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토착어의 해’(International Year of Indigenous Languages)다. 하늘에 가 닿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이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다는 바벨탑 신화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전 세계가 하나로 묶이고 있는 21세기에 다양한 언어가 갖는 가치는 무엇일까? 유네스코는 어떤 이유로 침묵하는 언어 속에 반드시 지켜내야 할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 것일까?
언어가 규정하는 세상
“워싱턴의 대통령이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사고 싶다는 제안을 보내왔다. 그런데 하늘과 땅을 사고 팔 수 있다는 말을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저 신선한 공기와 반짝거리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당신들은 어째서 우리에게 그것을 팔라고 하는가?”
마지막 북미 원주민 추장이었던 시애틀(Seattle)이 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슬프고도 아름다운 연설의 일부다.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한 신대륙 정복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 자연과의 공존을 중히 여긴 원주민들의 시각과 정복자의 끝없는 탐욕을 극명하게 대비시켜주는 이 말은, 한 문화의 핵심 가치가 고스란히 담긴 그릇으로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북미 원주민 언어에는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없다. 이는 원주민들이 마르크스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와 물, 땅과 같이 인간에게 필수적인 자원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는 고유한 문화적 믿음이 그들의 말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 이다.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 흩어져 있는 북미 원주민인 쿠터네이(Kutenai)의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생물 학자 에이프릴 샬로(April Charlo) 박사도 2015년 테드x(TEDx) 강연에서 자신이 연구하던 부족말에 소유권의 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경험을 들려준 바 있다. 샬로 박사는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담은) 내 언어를 원주민들에게 강요했을 때, 그것이 그들 문화의 본질을 영원히 변질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것이 자신과 같은 학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사라져가는 토착어를 지킬뿐만 아니라 사라진 언어를 되살려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라지는 말들
이처럼 한 문화권의 언어에는 그 문화를 향유하는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쌓아 온 역사적 흔적과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문화가 새로 태어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라지기도 하듯, 언어 역시 매 순간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언어가 사라지는 현상을 무조건 ‘좋지 못한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2014년부터 전 세계 언어의 공공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는 위키텅 프로젝트(wikitongues.org) 홈페이지에 써있듯, “라틴어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불어가 생길 수 없었고, 영어는 고대 색슨어(Old Saxon)가 사라진 빈자리를 새로 채우며 성장한 언어”라는 사실에서도 언어의 생성과 소멸은 문화의 변화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원주민 언어 등 소수 언어가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수는 약 7천여 개며, 그 중 3분의 1이 넘는 2,680여 개의 언어가 소멸 위험에 처해있다. 지난 2010년 유네스코가 펴낸 『위험에 처한 세계 언어 지도』(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는 1950년부터 2010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230개의 언어가 영구히 사라졌다고 밝혔다. 같은 자료에서 유네스코가 소멸 위험 언어로 지정한 언어 중 146개 언어는 해당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전 세계에 채 10명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고, 178개 언어도 사용자 수가 10-50명에 불과하다. 이들 대부분은 고령의 노인이며, 그 자손들은 다양한 이유로 해당 언어를 배우지 못했거나 앞으로도 배울 의사가 없다. 세상에서 사라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매 2주마다 지구상에서 한 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고 했고, BBC는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이 이 추세대로라면 현재 존재하는 언어 중 최소 절반 이상이 금세기가 끝나기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 예측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막다른 곳으로 내몰리는 이유들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는 언어의 소멸 속도는, 이러한 추세 뒤에 문화의 순환이나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인위적인 거대한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영향력이 큰 주류 언어가 그렇지 못한 언어들을 주변부로 내몰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북미 원주민의 사례에 서처럼,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그 거대한 힘은 대부분 국가로부터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에 세계 각국, 특히 국경 내에 적지 않은 수의 소수 민족이 있는 정부들이 국가 통합이라는 명목으로 ‘공용어’(national language)를 설정하고, 그 속에 담긴 언어 및 주류 집단의 문화를 소수 민족에게 강요하는 정책을 밀어 붙임으로써 수많은 원주민 문화와 토착어가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유럽인들이 호주 대륙에 상륙한 뒤 100여 개의 원주민 언어가 사라졌고, 중국이 티벳 지역을 병합한 뒤 반 세기 만에 독자적인 알파벳을 가진 티벳의 다양한 방언들이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그 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1세기 들어 이같은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탄압은 더 이상 원주민의 생존과 그들의 언어에 가장 큰 위협을 주는 요소가 아니라고 진단한다. 프레데리코 안드레이드(Frederico Andrade) 위키텅 프로젝트 공동창립자는 “오늘날 대부분의 토착어는 (탄압 때문이 아니라) 해당 언어가 더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unviable)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후 변화 같은 환경적 요인이나 급속한 도시화 같은 사회적 요인이 언어의 다양성을 품은 지방이나 산간벽지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을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권 내로 이주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지역의 각기 다른 토착어를 가진 수많은 도서 지역에서는 원주민들이 해수면 상승을 피해 더 큰 섬과 더 큰 도시로 끊임없이 이주하고 있고, 그렇게 이주한 원주민들은 자신의 언어를 버리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들다.
기후변화나 도시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서도 토착어는 안전하지 않다. 책, TV, 인터넷 등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지식과 문화를 익히는데 필수적인 매체들이 본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토착어를 사지(死地)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를 처음 익히고 가꿔 나가는 아이와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미디어가 주로 쓰는 언어는 전체의 5퍼센트에 불과하다. 자연히 청소년들이 새로운 문화적 주체로 성장하는 데 토착어가 기여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의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고대 마야 민족의 후손인 라칸돈(Lacandón) 원주민의 언어를 연구하는 제임스 D. 네이션(James D.Nation) 박사는 『미디엄』에 쓴 자신의 글에서 “숲에 있는 281종의 식물과 185종의 새, 114종의 곤충 이름을 라칸돈어로 줄줄 꿰고 있는 80세 할아버지의 11살난 손자는 스페인어로 방영되는 디즈니TV를 끼고 살며 곤충 이름 대신 (라칸돈어에는 있지도 않은) 헬리콥터나 비행기 이름을 줄줄 외운다”고 말했다.
포기할 수 없는 가치
물론, 원주민 후손들이 더 나은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좇아 선조들의 언어 대신 주류 언어를 배우는 것을 비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글로벌 경제와 소셜네트워크와 가상현실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원주민 언어가 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의문이기도 하다.
네이션 박사 역시 이같은 대중의 의문을 언급하며, 인권과 다양성, 지속가능발전 등 토착어 보호와 관련해 내놓을 수 있는 수많은 대답들 중에서도 실용성 측면에서 한 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언어의 소실은 곧 지식의 소실’(Lose the language, lose the knowledge)이라는 것이다. 네이션 박사에 따르면 라칸돈 원주민은 수천 년 동안 남미 열대우림에서 농경과 수렵, 채집 생활을 이어오며 삼림농업(농작물 재배와 삼림 육성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농법)과 환경재생 분야에서 깊은 지식을 쌓았고, 그 지식은 라칸돈어에 그대로 녹아있다. 학자들은 수 년간 경작한 뒤 버려질 단계에 있는 땅을 말하는 라칸돈어인 ‘pak che’kol’의 뜻이 ‘나무 심은 정원’(planted tree garden)이라는 점에 착안, 라칸돈 원주민이 카카오, 고무, 아보카도 등의 나무를 활용해 같은 경작지에서 현대 농법에 비해 많게는 15년까지더 오래 수확을 하며 지속가능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비법을 밝혀냈다. 이와 유사한 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76년에 과학자들은 북미 캘리포니아 만 연안의 세리 (Seri) 원주민이 특정 거북을 지칭하는 말인 ‘moosni hant cooit’(가라앉는 녹색 거북)을 통해 해당 거북목 동물들이 기존 학계의 통설과는 달리 겨울철에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가 동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논문을 『네이처』에 싣기도 했다.
이처럼 한 개의 토착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미래의 ‘기적의 치료제’가 될 수도 있는 한 종의 동식물이 멸종 하는 것과 비교해도 결코 중요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약용 식물, 식량 확보, 경작 기술, 지리와 측량 등, 해당 지역에서 수천 년간 축적한 인류의 자연적, 생태 적, 환경적 지식은 바로 토착어와 생사를 함께한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열대우림과 사막, 시베리아와 북극권의 동토, 대양 곳곳의 작은 섬들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화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현대의 과학자와 탐험가들이 미처 닿지 못한 곳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백과사전이다. 이 백과사전은 말이라는 형태로 원주민들의 머릿속에 저장돼 있으며, 영어나 스페인어 등 주류 언어로는 이들 지식을 온전히 담아 내지 못한다. 유엔과 유네스코, 그리고 전 세계 수많은 관련 단체들이 토착어를 보존하고, 사라진 언어를 되살리기 위해 대책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토착어가 그저 ‘과거로부터의 유산’이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우리 미래를 위한 해법’이 있기 때문이다.
7천 개의 발걸음으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모이」에 나오는 대사다. 민들레 홀씨가 널리 퍼져 집집마다 대문 앞에 꽃을 피우듯, 작은 힘을 모아 우리 문화를 지키고 독립을 쟁취하자는 뜻의 이 말은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려는 유네스코의 노력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지속가능성은 곧 다양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고, 70억 인류가 사용하는 7 천여 개의 언어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거나 사라져야 마땅한 것이 없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인류가 몇몇 언어의 통일된 힘보다는 수많은 언어의 작은 힘들을 모아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를 바란다. 그리고 인류가 비록 통일된 언어로 하늘 끝에 닿을 바벨탑을 쌓을 수는 없을지라도, 서로 다른 수백 수천 가지 말로 저마다의 하늘을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꾸고 있다.
참고자료
세계 원주민 언어의 해 홈페이지(iyil2019.org)
UNESCO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2010
bbc.com “Languages: Why We Must Save Dying Tongues”
medium.com “Naming the Dragonfly – Why Indigenous Languages Matter in the 21st Century”
nationalgeographic.com “The Race to Save the World’s Disappearing Languages”, “Vanishing Voices
un.org “International Expert Group Meeting on Indigenous Languages”
wikitongues.org “Why We Do It?”
youtube.com April Charlo “Indigenous Language Revitalization”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