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의궤』 영문 홍보영상 공개
조선 왕실의 주요 의례와 국가행사를 시행하는 절차와 방법, 내용에 관한 방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의궤』(儀軌)는 지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유산입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의궤』의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와 그 내용을 전 세계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해 줄 영문 영상 자료를 만들어 유튜브에 게시했는데요. 세계기록유산을 등재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 유산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뽑아내 대중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번 영상 세 편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의궤』가 특별한 기록물인 4가지 이유
『의궤』(儀軌)는 조선왕조 500여 년간의 왕실 의례에 관한 기록물을 상세히 기록해 둔 3895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입니다. 이들 책에는 제사나 혼례, 왕실의 주요 행사 같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식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모든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담당자의 업무 내용이나 물품 구입 및 사용내역뿐만 아니라 해당 의식을 상세히 묘사한 그림까지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큽니다.
『의궤』가 특별한 기록유산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네 가지로 꼽아볼 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재현가능성과 독창성, 인쇄물로서의 빼어난 완성도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의 세계사적 중요성 등입니다.
먼저 『의궤』는 과거의 왕실 행사 모습을 매우 자세하게 담고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당시 조선에서 중요하게 여긴 몇몇 의식과 행사, 예컨대 왕실의 바깥 행차나 왕이 친히 참석한 활쏘기에서 참석 인원들의 배치나 행사 내용을 매우 상세한 그림으로 남겨두기도 했는데, 이들 그림 덕분에 오늘날에도 당시의 현장 모습을 마치 ‘사진’으로 보듯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의궤』는 기록을 중요시한 세계 다른 나라의 기록물과 견주어 봐도 그 상세한 기록의 수준이나 시각적인 명확도 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기록물이라는 가치가 있습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도 의식 절차를 『의궤』와 같이 체계적으로 편찬한 것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가 없을 정도이지요.
또한 『의궤』는 당시 조선의 빼어난 인쇄술이나 제책 기술의 정수가 담겨 있는 ‘고퀄리티’ 기록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왕이 열람하는 용도로 특별히 제작된 ‘어람건’(御覽件)의 경우 당대 최고의 기술자가 최고의 재료와 장식, 예우를 담아 만들었다는 점에서 조선이 추구했던 기록문화의 물질적 특성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구현된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의궤』는 당시 전 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모여 살던 유교문화권의 우수한 문화적 정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기록물’로서의 가치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묘사된 다양한 의례에는 당시 동아시아권의 핵심 사상인 유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회 계층구조와 가치관이 반영돼 있으며, 또한 근세 유교 국가 간의 국제 관계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의궤』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기록물이자 모두 함께 소중히 지켜야 할 유산이라 할 수 있는데요. 바로 그러한 가치를 더욱 ‘글로벌’하게 알리기 위해 제작된 이 세 편의 영상을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널리 공유해 주세요!
제1편, 기록물로서의 조선왕조 의궤 ‘장황’
책의 핵심은 ‘내용’에 있다고요?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기록물로서 책의 ‘물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1편에서는 특별한 재료와 마감 및 기술이 총동원된 ‘어람건 의궤’의 제책 방식, 즉 ‘장황’(粧䌙)에 담긴 가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2편, 조선왕조 의궤 속 인물 ‘수복’
‘수복’(守僕)은 조선의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 머무르며 각종 노역에 종사하던 관노를 일컫는 말입니다. 비록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수복은 종묘에서 진행하던 행사와 의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이기도 했습니다. 역사의 그늘에 감춰져 있었지만 의궤 속 내용을 통해 되살아날 수 있었던 수복의 활약상을 살펴봅니다.
제3편, 의궤를 통해 살펴보는 왕실의 행사 ‘대사례’
나갔다 하면 ‘금’을 캐 오는 올림픽 양궁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활쏘기에 누구보다 ‘진심’인 민족이었습니다. 이는 왕과 신하가 한 자리에 모이는 활쏘기 행사의 이모저모를 담은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란으로 중단됐다가 약 200년만에 부활한 대사례를 맞아 친히 활솜씨를 선보였던 영조와 그 신하들의 흥겨웠던 하루를 한번 들여다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