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일교사대화 일본교직원 한국방문 프로그램
29년 전의 첫걸음
지난 1990년 8월, 당시 서른을 갓 넘긴 열혈교사였던 나는 일본 도쿄 나리타공항 근처의 도미사또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가 유네스코학교로서 도미사또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해 학생들의 미술작품이나 시와 산문, 편지 등을 항공우편으로 교류해 오던 중, 일본에서 상호방문 행사를 열어 우리를 초대한 터였다. 당시 우리 일행을 맞이한 학생들은 교문에서부터 태극기와 일장기를 흔들며 ‘고향의 봄’을 불렀고, 기모노 차림의 학부모들이 정성어린 말차를 대접했다. 우리는 각자 열심히 준비한 문화예술공연을 보여주며 문화교류 시간을 가졌고, 교사, 학생, 학부모와의 만남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에 감동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평화로운 미래를 보고 느끼는 한편, 한국을 대표해 참가한 교사로서 나 자신을 갈무리해 보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우리가 그들을 초대했고, 그렇게 한국을 찾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우리는 가슴 깊이 환대했다. 그들은 성장을 향하여 몸부림치는 한국 사회와 교사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였고, 교류는 수 년간 계속되었다.
원숙한 방문자
그 시절로부터 29년이 흐른 올 1월, 어느덧 베테랑 교장이 된 나는 여러 교사들과 함께 유네스코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본의 지역교육청과 특수학교, 초등학교, 중학교를 방문했다. 우리들은 적극적인 소통으로 그들의 교육현장을 체감할 수 있었고 수업을 중심으로 한 교사의 역할을 짚어볼 수 있었다. 아직 찬바람이 스치는 1월이기도 했지만, 나는 1월 교정에 핀 낯선 봄꽃만큼이나 손님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오모테나시(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일본의 문화)도 드문드문 바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교실 환경과 교육 목표는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똘망똘망하고 야무진 아이들의 모습도 같았다. 분필 판서와 학생의 정갈한 공책, 손걸레 청소, 지극히 기본에 충실한 그들의 교실과 마구 당겨 놓은 미래교육이 혼재한 한국의 꿈꾸는 교실은 서로 오버랩되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문제를 던졌다. 특히 세계시민교육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대한 관점과 실천사례의 공감도는 높았다. 팀별 문화 탐방 시간은 개인적인 소견까지 주고받은 친교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통역이 없었지만 우리의 막강한 ‘파파고’(인공지능 번역 앱) 덕분에 꽤나 진지한 대화도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다만, 환영식과 환송식 만찬에서의 대화는 주로 한국인끼리, 일본인끼리 진행되는 데 그쳐 아쉬움이 컸다.
당당한 주인
지난 7월 12일에는 예정대로 일본의 교직원 24명이 본교를 방문했다. 일본 정부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와 관련해 연일 양국 사이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쩍쩍 나던 때인 만큼, 방문자들이나 맞이하는 이들이나 마음이 무겁고 착잡한 것은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행사 시작 전, 리코더와 피아노 연주의 아름다운 선율로 먼저 참가자들의 마음을 열었고 본교의 역사와 시설에 관한 안내를 학생들이 진행했다. 학생들은 한복과 태권도복을 입고 간단한 일본어 인사말을 한 후 당당하게 손님들을 안내했다. 학교 곳곳에는 유네스코학교로서 지속가능발전교육의 일환으로 진행한 일본교육주간의 활동 결과물이 전시돼 있었다. ‘스카이프’ 영상을 활용한 일본 현지 학생과의 공동수업은 학생들의 환호성을 자아냈고, 코딩 교실에서의 드론 날리기는 일본교직원의 탄성을 이끌어냈다. 일본 교사들은 중국어 및 영어 원어민 강사 수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다른 방문 학교와 미리 협의하여 각 학교들이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식사가 중복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본교는 삼계탕과 나물, 수정과를 준비했다. 식사 후의 다과와 함께 이어진 그룹별 대화는 정해진 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겨 저녁식사 시간으로 이어졌다. 본교 선생님들은 자긍심을 갖고 유연한 자세로 행사에 참여했다. 선생님들은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에게 공감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한국을, 일본을 다시 알게 되었다. 또한 교사로서 갖고 있는 공통 과제와 관련한 교육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받았다. 그간 많은 나라와 국제교류를 통하여 다양한 교육 경험을 쌓아왔지만, 지난 19년간 이어 온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의 대장정보다 더 유효한 경험을 얻은 곳은 없었다.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해야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그 결과로 얻은 뿌듯한 희열은 온전히 학생, 교사의 자긍심으로 발현되었다고 믿는다.
충돌 속 희망을 주고받은 자리
7월 14일 일요일, 포럼에 이어 진행된 환송 만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소외되는 그룹 없이 웃으며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 간의 자매결연, 교환 수업, 동료 교원들의 한국 방문 등의 제의가 있었고, 이후 메일로도 여러 제안을 주고받았다. 그 시간, 서울 광화문은 ‘극일’을 외치는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우리들은 이곳에서 선한 시민들 간의 희망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당한 주인으로서, 폐식사에서 유네스코 헌장의 첫 문장을 함께 자리한 사람들과 나누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윤향옥 서울청파초등학교 교장