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네스코 재가입 위한 특별총회 소집
미국은 유네스코의 가장 든든한 회원국이었지만, 동시에 여러 사안에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2018년 유네스코를 탈퇴한 미국의 재가입을 위해 유네스코 본부와 회원국들은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는데요. 그 결실이 마침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6월 9일 금요일 퇴근시간. 주말을 앞두고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심상치 않은 내용의 초청 메일에 눈길이 갔습니다. 돌아오는 월요일 오전에 유네스코 본부에서 오드레 아줄레 사무총장이 직접 ‘긴급 전략 정보’를 공유하는 회의를 개최하겠다는 안내였는데요. 근무일 기준으로 바로 전날 공지하는 회의는 흔치 않은 터라 무척 의아했습니다.
다만 이 날은 제가 담당하는 MAB-ICC(인간과생물권프로그램 국제조정이사회) 회의가 열리는 날이기도 해서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MAB 회의 담당자들이 쉬는 시간까지 바꾸면서 이 전략정보회의 참석을 유도(?)했습니다. 중요한 회의에 청중이 많을수록 좋다는 의미였을까요? 현장에 가 보니 평소 유네스코 회의에서는 자주 볼 수 없었던 카메라맨들도 여럿 보였습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아줄레 사무총장은 미국 국무부 차관 명의의 서한을 대독하며 2018년 유네스코를 탈퇴한 미국의 유네스코 재가입 결정과 향후 절차를 설명했습니다. 미국이 유네스코 창립을 주도한 회원국으로서 그동안 유네스코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음을 상기하며, 최근 인류의 새로운 도전과제 앞에서 더욱 커진 유네스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관심사였던 유네스코 복귀와 관련해서, 미국은 7월에 복귀 의향서를 제출하는 계획을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조건도 있습니다.
먼저 미국이 밝힌 분담금 납부 계획입니다. 복귀 의향서를 제출하는 시점부터 금년 말까지의 분담금을 우선 납부하고, 미 의회 승인을 조건으로 ▲홀로코스트 교육 ▲언론인 안전 ▲우크라이나 문화유산 보호 ▲아프리카 과학기술수학교육(STEM) 증진을 위한 천만 달러의 자발적 지원금을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미국은 탈퇴 이전인 2011년부터 7년여간 약 6억 1000만 달러의 분담금을 미납한 상태인데, 이는 올해부터 매년 약 1억 5천만 달러씩, 4년여에 걸쳐 분할 상환을 할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미국의 체납 및 탈퇴로 인한 만성적인 예산 부족과 최근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네스코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입니다.
미국의 요청사항도 있습니다. 원래 2년 이상 분담금을 체납한 회원국의 경우 유네스코 규정에 따라 총회 투표권 및 집행이사회 진출권이 제한되는데, 미국은 회원국으로서의 주요 권리를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특별총회를 열어 이 문제를 사전에 해결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줄레 사무총장은 미국의 재가입 결정은 다자주의와 유네스코 활동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이루어졌으며, 앞으로 유네스코 사업뿐만 아니라 전체 회원국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발언이 끝나자마자 터진 박수 소리는 사무총장이 연단에서 무대 위 자리로 이동 후에도 한동안 그치지 않았습니다. 회원국들의 안도와 기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회원국들의 발언도 이어졌습니다. 첫 발언자로 나선 오이케 주유네스코일본대사는 사무국의 노력을 치하하면서, 회원국들이 6월 말 유네스코 특별총회 개최를 위한 연명 서한에 수요일 오전까지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미국의 투표권 회복 안건을 논의할 작업반 그룹 결성도 제안했습니다. 이후 한국을 포함한 40여 개국은 대부분 미국의 복귀를 환영하면서 일본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월요일 오후부터 시작된 특별총회 개최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하루만에 정족수인 65개국이 개최 동의 의사를 밝혔고, 기한 내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저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작업반 그룹 회의도 같은 주 금요일에 개최됐습니다. 75년 유네스코의 역사에서 이번이 불과 다섯 번째인 특별총회 일자는 6월 29일과 30일입니다. 이변이 없는 한 7월 중으로 미국은 다시 유네스코의 회원국이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 유네스코 본부에서도 상황이 무척 긴박하게 진행됐다고 합니다. 주유네스코대표부가 이메일을 받은 금요일은 아줄레 사무총장이 해외 출장을 마치고 막 돌아온 날이었다고 하니, 그때부터 월요일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직원들이 얼마나 바빴을지 짐작이 갑니다. 정작 유네스코 본부 직원들은 회의 안내를 당일날 받았다고도 합니다. 현장에 있던 저는 몰랐지만 온라인 중계에서는 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사무총장의 프랑스어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직원도 다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사항에 불만을 갖는 직원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재가입이 유네스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기를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홍보강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