로 분담급 납입을 중단함으로써 조직의 위기를 불러온 바 있다. 이후 미국은 2017년 유네스코 탈퇴를 선언, 유네스코 회원국 자격을 상실했다.
#8
그 자체로 예술작품, 유네스코 본부 건물
설립 이후 유네스코는 파리 클레베르 가의 마제스틱 호텔을 임시 본부로 사용하다가 1958년 11월에 퐁트누아 광장에 현재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Y자 형의 건물로 ‘삼별’(three-pointed star)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본부 건물은 당대의 유명 건축가인 M. 브뢰어(미국), P.L. 네르비(이탈리아), B.제르퓌스(프랑스)가 공동으로 디자인했다. 이 건물은 근대 건축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 안에 소장된 방대한 양의 문화재와 예술작품들이 그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건축가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평화’의 가치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작품 전시를 염두에 두어 공간을 마련했고, 그 안에는 유네스코의 의뢰를 받은 피카소와 미로의 회화, 자코메티와 칼더의 조각을 비롯해 각 회원국들이 기증한 고고 문화재와 예술작품 등 600점이 넘는 콜렉션이 보관돼 있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 기증한 김기창, 강익중 화백 등의 그림 4점과 고려청자 1점도 있다.
토막상식_본관 건물 앞에는 193개의 회원국 국기를 올릴 수 있는 국기게양대가 있다. 총회 기간에는 모든 회원국들의 국기가 내걸리며, 이를 위해 4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동원돼 하루 반나절에 걸쳐 게양 작업을 한다.
#9
사무총장 및 선출과정
유네스코 사무국을 이끄는 수장이자 조직을 대표하는 얼굴인 사무총장은 집행이사회와 총회를 거쳐 선출된다. 원래 사무총장의 임기는 6년이었으나 2001년부터 4년으로 조정됐고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1960년대 이후 역대 사무총장들은 모두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사무총장 선출 과정은 일종의 간접선거 형태로 진행된다. 먼저 58개 집행이사회 회원국이 복수의 후보 중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비밀투표를 진행하고, 과반 득표자 1인을 단일 후보로 뽑아 유네스코 총회의 찬반투표를 거쳐 확정하는 방식이다. 만약 집행이사회에서 4차 투표까지 단독 과반 후보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4차 투표 상위 득표자 2인을 대상으로 마지막 5차 투표를 치른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의 오드리 아줄레 현 사무총장은 2017년 제39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11번째 유네스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토막상식_다른 여러 국제기구 수장 자리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사무총장 자리도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대륙별 안배’를 암묵적으로 신경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지난 2009년에 진행됐던 전임 사무총장 선출 때부터 아랍권 국가들은 아랍 출신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연거푸 마지막 2인을 대상으로 한 5차 투표의 관문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2017년의 선거에서도 아랍권의 후보는 4차 투표까지 줄곧 1위를 달렸으나, 4차 투표에서 동률 2위를 기록하고 이례적으로 추가 투표를 거쳐 최종 2인 자리에 오른 아줄레 후보에게 6차 투표에서 2표 차로 석패하기도 했다.
#10
유네스코와 한국
1950년 6월 14일, 한국전쟁 발발을 목전에 두고 대한민국은 유네스코에 가입했고,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1월 30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창립되었다. 유네스코는 전쟁으로 무너진 한국의 교육 재건을 위해 국정교과서 인쇄공장을 설립해 연간 3000만 부의 교과서 발행을 도왔고, 50-60년대에 교육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국제교류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내 유네스코 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국내외에 알리는 한편, 국제사회와의 교류도 꾸준히 추진해 온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성장 궤도에 올라선 1980년대부터 해외 활동에도 앞장서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은 유네스코 내에서 10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으며, 2019년 현재 한국이 진출해 있는 유네스코 기구도 집행이사국과 정부간해양학위원회(IOC), 정부간생명윤리위원회(IGBC) 등 8개에 이르고, 세종문해상과 직지상 등 한국이 지원하는 유네스코 국제상도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