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정책토론회 논점 ‘지상중계’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가 문화재청·여성가족부와 함께 지난 7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이를 우리만의 슬픈 역사가 아니라 세계가 기억하고 경계해야 할 아픈 기록, 즉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살아 숨쉬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위안부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선 과연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주요 논점별로 토론회 내용을 지상에 옮겨본다. |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에 오를 만한가?
“필자는 위안부 관련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의 등재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의문이 없다. 일제 점령기의 아픈 기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며, 나아가서는 문명사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의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고립적인 사안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오점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성이 침해된 경험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심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항목인) ‘세계적인 중요성’(World Significance)을 충족할 수 있는 기록물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서경호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전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 ‘주제발표’ 중 에서)
위안부 기록물에 어떤 내용들이 담기나?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크게 △범죄행위 △피해사실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나눌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범죄행위’에 대한 기록물로는 위안소 제도 및 위안소 설치-운영에 관한 일본군 문서, 위안부 모집-이송-관리에 대한 일본군, 총독부 등의 문서 및 전범재판 자료, 연합국 포로 심문 자료 등을 들 수 있다. ‘피해 사실’ 기록물로는 위안부 피해 실태를 보여주는 일본군 문서 및 전범재판 자료, 일본 정부 상대 소송 자료, 피해자 증언, 가해자 증언·기록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는 피해’를 담은 피해자 증언, 소송 자료 등도 포함된다.
‘해결을 위한 노력’에 해당하는 기록물은 보다 광범위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상조사 자료와 담화, 사죄·보상에 대한 총리의 편지, 아시아여성기금 자료, 일본 사법부의 소송 판결, 그리고 한국 정부의 진상조사 자료, 피해자 지원 자료, 한일협정 문서 등 외교적 노력이 담긴 자료도 주요한 기록물 중 하나다.
피해여성들의 피해 극복을 위한 심리치료 자료, 공동생활(나눔의 집) 자료와 함께 증언, 소송 자료, 집회 등 각종 행사 참여 기록 등 ‘피해자에서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기록물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수요집회, 나비기금, 기념관 건립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과 유엔기구 보고서/권고안, 각국 의회 결의안 등 국제사회의 노력이 담긴 자료도 귀중한 기록물이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주제발표’ 중에서)
위안부 기록물이 지니는 세계사적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피해자들이 남긴 기록은 자신이 겪은 피해사실에 대한 고발이자 빼앗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특히, 증언에는 공문서에 남겨져 있지 않은 ‘위안부’ 피해실태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외부와 소통을 통해 자신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이 받았던 피해를 개인의 숙명에서 보편적인 여성인권의 문제로 인식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위안부 기록물은) 구체적인 피해실태 고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이 종합적으로 구성돼 있어 기록으로서의 완결성이 높다. 또한 피해자 문제에 공감하는 지원단체의 활동도 기록돼 있어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개인을 넘는 공동체라는 틀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이 완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였던 일본 측의 기록이 확보되어야 한다.”
(남상구 연구위원 ‘주제발표’ 중에서)
지난 6월 중국이 자국의 위안부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신청했는데.
“피해자의 범위는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 이르고 있다. 중국에서도 자국의 ‘위안부’ 피해문제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유네스코에 신청했으나, 이것이 결코 본 기록유산의 의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안부’ 피해의 전체상을 밝혀주고, 여성인권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남상구 연구위원 ‘주제발표’ 중에서)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려되는 점이나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일이 한국 정부의 사업으로 제기되어서는 곤란하다. 유관단체와 시민사회가 추진위원회의 중심에 서고 유관 정부기구나 지자체가 이를 지원·협력하는 방식, 즉 민관합동이 될 것이나 시민적 가치가 전면에 나서는 모양이 좋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대표 단체들과 관련자들이 일차적으로 논의와 실천의 주체로 나서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또한 위안부 기록물 1차 자료의 경우 대다수가 해외, 특히 일본 정부 소장 문서이다. 이 부분을 보완하는 문제, 그리고 국내외 소장자(소장기관)들이 자료의 공개를 꺼리는 분위기에서 동의를 구하는 문제도 현안이 될 것이다. 해외 네트워크 구축과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내 시민단체와 민간 소장자, 일본 못지않은 자료 소장국인 중국의 당안관(기록보관소)과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미얀마 인도 티모르 차모르 네덜란드 등 피해자 국가의 소장 자료와 미국 등 연합국 문서를 확보하고 공개에 대한 동의를 얻는 과정도 필요하다.”
(박한용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토론발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