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수상자 이유미 교수
경북대학교 이유미 교수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의 학술진흥상을 수상했다. 지방에서 여성과학자로서 탁월한 성과를 내며 혈관신생 연구와 생물의약학적 연구 및 의약품 효능 연구 분야발전에 기여한 이 교수의 연구와 차세대 과학자 양성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았다.
제20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학술진흥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교수님께서는 혈관신생에 관한 세계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생물의약학 및 의약품 효능연구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셨습니다. 이번 수상의 의미와 개인적 소회를 먼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결혼과 육아 등을 하느라 박사학위를 늦게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박사까지 해서 뭐하나’ 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고시 공부 대신 학업을 계속 이어가기로 한 남편의 뒷바라지를 제가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35살이 되던 1996년에야 박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박사 과정에 입학하여 실험을 수행하면서 일본에서 1년간 유학을 했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실험 기법을 배우고 과학적 발견에 대한 희열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박사후과정(post-doc)을 거치며 연구를 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43살에 교수가 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따라서 제 수상의 의미라면 먼저 ‘늦게라도 하고 싶은 연구를 수행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해 주고 격려해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학술적인 측면에서는 ‘저산소 상태가 혈관신생뿐 아니라 세포의 유전자 발현의 패턴을 변화시켜 조기 암화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과 ‘암혈관정상화에 의한 암치료 가능성’을 꾸준히 증명해 온 연구, 그리고 연구 결과에 기반한 몇 가지 생물의약품의 개발 가능성이 인정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이번 수상을 통해 저를 믿어 주고 존경해 준 딸들을 비롯한 가족, 그리고 제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한 가지 배움을 던져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배움이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자신이 바라던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과학계에서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아직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도 오늘날까지 여성과학자로서 감당하고 이겨내야만 했던 일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과학계에 종사하는 여성 연구자로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요.
어떤 분야에서든 한국에서 결혼한 여성으로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역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저는 아직도 집에 제 책상이 없습니다. 육아뿐 아니라 하루 세 끼를 챙겨야 하니 집에서는 제 일에 신경 쓸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계셔도 장은 제가 봐야 하고, 아이들 교육 문제는 대부분 엄마의 몫이라 주말이나 방학에도 쉴 틈이 없었지요. 약간의 개인차가 있을지언정 이는 대부분의 여성과학자들이 겪는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여성 연구자들은 각종 학회나 큰 과제의 책임자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제안이 와도 집안일 걱정 때문에 책임 있는 일들을 사양하거나 거절을 할 때가 많죠. 설령 업무를 맡더라도 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무척 힘듭니다. 남성들은 직책이 하나 더 생기면 그것이 (집안의) 다른 일을 면제받는 명분이 되는 반면에 여성들은 부가적인 일이 하나 더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힘들게 연구를 수행하고, 국제 학회에 참가하고 논문을 발표하고, 방학도 없이 매일 밤낮으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격려나 존경이 아니라 질책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질 때가 무엇보다 힘들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재택근무 등의 대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 역시 남녀가 서로 다른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성과학자들의 연구 환경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팬데믹 상황에서 남녀 모두 업무나 연구 환경에 변화를 겪고 있지만, 특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의 경우 학교에 나가지 못하는 자녀를 돌보는 과정에서 일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등의 문제를 더 심하게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업무와 집안일의 어려움이 이중 삼중으로 쌓이면서 더욱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대구경북지부장으로서 차세대 여성과학자 양성에 기여하고 계십니다. 인적·물적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이 극심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지방에서 양질의 연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원과 응원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 양질의 연구가 이루어지려면 질적으로 우수한 대학원생의 확보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권 집중현상 때문에 지금 서울과 지방의 학력 격차는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고, 학령인구의 감소 추세는 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지원이나 응원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소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도권과 지방대 학부생의 격차를 먼저 줄여야 하는데, 결국 대학 입시의 서열화부터 해소해야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수능 점수대로 대학이 서열화되고 획일화되면서 지방 대학의 특성이 사라졌고, 그에 따라 자부심 역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우리나라 과학자들과 연구개발 기관들의 눈높이와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는 지방 학생들도 얼마든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울 수 있어야 하지만 역량이 못미칠 때가 많습니다.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모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지혜를 짜 내야만 할 때입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학기술혁신이야말로 전 세계 공동 과제를 해결하는 ‘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과학기술의 평등하고 공정하며 윤리적인 사용을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성)평등, 공유, 윤리와 같은 사항들이 순수한 학문적 측면에서 과학의 발전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세상의 가치 있는 일에 대한 평가는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진리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평등, 공정, 윤리가 없이 어떻게 과학의 발전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인간도 저마다 능력차가 있듯, 국가별로도 재정이나 과학기술 수준에 격차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사용과 발전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을 평등, 공정, 윤리에 기반해 설계하지 않는다면, 결국 인류 전체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이는 인류의 미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습니다. 효율이나 성과, 혹은 발전을 앞세우다가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1998년부터 과학에서 여성의 역할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로레알과 ‘For Women in Science’ 사업을 추진하며 여성과학자들을 지원해 왔습니다. 앞으로 국내 여성과학자 활동 증진을 위해 유네스코 혹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맡아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과학에서 여성의 역할과 중요성을 진작부터 인지하고 지원한 유네스코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유네스코의 사업이 국내 여성과학자들의 활동 증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특별히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앞으로 10년, 더 나아가 100년 앞을 내다보고 여성과학자 및 후속세대 양성에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이나 지원을 제안해 주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학령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한국에서 여성 과학자들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것입니다. 유네스코의 정책이나 지원이 과학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는 훌륭한 차세대 여성과학자들을 양성하고 격려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해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과학도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차세대 꿈나무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초·중·고 학생들의 기초 학력은 저희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시대와 세대가 달라져서인지 너무 일찍 포기를 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과학을 하든 하지 않든, 자신의 능력이나 잠재력에 대해 궁금해 하고 좀 더 도전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섣불리 규정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성적이 이 정도라서,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해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내 성격이 어떠해서 등등, 진짜 자신의 모습보다는 밖에서 보이는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고 ‘이 정도가 최선’이라 규정해 버리면 정말로 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 노력할 때만이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또 그것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안 되는 일이 있어도 결코 포기하지 말고, 생각을 달리 해보고, 꾸준히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유미 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박사과정을 거쳐 부산대 및 하버드의대 포스트닥, 서울대 의대 연구교수, 경북대 약학연구소 소장과 경북대 약대 학장을 역임했다. 혈관신생 연구와 생물의약학적 연구 및 의약품 효능 연구에 다양한 업적을 이뤘으며, 2014년 경북대학교 학술상을 수상했다.
인터뷰 진행 과학청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