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4·19혁명기록물
「4·19혁명기록물」이 지난 5월 19일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속에서 마침내 꽃을 피운 한국 민주주의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이 기록물들의 의미와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이야기해 본다.
이번에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된 「4·19혁명기록물」은 1960년 4월 19일 한국에서 학생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시민혁명과 관련된 자료를 말한다. 여기에는 1960년 2월 28일에 일어난 대구 학생시위부터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원인과 전개 과정이 담긴 기록물, 그리고 혁명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 등 일체의 기록물이 포함돼 있다. 「4·19혁명기록물」은 문헌, 녹음·영상, 구술, 사진, 수기 및 편지, 일기, 박물, 신문, 정부공문서, 유인물·선언문·성명서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4·19혁명의 숱한 현장 사진기록과 수기들은 지금도 우리가 왜 민주주의를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깨우쳐주는 소중한 자료다.
‘사단법인 4·19혁명UN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2013년 4월 419명의 발기인으로 준비위를 구성해 전국적으로 기록물을 발굴·수집했고, 이를 정리해 201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결정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유네스코가 제도 개선을 위해 2017년부터 4년 동안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중단하는 바람에 2021년 11월 30일에 이르러서야 등재신청서를 제출했고, 마침내 그 결실을 맺음으로써 이들 기록물에 대한 시민적·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의 토대를 마련했다.
4·19혁명은 우리나라가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15년이자 6·25 전쟁 종료 이후 7년 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났다. 아시아 최빈국이며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그것도 아래로부터 일어나 성공한 혁명이었다. 1952년 『더 타임스』에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발언이 실릴 정도로 당시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차가웠지만, 4·19혁명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시각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무고한 학생과 시민 186명이 사망했고 6026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고등학생부터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워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4·19혁명은 전후 제3세계에서 일어난 최초의 ‘성공한’, ‘비폭력’ 시민혁명인 동시에, 유럽의 68혁명과 미국의 반전운동, 일본의 안보투쟁(전공투) 등 1960년대를 휩쓴 세계적인 학생저항운동 중에서도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선진국의 민주주의는 부르주아나 노동자 등 계급세력이 이끌었다면 제3세계 국가에서는 학생이나 지식인 그룹이 주로 민주화를 이끌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4·19혁명 기록물 중 특히 학생들이 남긴 자료에서 그 이해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4·19혁명은 헌팅턴이 말하는 ‘민주화의 제2차 반전’ 시기에 도저히 민주주의가 가능하리라고 생각조차 되지 않았던 불모지에서 일어났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에서 4·19혁명의 성공은 민주주의를 외면하던 제3세계 독재자들에게 국민이 가진 힘에 대한 두려움을 갖도록 했고, 나아가 독재자들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철회될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4·19혁명은 터키에서의 반멘데르스 시위, 대만의 지방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고, 남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대만 등 아시아의 다른 미 동맹국들의 정치에도 간접적이지만 매우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제3세계 독재자들에게 국민적 저항에 의한 정권 붕괴의 가능성을 보여준 4·19혁명은 전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 제3세계 국가들에게 민주화 정신과 저항을 확산시킨 첫 번째 승리 사례이기도 했다. ‘아시아 최초의 반독재 민주주의 혁명’이며, 1970년대 이후 제3의 민주화 물결을 일으킨 제3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신호탄이었다.
한국에서 4·19혁명에 대한 이러한 기억과 기념은 군부독재를 붕괴시킨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제2의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세계적으로 민주화가 후퇴하던 2017년에는 평화적인 촛불시위를 통해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탄생시켰다. 한국에서 더 높은 차원으로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멈추지 않고 있으며, 그것이 늘 비폭력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모두 4·19혁명의 역사로부터 기인한다. 즉,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있어 4·19혁명은 늘 진행형이다.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가치를 갖는 「4·19혁명기록물」은 발발부터 진상규명까지 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주체들이 생산한 독창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일체의 자료로써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번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민주주의와 시민혁명의 살아있는 세계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오유석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