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유네스코 거버넌스
전례없는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유네스코의 사업뿐만 아니라 조직의 사업·예산을 결정하는 주요 회의들도 일대 변화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거버넌스의 중요한 축인 집행이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209차 집행이사회를 앞두고 진행된 유네스코의 다양한 시도들을 전합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유네스코는 지난 3월 초부터 대부분의 회의를 취소하거나 연기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총회와 집행이사회, 그리고 사무국이 조직을 운영하고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있는데, 193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58개 이사국으로 구성된 집행이사회 회의는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일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난 3월 말, 제209차 집행이사회를 4주 앞두고 예정돼 있던 준비회의가 당일날 전격 취소되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가 이렇게 유럽까지 휩쓸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제는 가장 어려운 시기는 지나간 듯 보입니다. 프랑스는 6월 2일자로 제한조치를 한 단계 완화해 일부 카페와 음식점이 영업을 재개했으며, 학교도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7월 1일부터는 유럽연합 외 국가와의 하늘길도 열린다고 합니다. 여기에 맞춰 유네스코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 우선순위는 조직의 주요 예산과 사업을 결정하는 집행이사회를 재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집행이사회 개최를 두고 가장 먼저 논의된 것은 화상회의 개최 여부였습니다. 화상회의를 통해서는 통역, 발언, 투표와 같은 집행이사회의 주요 의사규칙(rules of procedure)을 모두 지키기가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의사규칙을 변형적으로 적용하거나 한시적으로 그 적용을 중단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집행이사회 의장단은 이 문제를 포함하여 유네스코의 코로나19 대응과 관련된 활동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화상회의를 6월 8-9일 개최하기로 하고, 사전 의견 조율을 위해 모로코와 스위스 대사를 조정 역할(facilitator)로 임명했습니다. 화상회의에서는 실질적인 토의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준비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집행이사국 간 열띤 논의가 열흘 동안 메일로 오고 갔으나 화상회의의 의사규칙에 대한 컨센서스(합의)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특별회의는 사전 합의 없이 시작됐고, 유일하게 지역 내 합의를 도출하여 의견을 제출한 아프리카 그룹의 수정안을 두고 협의하는 방법도 제안되었으나, 어느 것을 공식적인 안으로 인정하고 논의를 진행할지부터 이사국 간 이견이 계속되었습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더 보낸 끝에야 작업반(워킹그룹)을 구성하여 화상회의 작업방식에 대한 세부적 사안을 더 논의하자는 데에 비로소 모두가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각 지역그룹별로 4개 이사국으로 구성되는 작업반에는 한국도 참여하게 되었고, 그 논의 결과는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정식으로 개최되는 제209차 집행이사회에 보고될 예정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특별 화상회의이다 보니 기술적인 오류도 계속 발생했습니다. 발언권 신청과 부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불안정한 인터넷 연결은 대표단이 적절한 순간에 자국의 의견을 밝히는 것을 방해하곤 했습니다. 몇차례 발언 요청에 실패한 한 대사가 채팅창에 올린 ‘PLEASE GIVE ME THE FLOOR!(내게 발언 기회를 주세요!)’라는 메시지에서는 절규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상호 존중과 이해, 그리고 건설적인 대화가 물리적인 접촉을 통한 유대감에 상당히 의지하고 있었음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제209차 집행이사회는 현재 유네스코 본부에서 대면회의로 진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주재국 방역 규정에 따라 1,300여석 규모의 가장 큰 회의실에서 대표단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개최될 것으로 보입니다. 본국 대표단의 참가는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또 일부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19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 불확실성에 확실히 대비하는 것이 지금 유네스코의 거버넌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겠지요. 다음 달 주재관 서신에서는 집행이사회가 성공적으로 잘 개최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모두들 안전하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김지현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