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우리나라의 13번째 세계유산이 되었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은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 영주 부석사, 경북 안동 봉정사, 충북 보은 법주사, 충남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 전남 해남 대흥사 등 7개 사찰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쁜 소식을 접하고, 7개의 사찰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하나 하나가 개성 있고, 절로 미소가 지어질 만큼 아름다운 절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산사들은 단순히 불교 문화유산을 넘어 자연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 고즈넉하고 아늑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작가 최순우 선생의 추천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찰은 바로 부석사다. 부석사 하면 역시 무량수전이 떠오른다. 무량수전은 불교에서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건물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 건축의 기본 구조인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졌다. 지면으로부터 3분의 1지점을 가장 굵게 하고 그 위와 아래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게 만들어 안정감을 준 ‘배흘림기둥’도 유명하다. 무량수전의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건물의 벽체보다 큰 지붕 때문에 지붕이 위에서 내리누르는 느낌을 줄 수 있는데, 지붕의 공포를 높이고 네 귀퉁이를 살짝 들어올려 지붕이 무거운 느낌이 들지 않게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건물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부석사 무량수전이 명품인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무량수전을 보기 위해서는 부석사가 있는 봉황산중턱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쉬며 무량수전까지 올라가 뒤를 한번 돌아보자. 그 순간 소백산맥의 능선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주변의 산과 완벽히 어우러져 있는 절집. 이러한 경관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무량수전이 더욱 특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부석사는 그 이름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의상은 불법을 구하기 위해 당에 유학을 갔다가 한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의 딸 선묘는 의상에게 사랑을 느끼고 급기야 청혼을 했다. 물론 의상은 수행 중이었기 때문에 선묘의 마음을 거절하였다. 의상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가려 할 때, 의상과 이별을 앞둔 선묘는 부처님께 다음 생에 용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해서라도 의상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라에 돌아온 의상은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짓고자 했다. 그런데 이미 그 자리에 터를 잡고 있던 무리들이 절을 짓는 것을 방해했다. 그러자 용이 된 선묘가 바위로 변하더니 공중에 붕 떠올라 무리를 위협했다. 놀란 무리들은 혼비백산해서 달아났고, 덕분에 의상은 무사히 절을 지을 수 있었다. ‘돌이 떠오른다’라는 뜻의 부석(浮石)이 이 절의 이름이 된 이유다. 지금도 부석사에 가면 무량수전 뒤쪽에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를 볼 수 있으며, 선묘를 기리는 선묘각도 만나볼 수 있다.
부석사뿐만 아니라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사들은 제각각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으며 오랜 역사도 품고 있다.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문화적 의미도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유네스코가 인정한 산사에 찾아가 아름다운 풍광도 즐기고, 그 속에 얽혀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최태성 역사강사·저술가
‘큰별쌤’(‘쌤’은 선생님이란 뜻의 속어)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국사 길잡이로 꼽히는 최태성 강사는 서울대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01년부터 EBS 역사 강의를 맡으며 가장 인기있는 강사로 인정받아 왔다. 특유의 재치와 입담을 곁들여 현재 방송 및 인터넷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강사 겸 저술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알.쓸.U.잡’은 인기 TV프로그램 제목처럼 ‘알아두면 쓸 데 있는 UNESCO 잡학사전’의 준말로, 유네스코의 주요 관심사이자 활동 영역인 교육, 과학, 문화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사들의 칼럼으로 구성되는 코너입니다. 매월 다양한 관점과 자유로운 형식으로 구성된 교육, 과학, 역사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