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전기물레 앞에 자리 잡고 앉은 한 참가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한 덩이의 흙을 조심스레 도자기 물레 위에 얹고, 조금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꽤 능숙한 솜씨로 입구가 넓은 그릇을 하나 만들어낸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이를 내보이며 활짝 웃는다. 다른 참가자들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초, 동남아에 위치해 있지만 오히려 서울보다는 조금 더 선선했던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는 ‘2018 라오스 공예 디자인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었다. 8월 4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이 워크숍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유네스코라오스위원회가 하나투어의 후원으로 공동주최하였으며, 상명대학교 세라믹디자인학과 교수진이 현대 도자 제작 기술 전수를 위해 현장에 함께했다.
라오스는 풍부한 자원과 특유의 예술적 감각으로 도자기 공예에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지만, 이렇다 할 도예기술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루앙프라방에 위치한 반찬(Banchan)마을이라는 곳에서 유약을 바르지 않은 토기 정도를 만들지만, 표면이 거칠고 수분 흡수가 빨라 음식물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공예디자인 국제교류협력사업’은 라오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연·문화적 자산에 현대식 도자 제작 기술이 조금만 더해진다면 훨씬 더 견고하고 상품성 있는 도자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예측으로 지난 2016년 시작됐다. 양질의 도자 상품을 제작하는 기술이 공유되고 발전해나가면 해당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이번 워크숍에 참가한 39명 중 대부분은 토기를 제작하는 반찬마을 주민이거나, 루앙프라방 예술대학에서 회화나 조각 등 다른 분야를 가르치고 있지만 공예 분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교직원들이었다. 참가자들은 색 유약 제조, 도자기용 물감 제조 및 장식하기, 전기물레 사용법 등을 배우며 각자 나름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보는 듯했다. 반찬마을 도자기 제작그룹의 주민대표인 홈판 퐁사바뜨 씨는 “공예 디자인 워크숍을 통해 선진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며, “마을에서 토기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새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더 나은 품질의 도자 상품을 대량 제작하고, 이를 통해 마을과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루앙프라방 예술대학의 캄비앙 비라봉사 팀장은 “공예 디자인 워크숍에서 영감을 얻어 올 10월부터는 공예과를 신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라봉사 팀장은 또 “학생들에게 충분한 지식을 전수할 수 있도록 교수진부터 자기계발을 하고 풍성한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 워크숍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라오스 현지에서 개최된 워크숍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재작년에는 참가자 일부를 한국으로 초청해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전기 가마 사용법, 전기 물레 사용법, 좀 더 상품성 있는 견고한 도자 제작을 주제로 워크숍이 진행되었지만, 보다 세련된 도자 디자인과 마케팅, 확실한 유통채널 확보 등 앞으로 다루어야 할 과제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사업 시작 때부터 함께한 상명대 세라믹디자인학과 홍엽중 교수는 “사업지 선정을 위해 반찬마을에 사전답사를 왔을 때만 해도 마을 주민들이 투박한 토기를 만드는 정도의 작업만 하고 있었을 뿐, 유약을 발라 도자기를 구워내거나 루앙프라방을 찾는 관광객들이 사고 싶을 만한 상품성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못했다”며 “두 번의 현지 워크숍과 한 번의 한국 초청 프로그램을 거치며 지역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의 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홍 교수는 이 지역 도자기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도 엿보인다면서, “지역 주민들의 의지가 관건이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새 기술을 받아들이고 노력해 나간다면 공예를 통한 지역의 지속가능발전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지은 문화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