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와 오픈사이언스
최근 과학계를 중심으로 코로나19 관련 연구 정보와 데이터를 공개·공유하여 팬데믹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기존에는 일부 연구자들이나 비용을 지불한 사람만 접근할 수 있었던 정보와 데이터가 폭넓게 공개되고, 이를 바탕으로 전 지구적 문제를 타개해 나가려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이처럼 개방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오픈사이언스’의 열매가 지구촌 전체에 널리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보고, 전문가들과의 협의 하에 필요한 권고 사항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과학계에 부는 소통과 협력의 바람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인류는 다양한 분야에서 유례없는 협력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과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기존에는 높은 구독료를 지불해야 볼 수 있던 유수의 학술논문이 무료로 공개되고, 논문 심사 이전의 초고들이 공개·회람되는 사례도 급증했다. 논문뿐만 아니라 연구를 위한 자료와 데이터, 데이터 분석을 위한 소스코드까지 온라인상으로 공개·공유하여 코로나19 관련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민관협력 프로젝트, 크라우드소싱 프로젝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는 모두 기존 자원과 정보, 인력의 한계로 해결하지 못하는 전 지구적 문제를 타개하기 위하여 시도되는 새로운 개방과 협력의 단면이다.
일찌기 오픈사이언스(open science)는 과학자들이 연구결과를 공개, 상호 검증하면서 집단적으로 보편 지식을 생산해 나가는 근대 과학의 규범을 의미했다. 최근의 오픈사이언스는 여기에 더해 디지털 기술로 연구의 성과와 과정을 보다 폭넓고 개방적으로 공개·공유하려는 지향과 실천까지 포함한다. 논문 등의 출판물을 공개하는 ‘오픈액세스’뿐만 아니라, 연구 데이터를 공개·공유하는 ‘오픈데이터’, 그리고 크라우드펀딩, 크라우드소싱, 오픈랩, 오픈 하드웨어, 오픈소스, 개방형 평가 등과 같이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개방형 연구협력’(open collaboration)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또한 오픈사이언스는 연구실 중심의 연구 과정을 시공간적으로 확장시켜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한편, 연구의 성과가 연구자 이외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개방되도록 하여 과학계와 사회 간 상호 소통·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모두를 돕는 과학을 위해
이처럼 오픈사이언스는 21세기를 맞이하며 ‘연구자들의 규범’에서 ‘과학계가 사회와 맺는 계약’으로 변모하고 있다. 지식 경제, 디지털 사회로 이행하면서 과학에 대한 수요가 전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특히 공공펀딩으로 수행한 연구의 성과를 사회적으로 폭넓게 개방·활용하여 공중의 편익을 높이려는 정책도 많아지는 추세다. 유네스코를 비롯해 세계은행, 게이츠재단, 웰컴트러스트 등 다수의 국제기구 및 공공조직도 오픈액세스정책을 도입했고, 유럽연합 역시 주요한 연구지원 프로그램인 ‘Horizon 2020’의 대 원칙으로 오픈사이언스를 제안한 바 있다.
물론 오픈액세스를 넘어 오픈데이터와 개방형 연구협력 단계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 공개 데이터의 품질이나 표준, 시스템 호환의 문제, 기존 지식재산제도와의 충돌과 갈등, 사이버 보안이나 프라이버시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전 세계가 단기간에 해결해야 할 과제 앞에서 오픈사이언스는 우리의 선택지를 넓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 1월, 주요국의 공공연구 펀딩기관과 학회, 출판사, 연구기관들은 공중 보건 위기 시 문제 해결을 위해 데이터 공유에 동참할 것을 재확인했고, 이렇게 국가와 조직을 넘어 체결된 데이터 공유 선언은 올 초부터 관련 논문 및 데이터가 발빠르게 공개·활용될 수 있는 초석이 됐다. 3월 13일에는 한국을 포함한 12개국 과학기술계 수장들이 코로나19 관련 논문·데이터의 공개에 관한 적극적 협력을 약속한 데 이어, 3월 30일에는 유네스코 주관으로 전 세계 122개국의 관계자 210여 명이 참석한 과학기술장관 화상회의가 개최됐다.
이러한 일련의 회의들을 통해 세계 과학계는 오픈사이언스를 통해 기여할 수 있는 코로나19 대응책을 상호 확인하는 한편, 글로벌 과학협력의 규범을 구체화하는 유례없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오픈사이언스를 통해 마련된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전 세계가 두루 누리기 위해 필요한 과학계의 실천 강령은 무엇일까? 2021년을 목표로 유네스코가 마련하고 있는 ‘오픈사이언스 권고’를 통해 이에 대한 해법을 함께 찾아가기를 기대한다.
신은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제도혁신연구단장
[참고자료]
· 신은정 외 『오픈사이언스정책의 도입 및 추진방안』(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7), 『오픈사이언스를 통한 공공연구 효과성 제고 방안』(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8)
· Merton, R. K. 『The Sociology of Science』(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2)
· UNESCO 『Toward a UNESCO Recommendation on Open Science: Building a Global Consensus on Open Science』(2019)
· unesco.org “Virtual Ministerial Dialogue on COVID-19, Open Science and International Scientific Collaboration”
· wellcome.ac.uk “Sharing research data and findings relevant to the novel coronavirus(COVID-19) outbre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