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유산 교육용 책 『유네스코 유산, 평화를 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 등은 큰 대중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때로 갈등과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일선 학교 교사 및 유산 전문가들과 함께 유네스코 등재유산에 대한 자민족·자국가 중심의 해석과 실천을 넘어 학교 현장에서 유산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알릴 수 있는 책인 『유네스코 유산, 평화를 품다』를 펴냈다.
고정관념을 깨며 확장하는 유산교육
“유산은 한 나라, 한 민족만의 것인가요?”
“문화는 한 나라가 하나씩만 가지나요? 여러 나라와 민족이 문화를 공유할 수도 있나요?”
“유산이 우리를 지켜주기도 할까요? 아니면 유산은 우리 보호를 받는 대상일 뿐일까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기획하고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유네스코 유산, 평화를 품다』를 만든 10명의 집필진은 이런 ‘고정관념 깨는 질문’에서부터 내용을 구성해 나갔다. 이번 책은 유네스코 등재유산을 한국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처음으로 기획한 지도서로, 우리는 무엇보다 단순히 ‘유산은 이런 것’이라는 파편적 지식 전달 교육을 넘어서고자 했다.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비판적 사고역량과 능동적 시민의식을 키우기 위한 ‘고정관념 깨는 질문’ 던지기다. 책 맨 앞에 총 14가지의 ‘고정관념 깨는 질문’을 제시하고, 그 질문들이 이 책의 주요 내용(총 8가지 주제의 활동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었다.
책 뒷부분에는 본문과 연결되는 ‘더 읽을거리’를 넣어 질문을 깊게 파고들도록 해 준다. 예를 들어 “유산은 한 나라, 한 민족만의 것인가요?”라는 질문은 본문의 5번(김치와 문화 포용성), 6번(여러 나라의 단오 문화), 7번(유산 공동등재 해보기) 활동지와 연결되고, 이는 ‘더 읽을거리’ 에 있는 “국가와 국민과 민족: 복잡한 관계”, “‘나와 우리 나라’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다양한 가치의 존중으로”, “유산의 ‘기원’보다 공동체가 부여하는 ‘가치’가 더 중요합니다” 와도 연결된다. 이렇게 서로 연결되는 풍부한 내용을 통해 유산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과 현실적 갈등을 이해하고 스스로 독자적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국민국가 중심 인식을 넘어서는 보편성 지향하기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그동안 제공하던 유산교육 교재는 약 20년 전의 유네스코 본부 교재를 번역한 것이었다. 그 사이 현실적 상황뿐 아니라 유산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고, 변화를 반영한 교재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이번 책이 기획되었다. 특히 한중일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 유산을 둘러싼 갈등과 오해가 종종 생기는 현실에서 단순한 ‘보존’의 대상으로, 그리고 각 나라의 배타적 소유물로 유산을 바라보는 인식을 극복하고 ‘우리 모두의 유산을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관점을 키우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책은 ‘나와 우리 지역에 소중한 유산’을 함께 토론하며 선정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학생과 시민들이 자기 주변에서부터 유산에 대한 애정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국민국가 중심의 인식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며, 유산에 대한 최근의 이론적 경향, 유네스코의 관점 변화,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담아냄으로써 시대적 변화를 반영했다.
천천히 함께 만들어갈 변화
책의 첫 번째 주제 활동지 ‘울룰루-카타추타 국립공원’은 평화와 문화다양성, 지속가능성 등 우리 책이 다루는 유산의 가치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 외에도 여러 주제의 활동지와 ‘더 읽을거리’를 통해 독자는 아름답고 위대한 것만이 아니라 불편한 것도 유산이 될 수 있음을 보게 되고,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 토론과정에서 함께 평화를 만들어나가기도 함을 알게 된다. 여러 나라의 단오 문화를 알아보며 공동의 단오 축제를 상상하고, 전 세계에 열려있는 김치공동체에 대해 배우며 문화는 특정 국가가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유산의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우리가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 유산은 보호의 대상일 뿐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기도 한다는 사실, 그리고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누구든지 교양 도서로 읽을 수 있지만, 이 책을 주로 활용할 교육 현장에서는 순서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주제를 선택해 가르치며 역사탐방이나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학생들은 나만의 ‘팔라우 서약’을 만들기도 하고, 디지털 유산관광을 체험해보기도 하며, 공동등재 큐레이터가 되어볼 수도 있다.
평화, 문화다양성,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어떤 이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기존의 관념을 뒤집으며, 바로 그 익숙함과 ‘진부함’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찾으며 세계관을 바꿔나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출간은 시민과 함께 만드는 유산교육의 새로운 출발이다. 여러 집단이나 국가 간 갈등이 심화되는 현 시점은 어느 때보다 민간의 만남이 절실한 상황이다. 유산 교육을 통해 세계관을 바꾸며 여러 나라 시민이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천천히 함께 그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이 책이 기여하기를 우리 집필진은 간절히 희망한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 중어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