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을 겪고 있는 예멘에서 온 500여명이 제주에서 난민 신청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난민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불법체류자들과는 달리, 자국 정부로부터 정치적 혹은 종교적 탄압을 받아 쫓겨나거나 탈출해 세계를 떠도는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전쟁과 종교, 정치적 갈등 등으로 본국을 떠나 세계를 떠도는 난민 수가 전 세계적으로 685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 난민이 5천만 명이었다고 하니, 지금 전 세계의 난민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된다. 이러한 난민 숫자의 3분의 2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남수단과 소말리아 등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포용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지난날 세계의 원조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어려운 난민들을 돕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이는 것이 그간 받았던 도움을 세계에 되돌려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것처럼, 난민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이들 역시 역사와 문화, 감정과 희망을 가진 ‘위험에 처한 사람’이다. 따라서 난민을 위협적인 존재로만 여기는 대신, 우리 사회를 더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경험과 가치를 지닌 이웃으로 평가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난민 수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면서 그간 인도적 관점에서 난민을 받아들였던 나라에서도 난민에 대한 적대적 정서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60만 명 넘는 난민을 수용했던 이탈리아도 최근에는 난민 구조선의 입항을 막고 있다. 대다수 난민들은 독재정권이나 테러 조직이 세운 ‘이슬람 국가’(IS)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의 탄압과 폭력을 피해 자국을 떠나왔지만, 이들이 도착한 곳에서 환영은 커녕 적절한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막연한 편견,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태도, 테러리스트의 위장잠입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심 등, 난민을 향한 시민들의 다양한 적대적 태도가 어디에서도 그들을 환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6월 20일, 난민네트워크가 주최하고 난민인권센터가 주관해 청와대 앞에서 열린 ‘세계 난민의 날’ 기자회견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난민의 권리 보호는 정부가 약속한 국제법상의 의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내 거주 난민을 외면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은 1994년 난민제도 시행 이래 유엔난민협약 가입 25주년, 난민법 시행 5주년을 맞은 나라임에도 난민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아직 미숙하다. 법무부는 ‘무사증 입국 허가국’에서 예멘을 제외해 예멘난민의 추가 수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여기서 더 나아가 “관련 심사를 더욱 엄정하게 하는 한편, 허위난민 신청 알선 브로커 단속 활동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제적 이주와 체류 연장의 방편으로 난민제도를 이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난민 보호를 위한 제대로 된 고민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을 뿐더러, 예멘 난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 여기에 시민들 역시 아직 난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들과 소통한 경험이 부족해, 난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난민과 관련한 이슈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우리도 난민에 대한 정책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그들을 인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시민의식을 갖고 그들을 대면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사회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미래전략대학원장
물리학자이자 뇌과학자인 정재승 교수는 <과학콘서트>, <크로스>, <시네마 사이언스> 등 쉽고 재미있는 과학 저서를 통해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과학 저술가이자 강연자로 평가받는다. 과학뿐만 아니라 예술, 인문학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통섭형 인간’으로 꼽히는 정 교수는 현재 카이스트에서 물리학 이론을 통해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