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러일전쟁 때 침몰한 러시아 군함 ‘드미트리 돈스코이 호’를 울릉도 앞바다에서 찾았다는 한 기업의 발표가 있었다. 이 기업이 내놓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물 이야기는 대단한 화제를 몰고 왔다가 단 며칠만에 사기극으로 판명되어 끝이 났다. 이번 소동을 지켜보면서 ‘혹시나’ 했던 마음이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바뀐 사람도 많았겠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은 어릴 적 한번쯤 꿈꾸었던 판타지 하나를 새삼 떠올리기도 했다. 바로 저 깊은 바닷속의 보물선 이야기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해저에서 잠자고 있는 보물선은 우리 모두의 판타지인 동시에 실재하는 이야기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는 저 바다 어딘 가에 우리가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리는 과거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진짜 보물선’이 정말로 눈앞에 떠올랐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을까? 그것을 어떻게 지키고, 누구의 책임으로 가꾸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을까?
보물, 로또, 그리고 문화유산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울릉도 앞바다의 보물선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허탈감만 남긴 채 끝나게 된 데는 언론의 무비판적인 보도도 한몫 했다. 언론은 얼핏 들어도 믿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의 보물 이야기를 늘어 놓는 한 회사의 말을 받아쓰는 데 급급했다. 반면에 저 바다 밑에 정말로 그만한 보물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그것을 일개 회사가 건져올려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는 충분치 못했다.
한편, 보물선에 과도한 환상과 호기심을 투영하는 우리들도 이번 사건을 낳은 배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로또 당첨 중계’를 보듯 문화유산 이야기를 ‘소비’해 온 것도 결국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바닷속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보다는, 그것이 ‘얼마’로 환산되는지에 훨씬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가 돈스코이 호 사기극 같은 가짜의 등장이었다. 수백 년 이상 시간여행을 한 끝에 우리 앞에 나타난 바닷속 유산에게 던지는 첫 인사가 ‘그거 얼마요?’ 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이 모든 시끌벅적한 소동에 대한 부끄러움도 다름아닌 우리의 몫일 수밖에 없다.
가장 거대한 박물관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다.” 저명한 해양 고고학자 피터 캠벨(Peter Campbell) 박사의 말이다.
인류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선 지는 수천 년이 흘렀고, 예나 지금이나 바다는 적지 않은 수의 배를 집어 삼키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처럼 전체, 혹은 일부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도시도 있다. 이 모두가 인류의 기억과 과거의 진실을 간직하고 있는 수중문화유산이다. 염분, 해류, 수많은 해양 생물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해저 환경은 우리 생각보다 수중문화유산의 보존에 유리한 점이 많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수중문화재가 육상 매장 문화재보다 보존상태 가 양호한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좀 더 생생한 과거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한국 최초의 수중 발굴 보물선’으로 꼽히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8년에 걸쳐 전남 신안 해저에서 발굴된 14세기 원나라 상선에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망라하는 2만 3502점의 문화재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굴되어 전세계에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처럼 수중문화유산은 한번 발굴하기만 하면 속칭 ‘대박’이 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연히 그것을 좇는 사람도 많다. 오랫동안 심해라는 천연의 방벽으로 인간의 손길로부터 격리되었던 수중문화유산은 20세기 이후 탐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고위험 고수익 비즈니스’의 범주에 들기 시작했다. 수중문화유산도 육지의 유산들처럼 도굴이나 약탈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에 세계유산 사업을 관장하는 유네스코와 관련 기관을 중심으로 수중문화유산을 체계 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한 규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네스코는 △ 수중문화유산을 통합 적으로 보호 및 관리하는 규약이 필요하고 △ 1940년대 이후 급속히 발달한 해저 탐사 관련 기술에 비해 수중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미흡하고 △ 수중 문화유산의 탐사 및 발굴에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관련 협약 마련을 서둘렀다. 그 결과 2001년 제3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수중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the Underwater Cultural Heritage)이 채택됐다.
‘제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보물
수중문화유산의 범위와 가입국의 의무, 탐사 및 발굴 가이드라인 등을 폭넓게 담고 있는 수중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은 ‘상업적 발굴 금지’(no commercial exploitation)의 원칙을 중시한다. 유네스코는 수중문화유산이 결코 ‘보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물이기 이전에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유네스코는 “(가라앉은 배 안의) 화물뿐만 아니라 배의 잔해와 그 안에 탔던 사람들의 흔적들도 모두 중요한 유산”임을 강조하며, “역사적이며 고고학적인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상업적 가치가 있는 일부 유물에만 집중하는 발굴은 유산의 가치를 영구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상업적 발굴 금지와 더불어 ‘제자리 보존 우선 원칙’(in situ preservation as the first option) 또한 협약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항이다. 수중문화유산이 발견된 장소에서,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네스코는 이것이 수중문화유산 보존의 ‘유일한 방법’ 혹은 ‘언제나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뜻은 아니라면서도, 지상에 있는 문화유산과 마찬가지로 수중문화유산도 “처음 발견된 위치에 있을 때 역사적 맥락(historical context)과 고유성(authenticity)이 가장 잘 보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수중문화유산이 육지에 비해 산소 접촉이 현저히 적은 수중에서 부식이 더디게 진행된다는 점, 이를 뭍으로 끌어올렸을 때 추가적인 보존 처리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도 이같은 원칙을 강조하게 된 또 다른 배경이다.
그 배는 누구의 것인가
수중문화유산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궁금해 하는 사항 중, 수중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이 미처 답을 주지 못하는 항목이 하나 있다. 바로 수중문화유산의 소유권(ownership)에 관한 사항이다. 협약에는 ‘저 보물선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줄 조항이 없다. 유네스코는 협약 관련 홈페이지에 게시된 문답에서 “수중문화유산의 소유권은 여러 법률 및 국제법에 따라 정해진다”며, 협약이 유산의 소유권 다툼에 끼어들거나 이를 중재할 의도가 없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수중문화유산의 소유권을 가리는 작업이 지상의 문화유산에 비해 훨씬 까다롭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반영돼 있다. 영국 사우스햄튼대의 고고학자이자 국제법 변호사인 로버트 매킨토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수중문화유산의 소유권을 가리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라며, “이는 수중문화유산이 대개 여러 사람과 여러 국가가 서로 다른 법령에 근거해 내놓는 주장이 맞서는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5년 남미 콜롬비아 영해에서 발견된 18세기 스페인 전함 산호세(San José) 호를 둘러싼 미국과 콜롬비아, 스페인의 다툼은 수중문화유산의 소유권이 얼마나 복잡한 이슈인지를 보여주는 예다. 스페인 무적함대 소속이던 산호세 호는 1708년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에 쓸 군자금을 대기 위해 남미에서 약탈한 엄청난 양의 보물을 싣고 가던 중 영국 전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이후 산호세 호는 ‘바닷속의 성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2015년 미국의 한 탐사업체가 콜롬비아 영해 내 약 300미터 해저에서 산호세 호를 찾아냈다. 하지만 산호세 호의 소유권을 두고 ‘최초 발견자’임을 주장하는 미국의 업체와 ‘국제법에 따른 영해 내 발견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콜롬비아 정부, 그리고 산호세 호가 스페인 왕국의 전함이었으므로 ‘주권면책’(sovereign immunity, 군함과 같이 민간이 아닌 정부 소유의 배는 타국 영해 내에서도 해당 국가의 주권이 미치지 못한다는 조항)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페인 정부는 몇 년간 지루한 공방을 벌였다. 한편 수중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 미가입국인 콜롬비아 정부는 산호세 호의 유물을 육지로 옮겨 전시할 새 박물관을 짓겠다고도 발표했다. 이에 유네스코는 “산호세 호의 상업적 발굴은 수중문화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서 규정하는 과학적 기준에도, 도덕적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하며, 산호세 호의 올바른 발굴과 관리를 위해 콜롬비아 정부 및 관련국에 인력과 역량을 적극적으로 제공할 뜻을 밝혔다.
‘욕망의 파도’ 막아줄 방파제
영국의 『가디언』지는 수중문화유산을 둘러싼 산호세 호와 같은 분쟁이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가디언』이 인용한 조사에 따르면 콜롬비아 앞바다에만도 무려 1200척이 넘는 침몰 선박이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범위를 전 세계의 바다로 넓히면 그 수는 헤아리기조차 힘들어진다. 이는 수중문화 유산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유네스코 및 관련 기관들에게 더 많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요한 것은 돈과 인력뿐만이 아니다. ‘수중에 있는 유산’이라는 특수성은 유네스코에게 더 면밀한 분석과 관련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 그리고 해당 수역의 지속가능한발전을 이끌어 낼 정치력까지 요구하고 있다.
전설의 불가사의였던 ‘파로스 등대’를 비롯해, 고대 이집트와 로마 제국의 흔적이 수없이 묻혀 있는 이집트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 앞바다는 유네스코의 수중 문화유산 보존 노력이 직면한 이러한 다층적인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유네스코는 이미 1960년대부터 파로스 등대 잔해를 비롯한 알렉산드리아 바닷속의 여러 지점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2015년에는 ‘제자리 보존 우선 원칙’에 따라 이집트 정부로부터 이곳에 세계 최초의 ‘수중 박물관’ 건립 약속까지 받아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수중문화유산 보호의 모범 사례라면서도, 수중 박물관 건립 계획이 곧 알렉산드리아 바닷속 유산들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호주의 종합뉴스매체 뉴스닷컴(news.com.au)은 “2억 달러가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이는 수중 박물관 건립 예산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5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하수처리 시설도 없이 바다로 쏟아내는 생활오수 처리 방안을 마련하는 등 해당 수역의 오염과 난개발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바다를 지속가능한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박물관 건립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라는 뜻이다. 뉴스닷컴은 또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수중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물 속에서 고대의 유산이 아니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충격적인 부유물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짧게는 백여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을 바닷속에서 견뎌온 전 세계의 수중문화유산은 이제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과 굳건한 원칙 없이 바다 위로 끌어올려 질 문화유산들은 마치 인어공주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순식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순수한 과학적·역사적 사명’은 과연 언제까지 대양보다 높고 거친 욕망의 파도로부터 수중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을까.
그 파도에 우리 모두의 유산이 휩쓸려버리지 않도록, 유네스코는 세계 시민들이 더 많은 관심과 참여로 쌓아올릴 ‘튼튼한 방파제’를 기다리고 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편집국장
*참고자료
bbc.com “Shipwrecks: Who Owns the Treasure Hidden under the Sea?”
theGuardian.com “Holy Grail of Shipwrecks Caught in Three-way Court Battle”
hani.co.kr “38년 전 오늘, 수중 발굴 ‘보물선’에서 유물이 또 발견됐다”
unesco.org “Underwater Cultural Heritage FAQ”, “The Alexandria Underwater Museum Project”
washingtonpost.com “UNESCO against Colombia′s Commercial Recovery of a Shipwre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