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왠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듯하고, 그 뜻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글쎄. 과연 ‘문화다양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다시 한번 골똘히 생각해 본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이도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문화다양성을 논의할 때 국가의 경계에 따라 나뉘는 서로 다른 커다란 ‘문화’를 전제하고, 그 다름을 부각하거나 인지·포용하는 형태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흔히 이야기하는 ‘좁은 의미’의 문화가 아직도 논의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해외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정착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정책이 여전히 논의의 주를 이룬다.
하지만 변화도 없지는 않다. 종교, 성적 지향, 장애 여부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마주하는 우리 안의 다양성을 들여다보고, 무지에 근거한 갈등을 평화롭게 풀어 보려는 노력들이 사회 전반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바로 유네스코가 이해하는 문화 개념과 맞닿아 있다.
유네스코는 문화를 ‘한 사회와 집단의 성격을 나타내는 정신적, 물질적, 지적, 감성적 특성의 총체’로 정의한다.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은 단순히 ‘좋은 일’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지키는 데 필수적인 일이라고 해석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다양성 선언(2001)과 문화다양성협약(2005)에 이러한 시각이 잘 반영되어 있다.
지난 4월 1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열린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 국제 포럼’에서도 권리로서의, 또한 실천으로서의 문화다양성이 논의되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와 함께 개최한 이번 포럼은 문화다양성의 개념과 해석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기획되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지난해 유네스코가 전 세계 문화다양성협약 이행 현황을 분석하여 발간한 보고서『문화다양성협약 글로벌 리포트』의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이 보고서의 집필에 참여한 저자 2인이 직접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발제했다. 보고서 제4장 ‘시민사회의 문화거버넌스 참여’를 집필한 앤드류 퍼민(Andrew Firmin) 세계시민단체연합(CIVICUS) 『시민사회 현황 보고서』 편집장은 “문화다양성협약의 효과적 이행을 위해서는 문화 관련 정책 수립 및 논의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참여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민사회가 투명성과 책임성, 민주성을 담보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앤드류 퍼민 편집장은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문화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불투명하고 시민사회의 참여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는 한편, 시민사회의 실질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입법 환경을 만들고 시민사회의 역량 개발을 위해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 제10장 ‘상상하고 창작할 자유의 증진’을 집필한 사라 와이어트(Sara Whyatt) 전 국제펜클럽(Pen International) 부국장은 “예술적 표현의 자유란 검열이나 협박을 받지 않고 창작할 권리, 예술작품에 대해 정당한 지원과 보상을 받을 권리, 이동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보호받을 권리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여전히 예술가들의 예술적 자유에 대한 공격이 자행되고 있으며, 이때 국가안보, 명예훼손, 종교 등 ‘전통적 가치’를 다루는 법이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UN을 비롯해 예술적 자유를 옹호하는 단체들의 수와 역량이 증가하면서 위험에 처한 예술가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도시가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적지 않다”며 희망적인 부분을 소개하기도 했다.
두 번째 세션은 한국적 맥락에서 문화다양성을 다루었다. 기조발제자로 나선 한경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한국에서 문화다양성은 전투에서는 승리하면서 전쟁에서는 지고 있다”며, 문화다양성 분야에서 한국 사회가 이뤄낸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여전히 단순히 산업으로 간주되고, 문화계 내 부패가 적지 않으며, ‘블랙리스트 사태’ 등 구시대적 검열이 남아있는 등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경구 교수는 또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주로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들’ 간의 다양성이 논의되지만, 실은 문화의 내적 다양성 또한 그 못지 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보호해야 할 대상은 현존하고 있는 문화의 원형 그대로가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임을 강조했다. 결론적으로는 선언, 협약, 법률 등이 있다고 자동적으로 문화다양성이 보호되고 증진되는 것이 아니므로, 결국 ‘사람을 통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이번 포럼을 진행하고 참여하면서, 문화다양성은 단순히 ‘멋있는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이며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개인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있는 다양성을 어떻게 제대로 누리고, 또 나눌 것인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송지은 문화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